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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西安)은 뤄양(洛阳), 난징(南京), 베이징(北京)과 함께 중국 4대 고도(古都)로 불린다. 중국의 역대 13개의 왕조가 이곳을 수도로 지냈을 만큼 정치, 경제, 지리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이자 역사적 의미가 큰 곳이다. 다른 한편으로, 시안은 중국 역사의 크고 작은 부침을 그만큼 많이 겪은 곳이기도 하다.

시안 종루(钟楼)를 끼고 발달한 시안 시내 중심지 한편으로 하루에도 수 만 명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회족 거리(후이민지에, 回民街)가 자리하고 있다.
시안 회민지에의 야간 풍경
 시안 회민지에의 야간 풍경
ⓒ 강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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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족은 중국 소수민족 가운데서도 세 번째로 많은 인구를 가진 민족인데,  6, 7세기 중앙아시아와 중동 지역에서부터 유입된 이민족과 한족(汉族) 사이 혼혈의 역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들은 존재 자체로 2천 년 전부터 동서 교역을 이었던 고대 실크로드의 살아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시안이 바로 그 교역로의 동쪽 기점인 점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시안 회족 거리에서 만난 회족의 모습
 시안 회족 거리에서 만난 회족의 모습
ⓒ 강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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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은 중국 역사상 문화와 경제가 가장 번성했던 당나라의 수도이기도 하다. 동서 교역의 발달로 경제적 부흥과 문명의 꽃이 만개했던 당시 장안(长安)의 인구 수는 100만 명을 넘어서며 국제 도시로서의 면모를 두루 갖추고 있었다.

오늘날 '물건'이라는 의미의 중국어 '东西(똥시)'의 유래도 당대 동서 교역의 한 축을 이루었던 당시 시안의 역사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당시 장안의 동쪽에는 국산품을 거래하는 커다란 시장이 발달해 있었고, 서쪽에는 서역에서 들여온 수입품을 판매하는 국제 시장이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 두 개의 시장을 아울러 '동쪽과 서쪽의 시장'이라는 의미에서 점차 '없는 것 없이 모든 물건이 다 있는 곳'으로 '东西'라고 불렀으며, 이 단어가 점차 '물건'을 뜻하는 일반 명사가 되었다는 설명이다. 당시 장안의 발전 규모와 경제적 위상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시안의 번영과 발전은 영원하지 못했다. 오랜 역사의 풍파와 함께 영광과 쇠락의 길을 반복하다 점차 빛을 바래고 만 것이다. 무엇보다 1987년 개혁개방과 함께 찾아 온 '신중국' 경제 발전 시기에 이 지역의 경제, 문화, 사회적인 지위가 성장의 궤도에 밀려 떨어진 것은 두고두고 뼈아픈 상처가 됐다.

베이징, 상하이, 선전 등 중국 동부 연안 지역의 도시들이 옛 시안의 영광을 재연하고 있는 동안, 시안을 비롯한 옛 중원 지역은 가난하고 문화적으로 낙후된 지역이라는 오명을 안게 되었다.
시안 회족 거리 근처의 고루
 시안 회족 거리 근처의 고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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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시안이 최근 부흥을 꿈꾸고 있다. 바로 일대일로(一带一路)라고 불리는 '新실크로드' 로드맵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으로 요약되는 '중국몽(中国梦)'의 구호가 대륙 전역에 퍼지면서 시안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시안 시내를 여행하는 내내 뿌연 연기를 뒤집어 쓴 도시 이 곳 저 곳에 철거되는 옛 건물과 곧고 높게 뻗어 올라가는 신식 건물의 뚜렷한 대조가 눈에 띠었다. 고도(古都)의 이미지를 기대하고 왔던 시안에 높고 으리으리한 고층 빌딩과 현대식 아파트가 즐비한 모습은 어쩐지 생경하고 묘한 이질감을 불러 일으켰다.

시안이 예상과는 달리 여느 대도시와 비슷한 느낌이라는 말에 한 택시 기사가 하소연을 늘어 놓았다.

"요 몇 년 사이 시 주석이 시안을 두 세 차례 다녀갔어요. '도시 미관을 아름답게 하라'는 시 주석의 말에 공무원들이 어찌나 열심히 일을 했는지, 시 주석이 한 번 다녀갈 때마다 시안이 아주 깨끗해졌죠. 그런데 도시가 깨끗해지면서 새로운 건물이 올라가고, 집 값도 제멋대로 뛰기 시작했어요. 2-3년 전만 해도 1㎡에 7, 8천 위안 하던 집들이 이젠 1만 5천 위안을 줘도 구하기 힘들 정도에요. 돈이 많은 사람, 외지 사람들이 엄청나게 투자하고 있어요. 원래 시안 토박이로 살던 우리 소시민들은 오히려 시안이 알려지고 개발되면서 사는 게 힘들어졌어요. "

택시를 타고 도착한 시안 명대성벽에 오르자 시안 일대가 드넓게 시야에 들어온다.
시안 시내에 자리하고 있는 명대성벽
 시안 시내에 자리하고 있는 명대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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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에 축조된 이곳 성벽은 중국 전체의 고성(古城) 가운데서도 규모가 크고 보존 상태가 매우 좋은 것으로 여겨진다. 2014년에는 미쉘 오바마 전 영부인과 두 딸이, 2015년에는 시진핑 국가 주석과 모디 인도 총리가 함께 이곳을 방문하면서 더욱 이름을 알렸다.

이곳에 서고 보니 화산 여행 당시 우리를 안내했던 여행사 직원의 말이 다시 생각났다.

"시간이 있으신 분들은 명대성벽도 꼭 둘러보세요. 그 길이가 총 13.74km인데, 이는 역대 13개의 왕조가 시안을 거쳐갔다는 뜻입니다. 신기하지 않나요? 그런데 0.74m가 남아 있으니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시안이 미래 역사의 주인공으로 여전히 그 길을 가고 있다는 뜻이죠. 아마 이곳에서 14번째 황제가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죠."

버스 안의 사람들이 다 함께 웃었다.
명대성벽에서 바라 본 석양
 명대성벽에서 바라 본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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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의 부활을 꿈꾸는 시안. 동서의 문화, 흥망의 질곡, 고대와 현대가 뒤섞인 도시 시안이 다시금 꿈틀거리고 있다. 과연 시안은 과거의 영광을 재연할 수 있을까? 그 길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태그:#시안여행, #신실크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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