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 침울 그 자체 26일 오후 (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야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야구 B조 조별리그 1차전 한국과 대만의 경기에서 패한 한국 선수들이 굳은 얼굴을 하고 있다. 2018.8.26

▲ 한국 야구 침울 그 자체 26일 오후 (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야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야구 B조 조별리그 1차전 한국과 대만의 경기에서 패한 한국 선수들이 굳은 얼굴을 하고 있다. 2018.8.26 ⓒ 연합뉴스


'한국야구의 은메달을 기원합니다.' 누리꾼들의 조롱섞인 염원으로 시작했던 구호가 이제는 정말로 현실이 될 수도 있는 상황에 놓였다. 선동열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26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GBK 야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야구 대만과의 B조 예선라운드 1차전에서 1-2로 패했다.

1회 선발 양현종이 투런 홈런을 허용한 것을 끝까지 만회하지 못했다. 믿었던 타선은 4회말 김재환이 솔로홈런으로 겨우 한 점을 뽑아낸 것이 전부였다. 프로 선수와 해외파들이 포함된 최정예도 아니고 실업팀 선수들 위주로 구성된 대만에게 KBO리그 최고의 선수들이 당한 패배라 충격이 더 크다.

선발부터 비난 여론 시달린 대표팀... 여론 바뀐 이유는

박수 치는 선동열 26일 오후 (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야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야구 B조 조별리그 1차전 한국과 대만의 경기. 선동열 감독이 박수를 치고 있다. 2018.8.26

▲ 박수 치는 선동열 26일 오후 (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야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야구 B조 조별리그 1차전 한국과 대만의 경기. 선동열 감독이 박수를 치고 있다. 2018.8.26 ⓒ 연합뉴스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이 대만에 패배한 것은 2006년 도하 대회 이후 12년 만이다. 당시 한국은 일본에게도 패하며 동메달에 그쳤는데, 1998년 방콕 대회 이후 프로 최정예 선수들로 구성된 대표팀이 금메달을 놓친 유일한 대회가 됐다. 대만전 패배가 단순히 한 경기를 진 것 이상의 의미로 다가오는 이유다.

하지만 '대만 쇼크'를 바라보는 야구팬들의 시선은 그때보다 더 냉랭하다. 12년전 '도하 참사' 당시에도 실망과 충격은 컸지만 기본적으로 '한국야구의 진짜 실력이 이 정도는 아니'라는 애정에 기반한 질타에 더 가까웠다면, 이번 대만전 패배를 바라보는 팬들의 반응은 오히려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다.

야구대표팀은 선수 선발 과정에서부터 팬들의 호된 비판 여론에 시달렸다. 오지환-박해민 등 KBO리그에서 특출한 성적을 내지 못한 선수들이 대표팀에 발탁되면서 병역미필자 안배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근본적으로는 특정 선수만의 문제를 떠나 금메달을 따면 병역혜택이 주어지는 아시안게임이 사실상 '프로 선수들의 합법적 병역기피를 위한 창구'로 변질되어버린 것에 대한 불만이 누적된 결과였다.

1998년 방콕 대회 이후 역대 아시안게임을 통하여 수많은 프로선수들이 병역혜택을 얻었고 이후의 선수 경력을 순탄하는 이어가는 데 큰 도움이 됐다. 10~20년 전만 하더라도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박찬호나 추신수같은 해외파들은 '국위선양'이라는 명분으로 아시안게임 출전을 통해 병역혜택을 얻는 데 국민적인 지지도 높았다. 국제대회가 많지 않은 야구의 특성상, 최고의 선수들을 볼 수 있다는 희소성 때문에 대표팀은 야구판 '드림팀'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한국야구를 바라보는 '거품론'과, 왜곡된 병역혜택 제도의 문제점이 하나둘씩 드러나면서 여론은 점점 차갑게 바뀌기 시작했다. 아시안게임은 국제야구계에서 있어서 그리 비중이 큰 대회가 아니며 국가별 수준 차가 매우 크다. 그나마 경쟁자인 일본과 대만도 아시안게임에는 전통적으로 실업팀이나 사회인 야구 선수들이 주축이 된 2진을 파견한다. 아시안게임에 프로 최정예 1진을 내보내는 유일한 국가는 한국뿐이다. 사실상 병역혜택을 노린 것 외에는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집착할 명분을 찾기 힘들다.

2014년 인천 대회는 팬들이 야구대표팀에 등을 돌리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됐다. 한국은 홈에서 대만을 꺾고 4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여론의 반응은 싸늘했다. 최정예 선수들을 내보내고도 결승전에서 한 수 아래인 대만에 고전하다가 겨우 이겼지만 경기력은 실망스러웠다. 어느새 국가를 대표한다는 명예 보다는 '개인과 집단의 이윤만을 추구하는 도구'로 변질된 프로야구계와 아시안게임의 현 주소에 팬들은 실망을 금치 못했다.

'대만 쇼크'를 통해 우리 선수들이 깨달아야 할 것은

역투하는 양현종 26일 오후 (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야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야구 B조 조별리그 1차전 한국과 대만의 경기. 선발 투수 양현종이 역투하고 있다. 2018.8.26

▲ 역투하는 양현종 26일 오후 (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야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야구 B조 조별리그 1차전 한국과 대만의 경기. 선발 투수 양현종이 역투하고 있다. 2018.8.26 ⓒ 연합뉴스


선동열 감독이 이끄는 이번 대표팀의 경우, 전체적인 병역미필자의 숫자는 오히려 역대 대회에 비하면 많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이미 야구대표팀의 정체성을 둘러싼 불신과 의혹의 시선이 이미 높아진 상황에서 선수 선발부터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탓이 크다. 악화된 여론에 성실하게 대처하거나 이슈를 전환할 만한 방향성을 제시하지도 못했다. 그저 이번에도 '금메달만 따면 분위기가 달라지겠지'라는 안이한 기대에 젖은 모습은 아직도 야구인들이 얼마나 국민정서와 동떨어져있는지를 보여준 장면이다.

대만 쇼크는 한국 프로야구의 거품을 보여준 '쓴 약'이기도 했다. 비록 은메달을 기원한다는 조롱을 당하기도 했지만 객관적인 전력상 실업팀 수준의 대만에게 정말로 질 것이라고 예상한 전문가들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KBO리그에서 억대 몸값을 자랑하는 한국 선수들은 정작 국제대회에서 무기력했다. 타고투저가 수년째 지배하고 있는 KBO리그에 익숙해진 탓에 국제대회에서 만난 생소한 투수들을 상대로는 구위가 그리 뛰어나지 않았음에도 공략에 애를 먹었다. 패배보다 실망스러운 것은 끝까지 몸을 날리며 상대를 괴롭히는 투지조차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애초에 병역혜택 외에는 아시안게임에 절박하게 연연할 이유가 없었던 선수들의 동기부여와 목표의식이 약해진 것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야구의 경쟁력은 이미 세계 각국의 정예멤버들이 출전하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2013년과 2017년, 2회 연속 1라운드에서 탈락하는 굴욕을 겪으며 위험신호를 드러냈다. 일본이나 미국같은 최강 팀과는 만나지도 못했다. 오히려 다소 만만하게 여겼던 네덜란드와 이스라엘에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국내에서의 높은 인기에 도취되었지만 정작 한국야구의 경쟁력이 정체 혹은 퇴행의 길로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준 장면이다. 그리고 이제는 아시안게임에서 대만 2군에게도 농락당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양적 팽창에만 연연하여 질적인 개혁에 소홀했던 대가다.

물론 선동열호에게 이번 아시안게임이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남은 경기에서 분전하여 다시 결승까지 올라가서 설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대표팀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에서 아시안게임 메달 여부는 처음부터 그리 중요하지 않게 된 지 오래다. 지금 한국야구에 가장 필요한 것은 메달이 아니라, 어쩌다가 이러한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돌아보는 통렬한 반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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