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의학 드라마 속 의사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일각을 다투며, 환자를 위해 헌신하는 정의로운 모습으로 구현된다. 그러나 이런 모습과 다르게 의사를 그린 작품이 있으니, 바로 JTBC 드라마 <라이프>의 이야기다.

의료 산업의 현실적인 문제, 의사들이 처한 딜레마

 드라마 <라이프>의 한 장면

드라마 <라이프>의 한 장면 ⓒ JTBC


상국대병원에 새로 부임한 사장 구승효(조승우 분)는 병원 내 의료 실태를 고발한다. 특히 그는 병원의 폐쇄적 구조로 인해 비밀에 부쳐진 투약 의료 사고를 세상에 드러냈다. 해결책으로 구승효가 제시한 방안은 '바코드 리더기'의 도입이었다. 그러나 이는 모 기업인 화정 그룹 소속 화정 화학에서 얻어온 것이었다. 대신 상국대는 화정 화학이 생산한 약을 독점 공급할 수 있게 했다. 병원 산하에 제약 유통 자회사를 설립해 독점 계획을 진행하기 위한 발판인 셈이었다.

또한 구승효는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병원 내 성과급제를 도입한다. 이에 소신 있는 진료가 사명이라고 생각하던 응급의료학과 센터장 이동수(김원해 분)도 변하고 만다. 지난 21일 방송에서는 이동수가 예진우(이동욱 분)에게 할당량을 맞추기 위해 비싼 처방을 내리라고 당부하는 장면이 방영됐다. 이와 같이 구승효는 견고하던 의료진 내부 시스템의 분열을 가져온다. 의사들은 의견을 일치하고 외부인과 싸우기보다 개인의 득실에 따라 행동하니 말이다.

병원 재단을 좀 더 편리하게 하기 위해 구승효는 부원장 김태상(문성근 분)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병원장 선거를 앞두고 김태상은 대리수술을 행했던 전적이 밝혀져 징계를 받는다. 당연지사 김태상의 기세는 완전히 꺾이고 새로운 병원장 자리는 오세화(문소리 분)가 차지한다. 그러나 오세화는 보호자가 없는 환자는 입원을 받지 않으며, 후배 양성을 잘한다는 소문 뒤에는 상위 엘리트 집단만을 끌고가는 이면이 있는 자였다.

실리 추구하는 오세화, 양면성 완벽하게 연기하는 문소리까지

 드라마 <라이프>의 한 장면.

드라마 <라이프>의 한 장면. ⓒ JTBC


오세화는 병원장으로 부임한 뒤 대의를 지키기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녀는 구승효와 대화에서 3D 바이오 시뮬레이터 기계를 구입하는 조건으로 화정 기업 계열사 보험상품을 적극 홍보하기로 동의한다. 이후 엘리베이터며 로비, 입원실을 막론하고 병원의 벽면에는 화정 기업이 내놓은 제약 회사의 상품, 보험 상품 광고 포스터가 도배하다시피 자리를 잡는다. 이와 같이 <라이프>는 병원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탄탄한 서사로 시청자들을 매료시킨다.

<라이프>는 지난 20일을 기점으로 2막에 접어들었다. 병원장으로 추대된 오세화가 오랜 시간 숨겨온 발톱을 드러내듯 김태상을 향해 일침하고 구승효에 대적하는 모습은 <라이프>의 후반부 몰입도를 더했다. 오세화가 병원장으로 취임하며 드라마는 한층 복잡한 구성을 띨 조짐이다. 문소리의 열연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느슨해졌던 허리를 다시금 곧추 세우고 브라운관에 집중하게 할 만큼 흡인력 있었다.

인물 특성상 오세화는 드라마의 두 축을 담당하고 있는 주경문-이동욱이 의사로서 자부심을 갖고있는 모습과 닮아있고, 구승효가 기업가로서 실리를 추구하는 모습과도 닮아있다. 문소리는 오세화의 양 면을 조금의 치우침도 없이 완벽하게 체화해 연기하는 느낌이다. 특히 그 언변, 김태상 부원장에게 따끔하게 일침을 놓는 장면에서 쾌재를 부르짖지 않은 시청자가 얼마나 될까.

그러나 천호진의 죽음은 어디로 갔나요?

 드라마 <라이프>의 한 장면.

드라마 <라이프>의 한 장면. ⓒ JTBC


그러나 우리가 잊고 있던 사실이 있었으니, 바로 병원장 이보훈(천호진 분)의 죽음이다. <라이프>는 병원장의 사망 소식으로부터 서막을 알렸다. 이는 이수연 작가의 전작 tvN 드라마 <비밀의 숲>이 미스테리한 사건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던 방식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비밀의 숲>이 의문의 죽음을 향해 뚝심 있게 달려 나갔던 것과는 달리, <라이프>는 쉽사리 병원장 죽음을 향하지 않는다. 드라마의 중반이 다 지나가도록 말이다. 앞서 병원장의 죽음은 여러가지 의혹에 둘러 싸인 듯한 뉘앙스를 풍기지 않았던가. 하필이면 병원장 시신이 발견된 곳이 부원장 집이라던가, 병원장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소식을 접한 예진우(이동욱 분)가 배신감에 병원장을 찾아갔다던가.

원래 이보훈 원장은 적자를 감당하고 사회적 역할을 다하는 이상적인 의사에 가까워 보였다. 극중에서 예진우가 이보훈 원장을 그리워 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그러나 비자금과 죽음에 대한 의혹을 전혀 해소하지 않은 상황에서, 예진우가 소박하고 친근한 병원장을 회상하는 장면은 보는 이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외부인의 등장으로 인해 내부 시스템이 해체되는 서사는 충분히 흥미롭고, 의료계 사고를 다양하게 짚고자 하는 사회적 메시지는 의미있다. 그러나 초반에 힌트만 준 채 멈춰둔 이보훈 원장의 죽음에 관한 전개는 이 드라마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게 만든다.

종영까지 남은 시간은 단 6회 뿐.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드라마 기저의 미스테리를 해결할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물론 다음 서사는 이보훈 병원장의 죽음을 향할 테고, 이수연 작가는 이것을 매끄럽게 해낼 테다. 그러니 이와 같은 걱정은 기우였다는 걸 이 수연 작가가 어서 증명해주길 바란다.


드라마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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