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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때문에 못살겠다는 자본의 교묘하고 집요한 주장이 갈수록 도를 더하고 있다. 노동의 가치를 평가 절하하는 자본의 뻔뻔함은 길거리에서 삭발과 팔뚝질을 하며 시위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그 가운데 보수언론은 자본이 재단한대로 조금 더 나은 임금과 더 나은 환경을 위해 조직을 결성하는 시도를 불순하게 보며 잠재적 범죄자로 다룬다. 최저임금이 올라도 삶은 나아진 게 없고 악화되기만 하는 노동자들의 삶을 살피기보다 자본의 주장만 받아쓰기하는 언론은 부끄러움을 모른다.

자본은 부를 축적하는 데만 골몰하며 하청과 영세 사업장에 대한 구조화된 착취를 지속하려 하고, 정부는 책임을 방기한다. 5인 미만 사업장과 이주노동자 고용 현장에서 부당해고는 수시로 일어나고, 장시간 노동에도 휴업수당, 연차휴가 등은 꿈도 못 꾼다.

이처럼 법의 보호를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취약 노동자들을 근로기준법은 외면하며, 적용 제외를 당연시하는 풍조 또한 만연해 가고 있다. 형편이 이런데도 정치권은 개정 논의는커녕, 최저임금에 예외조항을 두어 임금을 차등지급하자는 주장만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노동의 배신 비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최희봉 옮김. 도서출판 부키
▲ 노동의 배신 비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최희봉 옮김. 도서출판 부키
ⓒ 도서출판 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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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실 속에서 <노동의 배신>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미국 600개 이상 대학에서 필독서로 선정되었을 정도로 빈곤 문제를 조명하여 '현대 고전'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노동의 배신>은 20년 전 미국 하층계급 노동자들 이야기이다.

이상한 것은 신자유주의가 꽃을 피우던 20년 전 미국 이야기인데도 2018년 대한민국 현실을 빼닮았다. 착취와 양극화, 빈곤이라는 20년 전 미국 현실에 우리를 투영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지만, 다시 한 번 노동의 가치를 생각하게 한다.

<노동의 배신>의 저자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웨이트리스, 청소부, 판매원, 요양원 보조, 매장 판매원 등으로 일하면서 겪은 워킹 푸어(Working Poor)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려냈다.

그는 3년 동안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으며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는 노동자가 아니라 통조림통에 보존된 '노동력'으로 존재했던 삶을 덤덤하게 풀어냈다. 저임금 노동자의 일상을 수필처럼 술술 이야기를 풀어가는 가운데 냉철하고 비판적인 시선 또한 놓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비숙련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만으로 실제 생활이 가능할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됐다. '일자리를 찾고, 그 일을 하고, 수입과 지출을 맞추는' 저임금 노동자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뛰어들어 체험 취재한 결과 <노동의 배신>이 태어났다.

저자가 경험한 저임금 노동 시장은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느냐, 백인이냐에 따라 노동 강도가 결정되고, 언제든지 대체가 가능한 소모품들이 넘치는 곳이었다.
사람의 '살'을 밝히는 월마트의 욕구는 충족될 줄을 몰랐다. 심지어 우리에게 아는 K마트 직원을 모두 데려오라고 권유했다. "그들은 우리를 제대로 교육시켰는지 어쩐지에는 관심이 없어요." 마를린은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우리가 불평을 하면 그들은 언제든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요." -249쪽

'시간 절도' 말하는 회사,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

오늘날 월마트처럼 폭발적으로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물류 유통업체들은 숙련된 노동자를 원하지 않는다. 저임금의 비전문 취업자를 선호한다. 고용주들은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인력을 확보하기에 열을 올리는 대신, 일말의 권리를 주장하는 노동자들을 솎아낸다.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시장에서 구직자들은 고용주들에게 비굴할 수밖에 없다. 고용주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직장에서 인간의 존엄을 찾는 건 사치일 뿐이다. 사측은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에 일 외의 어떤 것이든 다른 짓을 하는 것을 '시간 절도'로 규정하여 노동자들을 옥죄면서 정작 노동자들의 시간을 훔치는 것은 당연시한다. 저임금 노동자들은 휴식 시간과 근무 중 화장실에 갈 권리마저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형편이다.
"우리는 근무 중 화장실에 갈 권리가 노동자들에게 없다는 사실에 당황했지만, 노동자들은 필요할 땐 언제나 기본적인 생리 욕구를 해결하도록 고용주가 허락할 거라는 순진한 믿음을 외부인들이 갖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어떤 공장 노동자는 6시간 동안 휴식이 허락되지 않아 작업복 안에 붙여 둔 패드에 소변을 봤다. 한 유치원 교사는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스무 명의 아이들을 화장실 밖에 세워 놓고 일을 봐야 했다." -61쪽

자본에게 노동자의 권리는 안중에도 없다. 이미 입사해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잘 대우하기보다는 계속 새로운 사람들을 채용하는 데 몰두한다. 이게 20년 전 미국 이야기이고, 2018년 대한민국 현실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고용주들은 노동력 부족을 호소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진단한다.
"진정한 '노동력의 부족 현상'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현재 제시된 임금을 받고 일하려는 사람들의 수가 부족할 뿐이라는 것이다." -282쪽 

노동력 부족은 임금 정체일 수 있다는 저자의 진단은 옳다. 최저임금이 너무 높게 책정되었다면서 징징대는 고용주들이 노동력 부족을 이야기한다면 그야말로 억지다. 생활이 가능한 적정 임금을 지급한다면 노동력 부족 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임금 노동자들은 면접 과정에서부터 일하는 순간순간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다. 그저 일하는 기계로 취급받으며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그러다 관리자들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마저 범죄자 취급을 받기도 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손님들은 우리가 있는지도 몰라요. 그러다 객실에서 뭔가 없어지면 갑자기 이리 생각을 하고는 죽이려고 들죠." -70쪽

온갖 서러움을 겪으며 일하지만, 누구 하나 고맙다고 인사하지도 않는다. 누군가가 프롤레타리아 노동 계급의 영웅이라고 환영하는 일도 없고, 잘 했다고 칭찬하는 일도 없다. 고도로 양극화되고 불평등한 사회에서 빈민들은 경제적 우위에 있는 부자들의 눈에 띄지 않는 존재다. 그들은 도대체 얼마나 가난한 것일까? 얼마나 절박한지를 모른다고 해도 그들이 갖고 있는 소박한 꿈을 들어보면 가슴이 저릴 수밖에 없다.
"내가 바라는 건 다만 가끔씩 꼭 쉬어야 할 때 하루 쉴 수 있었으면, 그리고 그래도 다음날 식료품을 살 수 있었으면 하는 거예요." -165쪽

<노동의 배신>은 저임금 노동, 단순노동이라고 해서 쉬울 거라고 속단하지 말 것과 세상에 보잘것없는 직업이라도 '아무 기술도 필요 없는' 일이란 존재하지 않는 사실을 알려준다. 저자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딸린 가족이 없는 홀몸에, 건강하고, 차까지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땀 흘리며 열심히 일을 해도 먹고살기가 아주 힘겨울 정도로 빠듯하다고 했다.

가난을 직접 체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빈곤을 생존 자체는 위협받지 않는 상태로 보는 경향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우리 곁에 늘 있었으니' 어렵지만 어찌어찌해서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빈곤 때문에 겪어야 하는 고통의 심각성은 책상머리에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이 책은 강조한다.
"점심을 과자나 핫도그 빵으로 때웠다가 근무 시간이 끝날 때쯤이면 현기증이 나 기절할 지경이 되는 것을, 차가 '집'이 되기도 하는 상황을, 몸이 아프거나 부상을 입어도 이를 악물고 '참고 일해야' 하는 상황을, 병가 수당도 의료보험도 없으니 오늘 하루 일을 못하면 당장 내일 식료품을 살 돈조차 없는 절박함을 알 도리가 없는 것이다." -287쪽 

저널리스트가 3년이라는 오랜 기간을 잠행 취재했다고 해서 그의 경험이 다른 사람 경험과 비교 평가하는 잣대가 될 수는 없다. 저자는 인종, 학력, 건강, 동기, 모국어와 경제력 등 모든 면에서 다른 이들보다 월등히 좋은 조건을 갖고 있었을 정도로 저임금 노동자들의 전형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웨이트리스로, 청소부로, 요양원 보조로, 또는 매장 판매원으로 '일한 척'한 게 아니라 실제로 '그 일'을 했다는 점에서 진정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노동의 배신>은 저임금 노동자가 이 시대 경제의 제일 밑바닥에서 살아남으려 애썼던 기록으로 빈곤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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