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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한반도 대운하사업을 국정과제로 선정했다. 국민들의 반대여론에 4대강 사업으로 이름이 바뀌고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은 한국형 녹색 뉴딜 사업을 당했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총사업비 22조 원이 들었다고 한다. 수자원 확보, 홍수 예방과 생태 복원을 목적으로 내걸고 착공하였다. 4대강 주변은 생태공원, 자전거도로 등 다양한 복합공간을 꾸몄다.

내가 사는 곳은 부산시 북구 화명동이다. 대천천을 따라 걸어내려 가면 낙동강과 만난다. 4대강사업으로 만들어진 화명생태공원과 자전거도로는 휴일이면 사람으로 붐빈다. 파크골프장에도 어르신들이 가득하다. 수영장도 있다. 화명수상레포츠타운에서는 딩기요트, 윈드서핑, 카누, 카약, 수상스키 등을 할 수 있다.

그곳에서 딱 한번 모터보트를 탄 적이 있다. 마이크로시스틴(조류독소)을 알고 부터는 발길을 끊었다. 명절 때 고향(창녕)에 가면 공포영화의 배경 같은 생태공원들을 볼 수 있다. 풀밭에 덮인 농구장, 풀숲에 녹슨 운동기구, 축구장, 등 사람의 발길이 없는 유령공원이다.

김종술 기자를 만났다, 금강을 알게 됐다

2014년 서울에서 김종술 시민기자를 만난 적이 있다. 2014년 6.4지방선거 특별취재팀 교육이 있는 날이었다. 교육이 끝나고 회식을 하였다. 일찍 가신 분도 있었다. 기차 시간을 맞춰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귀찮아서 오마이뉴스 서교동 마당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기로 했다. 2층에서 잠을 잤다. 그곳에서 "내가 쓰는 기사는 따로 있다"며 스마트폰으로 댓글이 쉴틈없이 올라가는 기사를 보여주는 김종술 기자를 만났다.

 김종술 기자의 '위대한 강의 삶과 죽음'
 김종술 기자의 '위대한 강의 삶과 죽음'
ⓒ 한겨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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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부터 페이스북 친구가 되고 금강의 하루하루를 보게 되었다. '현장에 답이 있다', '발로 쓰는 기사'란 말이 있다. <위대한 강의 삶과 죽음>은 발로 쓴 기사가 아니고 김종술 기자의 온몸으로 쓴 '금강의 일기'였다. 금강의 현장에는 답이 아니고 아픔이 있었다. 남의 일기를 몰래 보는 재미가 있다지만, 김종술 기자가 10년간 써내려 간 금강의 일기는 아팠다. 농사 지을 땅을 빼앗기고 받은 돈은 마을공동체를 없애버렸다. 물고기는 떼죽음하였다.

김 기자가 13일 동안 파악한 폐사한 물고기 수는 60만 마리였다. 초동 대처가 미흡해 사고를 키웠던 환경부는 "죽은 물고기 수만 마리 중에 90퍼센트 이상은 수거를 한 것 같다. 인간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p87)라고 했다.

"집단폐사 규모가 상상을 초월했지만 환경부는 끝까지 '용존산소 고갈에 의한 질식사'는 인정하지 않았다. 서슬 퍼런 정권에서 4대강 사업의 부작용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p87)

물고기 집단폐사와 악성댓글과 온갖 협박('팔도의 온갖 욕지거리를 다 들었다'고 한다)을 겪고 김기자는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 그는 아직도 현장을 지키고 있고 그때도 금강을 떠나지 않았다.

물이 많아야 오염이 덜 된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이 있었다. 교수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고인물은 썩는다"라는 상식도 모르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4대강에는 '보'라고 하는 댐들이 생겼다. 물은 갇혔고 흐르지 않는 거대한 저수지가 되었다. 강바닥을 파헤치고 수심은 깊어졌다.
"댐을 만들자 강의 정화작용이 멈춰 버렸다. 결국 모래 때문에 그런 것이다. 강을 되살리려면 강에서 퍼낸 모래를 강에 되돌려줘야 한다. 예전처럼 모래와 자갈이 다시 쌓이려면 수십 년, 아니 수백 수천 년이 걸릴지도 모를 일이다."(p109)  

MB정권은 골재채취로 4대강 살리기 사업비를 충당한다고 했다. 책을 읽다보면 4대강 살리기의 거짓말은 끝이 없이 나온다. 그는 온몸으로 금강의 하루하루를 기록했고 아파했다. 녹조 띠가 선명한 강물을 떠서 부유물을 대충 입으로 후후 불어내고 강물을 마셨다.

자신의 몸으로 수질을 검사한 것이다. 느닷없이 금강에 나타난 큰빗이끼벌레를 먹었고 현장만을 기록하는 기자가 아니가 큰빗이끼벌레의 생태전문가가 되었다. 사진으로 보는 금강의 녹조는 초현실주의 유화를 보는 듯 했다.

녹조로 덮인 금강 기사를 보고 나도 자전거를 타고 낙동강으로 가 본적이 있다. 양산에 있는 원동취수장을 근처에서 녹색의 강을 바라보았다. 돌멩이를 던져 보았다. 녹색의 페인트가 튕겨져 올라왔다. 제법 두껍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폐사한 물고기도 보았다. 2016년 낙동강 함안보와 창녕보에도 다녀왔다. 임희자 마창진환경운동연합실장의 안내로 어민을 만났고 농부도 만났다. 조류독소 마이크로시스틴을 처음으로 들었다.

단숨에 읽어내린 10년 금강의 일기

 4대강 사업 후 폐준설선이 방치되어 있는 충남 부여군 사산리 강물도 녹조로 덮였다.
 4대강 사업 후 폐준설선이 방치되어 있는 충남 부여군 사산리 강물도 녹조로 덮였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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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녹조 전문가 박호동 국립신슈대 교수에 따르면, 녹조에서 분비되는 독성물질인 '마이크로시스틴'은 정수 처리를 해도 100% 제거할 수 없다. 또한, 한국의 4대강 녹조는 1%가 남더라도 WHO의 기준치를 초과한다고 했다. 1300만 영남인의 식수원이 '독조라떼'가 되었다.

이날 만난 어민은 "녹조에서 '마이크로시스틴'이란 독성 물질이 나왔다는 이야기 들은 후에는 물고기 팔 생각 안 합니다. 잉어, 붕어, 민물 장어 이런 게 다 보양식으로 먹었던 건데... 지금은 내가 이거 팔면 독약을 파는 것과 다름없으니 어째 팔 수 있겠습니까? 옛날(4대강 사업 전)에는 친구들이 전화 와서 '고기 좀 잡아도' 하면 그날 그물 쳐서 잡았는데. 지금은 전화 오면 '없다, 먹지 마라'고 말합니다"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나는 이 책을 무박2일로 단숨에 다 읽었다. 금강을 온몸으로 기록한 글이 <위대한 강의 삶과 죽음>이었다. 금강요정의 다큐였다. 영국의 영화감독(평론가)인 존 그리어슨 로버트 플레허티의 <모아나>(1926)를 보고 "It had 'documentary' value"라고 하였다. '기록할 만한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고 뉴욕 선(New York Sun, 1926.2.8)에 썼다. 금강요정 김종술 기자의 기록도 어느 것 못지 않게 가치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 기자는 에필로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취재 도중 구타를 당하는 일도 많았고, 전화나 댓글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듣는 일도 많았다. 야멸찬 빚 독촉이 어깨를 짓누르고, 수북한 약봉지가 내 건강상태를 말해준다. 하지만 무엇보다 무섭고 두려운 것은 '4대강 괴물'들이 저지른 일들이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지는 것이었다."(p325)
"물안개의 강이자 백로와 고라니의 강이며 사람의 강이다. 예전처럼 다시 살아날 강을 기다리며 강의 변화를 기록한다. 강이 깨어나면서 숨을 토하는 하얀 새벽 강가에서 나는 지금도 공존의 강을 꿈꾼다. 강에서 살아가며 강을 찾는 사람들을 맞이할 것이며 강으로의 '소풍'에 동참할 것이다. 이 기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p328)

그의 기록은 끝나지 않았고 '4대강 괴물'들이 저지른 일들은 기억될 것이다. 금강이 다시 살아나 온갖생명이 공존하는 금빛 모래의 금강을 기대하며 '위대한 금강의 새 삶'을 기다린다.

덧붙이는 글 | 위대한강의삶과죽음/지은이 김종술/펴낸곳 한게레출판(주)/가격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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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입니다. 콜포비아(전화공포증)이 있음. 자비로 2018년 9월「시(詩)가 있는 교실 시(時)가 없는 학교」출판했음, 2018년 1학기동안 물리기간제교사와 학생들의 소소한 이야기임, 알라딘에서만 만날수 있음.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을 연재하며,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