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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팅게일은 죽었다>와 <유명>은 현직 간호사인 김민경 선생이 쓴 에세이다. <나이팅게일은 죽었다>는 간호사로 일하면서 만났던 환자와 그에 얽힌 사연 그리고 간호사라는 직업에 관한 자기 생각이 담았고 <유명>은 병원에서 유명을 달리한 환자들에 대한 소회와 의료인으로서 죽음에 대한 자기 생각을 담담하게 밝히고 있다. 제본이 조금 특이해서 겉에서 보면 한 권이지만 표지를 펼치면 그 안에 <나이팅게일은 죽었다>와 <유명>이 다소곳이 들어 있는 세트다.

엉뚱한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의사나 간호사가 쓴 병원에서의 에피소드를 쓴 책들은 철학서로 분류하는 건 어떨까 싶다. <나이팅게일은 죽었다>와 <유명>뿐만 아니라 응급의학과 의사 남궁인의 <만약은 없다>라든가 외과 의사 박경철이 쓴 <시골 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같은 책을 읽으면 삶과 죽음에 대한 원초적인 시각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굳이 의사나 간호사가 쓴 책을 읽지 않아도 환자든 보호자든 병원에서 오래 생활하다 보면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과 가치관이 순식간에 달라진다. 모친과 독신으로 세상을 떠난 누나 덕분에 대략 20개 가까운 병원을 보호자 겸 간병인으로 순례한 내 경험을 봐서도 그렇다. 반신불수가 된 어머니와 누나의 대소변을 받고 샤워를 시키고 자정을 넘은 시간에 눈을 비비며 검사실을 오갔다.

병원 생활에 이골이 난 나는 죽음 자체보다도 대부분 인간이 병원 생활을 거쳐서 죽음으로 향해야 한다는 것이 더 무섭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기저귀를 갈았거나, 간호사가 다녀가서 잠깐의 여유가 생기면 병원의 옆문으로 나가 바깥공기를 맛보았다.

환자를 보살피면서 내 나름대로 사투(?)를 벌인 후라서 그런 탓인지 반대쪽 영안실 유가족들이 유난히 걱정근심이 없어 보였고 여유 있게 보이기까지 했다. 병원 생활은 환자뿐만 아니라 보호자들도 그토록 고되다. 그러고 보니 병원이 일터이고 평생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의 고충과 애환은 짐작하기 어렵다.

김민경 간호사의 두 저서 <나이팅게일은 죽었다>와 <유명>은 간호사의 업무환경이 얼마나 고된 것인지를 잘 알게 해준다. 환자나 보호자로 병원에 오래 생활하다 보면 의사는 천상에 있는 신적인 존재이고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는 내 주위에서 나를 보살펴 주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라고 느끼게 된다. 간호사는 그만큼 환자가 온종일 피부로 느끼며 같이 부대끼는 존재라서 간호사의 작은 친절과 배려가 환자나 보호자의 입장에서는 금쪽같은 위로와 도움이 된다.
" 부디 내 몸이 잘 견뎌주면 좋겠다.
당신의 몸 또한 잘 견뎌주기를 바란다." - <나이팅게일은 죽었다> 중에서 
 
<나이팅게일은 죽었다>에서 가장 감동적으로 읽은 구절이다. 화장실조차 타이밍을 봐가면서 간신히 다녀와야 하는 간호사다. 환자의 몸 상태를 걱정해주고 공감해주는 간호사는 얼마나 소중한가. 나는 간호사가 좀 더 여유로운 환경 속에서 근무하기를 간절히 원한다.

나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고 생사를 넘나드는 상황 속에서 환자의 가장 중요한 동료인 간호사는 마땅히 충분한 보수와 합리적인 근무체계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간호사의 복지는 환자의 복지이며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환자가 되어야 할 운명이다.
"하던 일을 멈추고 즉시 환자복과 소독할 물품을 챙겨서 병실로 향했다. 그녀는 무거워진 두 다리를 움직인 후여서, 헐떡이는 숨을 고르고 있었다. 가서 보니 환자복은 물에 담갔다 뺐다고 해도 믿을 만큼 흠뻑 젖어 있었다. '얼마나 찜찜했을까.' " - <나이팅게일은 죽었다> 중에서 
 
환자에게 중요한 것은 의사의 뛰어난 의술도 물론이겠지만 의료진에게서 느끼는 환자에 대한 공감도 빼놓을 수 없다. 축축해진 환자복을 입고 침대에서 숨을 헐떡이는 환자를 처지 하면서 '업무'라고 생각하는 것과 '얼마나 찜찜했을까'라는 공감을 앞세우는 것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환자와 보호자는 안다.
표지사진
▲ 표지 사진 표지사진
ⓒ 에테르니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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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경험으로는 병원이라는 살벌한 곳에서 따뜻한 온기를 느끼게 해준 것은 대부분 간호사였다. 이 책의 저자인 김민경 간호사도 책에서 말했지만, 좁은 간병인 침상에서 쪽잠을 잘 때 보호자를 깨우지 않으려고 살포시 걸어와서 조용히 처치하고 가는 간호사에게서 큰 위안을 느낀다.

간병인으로서 웬만한 일을 모두 할 수 있다고 생각한 내가 축축해진 침대 시트를 갈지 못해서 쩔쩔맬 때 '제가 도와드릴게요'라며 능숙하게 시트를 갈아주고 홀연히 사라진 간호사의 도움을 수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한다.
"마찬가지 이유로 많은 암 환자들 역시 '죽음'이 사정권에 들어왔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이를 직시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싸워보려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이곳에서 죽음을 앞둔 많은 환자를 지켜본 결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그렇게 짧은 시간의 생각과 다짐으로 극복해내기엔 버거운 존재처럼 느껴졌다. 많은 환자가 죽음 앞에 선 자기 자신을 부정하려 들거나 무력감을 극복하지 못한 채로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죽음을 하나의 현실 정도로 받아들인 이들은 아직도 내 뇌리에 강하게 기억된다." - <유명> 중에서 

이 구절을 읽으면서 '죽음의 기술'은 선택이 아니고 필수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죽음을 하나의 현실로 받아들이는 담대한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나이팅게일은 죽었다>와 <유명>은 출판사 홈페이지(https://www.aeterni.co.kr/store)에서만 판매하는 용감한 책이다. 판매금 일부를 간호사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서 사용한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 김민경 간호사는 자신의 몸뿐만 아니라 환자의 몸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사람이다. 그의 따뜻함이 환자들의 고통을 녹여내기를 빈다. 


태그:#간호사, #김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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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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