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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년 만의 폭염으로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2018년 여름이다. 올해는 역대 최악의 폭염으로 기록되었다. 한반도를 데우는 끝없는 열기만큼 물가도 치솟는다. 지갑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오는 시대다.

마트에 가면 어느 것 하나 쉽게 손길 가는 식재료가 없다. 연일 지속되는 무더위 탓에 야채 역시 실한 것을 고르기란 힘들다. 속이 빈 강정처럼 보이는 알배추가 5천 원을 훌쩍 넘어서니 엄두가 안 난다.

그렇다고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아들 녀석들을 굶겨 지낼 수는 없다. 성인인 나보다 더 많이 먹는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의 식성만큼은 집밥을 고수할 수밖에 없다. 웬만한 성인 식사량을 자랑하는 큰 아이의 식성 크기만큼 외식 비용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퇴근 시간 무렵이 되면 '오늘은 또 뭘 해 먹지?'라는 고민을 매일 머릿속에 장착하며 산다. 조금 더 맛있고, 조금 더 건강하게, 조금 더 저렴하게 효과적인 한 끼 식사를 먹고 싶은 욕심이 앞선다.

치솟는 물가 폭탄에 찾은 소심한 피난처는 '냉장고 파먹기'.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만들어 먹는다. 가장 큰 틀은 어떤 메뉴를 만들어도 한 끼로 끝내기보다 몇 가지 버전으로 활용해 만들어내려고 노력한다.

우선, 음식을 먹고 남은 양념이나 국물이 있으면 뭐든 볶음밥으로 적극적으로 재탄생시킨다. 우리 가족은 집에서 종종 오리 불고기를 먹는다. 집 근처 맛집에서 외식하면 5만 원이 훌쩍 넘기에 되도록 집에서 먹는다.

오리 불고기 하나로 4가지 요리를

부추넣은오리불고기
▲ 오리불고기 부추넣은오리불고기
ⓒ 김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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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서 7980원으로 오리고기 작은 팩을 하나 산다. 오리 불고기만큼은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최고의 집밥 메뉴다.

오리불고기를 다 먹고 나면 남은 양념에 김치를 잘게 다져 넣고 볶음밥 메뉴로 재탄생시킨다. 볶음밥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거라면 김치 몇 점, 김가루, 참기름, 깨소금만 있으면 끝! 약간 바짝 익혀 먹으면 고소한 향기가 풍미를 더해준다. 남편도, 나도, 아이들도 즐겨 먹는 메뉴 중에 하나다.

오리불고기 볶음밥
▲ 오리불고기 볶음밥 오리불고기 볶음밥
ⓒ 김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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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고기에서 부추는 빠질 수 없는 환상의 궁합. 그러나 부추는 소량만 사용하기 때문에 늘 많이 남게 된다. 이 부추를 활용해 다양한 밑반찬을 만들어낸다.

오리고기에 사용하고 남은 부추는 겉절이로 재탄생
▲ 부추겉절이 오리고기에 사용하고 남은 부추는 겉절이로 재탄생
ⓒ 김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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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부추를 부추전으로 만들어 먹거나, 새콤달콤 부추 겉절이로 만들면 무더운 여름 식욕 자극에 인기 만점이다. 오리 불고기 하나로 볶음밥은 물론 부추전, 부추 겉절이까지 덤으로 탄생한다.

오리불고기에 사용하고 남은 부추는 전으로 재탄생
▲ 부추전 오리불고기에 사용하고 남은 부추는 전으로 재탄생
ⓒ 김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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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좋아하는 떡볶이 양념 역시 절대 그냥 흘려버리는 법이 없다. 먹고 남은 떡볶이 국물에 밥과 깨소금, 참기름, 김가루, 계란(혹은 김치)을 넣어서 볶아주면 환상의 떡볶이 볶음밥이 완성된다.

떡볶이 떡이 없으면 떡국떡으로 떡볶이 만들기
▲ 없으면 없는대로 떡볶이 떡이 없으면 떡국떡으로 떡볶이 만들기
ⓒ 김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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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영양적인 요소를 추가하고 싶다면 냉장고에 있는 각종 야채를 다져 넣으면 환상 조합이다. 국물까지 어느 것 하나 버리지 않고 '외전 레시피' 메뉴를 만들어내는 것. 미친 듯이 오르는 마트 물가에서 내가 살아남는 방법이다.

냉장고에 잠든 식재료 적극 활용하기

과거에는 모든 요리 재료가 제대로 갖춰야만 요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냉장고 파먹기를 하면서 먹다 남은 음식, 혹은 어중간하게 남은 재료를 재활용하는 빈도가 높아졌다.

냉동실에 어중간하게 남은 김을 기름 없이 달군 프라이팬에 구워 간장, 설탕, 참기름, 깨소금 그리고 대파든 잔파든 냉장고에 있는 파를 활용해 김 무침을 만들어낸다.

냉동실에 어중간하게 남은 김들은
김무침으로 재탄생
▲ 김무침 냉동실에 어중간하게 남은 김들은 김무침으로 재탄생
ⓒ 김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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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국으로 떡볶이를 만들어 먹기도 하고, 냉장고에 남은 각종 야채를 계란 물에 풀어 계란전을 만들어낸다. 이날은 분홍 소시지가 어중간하게 남아 집에 있는 대파와 함께 잘게 다져 계란전을 만들었다.

여기에 외전 레시피를 풀어놓자면, 바쁜 아침에 버터에 구운 식빵에 딸기잼을 살짝 발라 이 계란전을 넣으면 된다. 시중에 프랜차이즈점 토스트 가게와 흡사한 계란 토스트 맛이 난다. 바쁜 아침에 뚝딱 만들어 먹는 엄마표 계란 토스트! 아이들에게도 인기 만점이다.

'반숙'이 포인트인 계란밥 찬스

무더운 여름에도 손쉽게 탄생하는 일명 엄마표 계란밥. 어린 시절 즐겨먹던 계란, 간장, 참기름, 깨소금을 넣고 비벼 먹는 계란 비빔밥과 사뭇 다르다. 일단 바짝 달궈진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계란을 한쪽 면만 바짝 익힌다.

밥 위에 김가루를 뿌리고 한쪽 면만 익힌 계란을 얹는다. 그리고 일본식 만능 간장이라 불리는 쯔유를 두 방울, 깨소금, 참기름을 넣고 비벼 먹으면 우리가 먹던 계란밥과 조금 색다른 맛이 난다.

제일 중요한 것은 반숙처럼 덜 익은 계란이다. 우리 집 아들은 물론이며 나 역시도 밥하기 귀찮을 때나, 무더운 여름 가스레인지 앞에 서 있기 힘든 날에는 어김없이 계란밥 찬스를 쓴다.

치솟는 물가가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닌 요즘, 외전 레시피로 또 다른 메뉴를 창작해내는 재미에 푹 빠졌다. 사랑을 가득 넣어 만든 집밥을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노라면 '안 먹어도 배부르다'라는 어른들의 말씀에 절로 끄덕여진다. 별 것 없는 저녁 식사 한 끼지만 우리 가족에게 만큼은 오늘 하루의 고단함을 씻어주는 든든한 한 끼 식사 시간이 된다.

무엇보다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를 적극 활용하고, 만든 음식을 재창작해 또 다른 메뉴로 만들면서 요리 실력도 나날이 번창하고 있다. 요리만큼은 정말 못하겠다고 손사래를 쳤던 지난날과 달리, 이제 결혼 11년 차 주부 경력이라고 조금은 목소리에 힘주며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맞벌이 하느라 배달 음식과 외식을 즐겼던 우리는 가계부의 주요 지출 항목 중 식비 앞에서 깊은 탄식을 했다. 지난날에 반성하며 치솟는 물가에 대비해 시작한 냉장고 파먹기는 집밥으로 이어졌다. 엄마 아빠의 손에서 만든 집밥이 경제적인 효과, 정서적인 효과, 거기에 건강까지 찾았다. 이래서 내가 집밥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개인 블로그(욕심많은워킹맘: http://blog.naver.com/keeuyo) 에도 게재되었습니다.



태그:#치솟는물가, #한숨짓는밥상, #냉장고파먹기, #냉파, #집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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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업은 회계팀 과장, 부업은 글쓰기입니다. 일상을 세밀히 들여다보며 기록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취미로 시작한 글쓰기가 이제는 특기로 되고 싶은 욕심 많은 워킹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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