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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배일 감독의 영화<소성리>가 지난 16일 개봉했다. 극장 개봉을 알리기 위해서 제작한 웹포스터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페친들은 영화 <소성리>가 개봉 소식을 공유해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소성리를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일게다. 어느 페친이 올린 포스팅을 보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천 만 명만 봐주면 좋겠다. 천 만 명 관객 본다면 사드는 빼고 남지 않겠냐?"

이런 마음으로 임해야 하는 거다. 사드를 빼고 싶은 간절한 마음과 소성리를 고립되지 않게 우리는 영화를 열심히 홍보하고 더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소성리가 회자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야 하는 거다.

 <소성리>
 <소성리>
ⓒ 오지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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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전단지가 소성리로 도착했다. 어떻게 나눌까 고민했다. 발로 뛰어야 하는 일이다. 어디로 갈까? 누구에게 알리고 싶었나? 성주 사람들이 알까? 영화 <소성리> 개봉했다는 것을? 아마 영화로 나온 것 조차도 모를 거 같았다.

성주 장날에 시장으로 갔다. 오랜만이다. 5일장이지만, 매번 장이 서는 날이면 자리를 차지한 장사꾼들이 여전히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장을 펼쳤다. 재래시장을 현대식으로 바꾸면서 실내 가게들도 많아졌다.

여전히 문을 열지 않는 가게도 눈에 띄지만, 이제 로컬푸드를 시작하고, 목장에서 직접 짠 우유로 수제요구르트를 만들어 판매하는 점포가 문을 열었다. 자주 만나지 않았지만 익숙한 얼굴들을 어색하게 지나쳐 다녔다. 지나치는 이들에게 영화 <소성리> 전단지를 건네보았다.

"소성리 아시죠?"
"어? 소성리,,, 사드 들어간 소성리?"
"네... 성주사드 배치된 소성리요... 소성리가 영화로 만들어졌어요. 전국의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어요. 곧 성주군청 대강당에서 상영하고 문화예술회관으로도 상영한다고 합니다. 영화 보러 가셔요."
"그래, 영화가 됐다고? 데모하라꼬?"
"네. 사드반대 투쟁하는 거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어르신, 어르신 집 앞에 만약에 이런 위험한 물건 들어오면 어르신도 가만히 있지는 못 할깁니다."
"그래 그건 맞다."


그래 그건 맞다고 수긍해주는 어른이 있는가 하면, "소성리? 사드들어간 데 그기?" 하면서 내 눈을 외면해 버리는 어른들도 있다. "영화 꽁짜로 보여주는 겨? 소주 사먹을 돈도 없는데, 영화 볼 돈이 어딨노? 꽁짜면 보러가지만" 하면서 비아냥 거리는 술 취한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들은 소성리를 모르지 않았다. 성주 사드가 들어간 마을 이름이 소성리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냐고 묻는 이들이 있었다.

"아직도 싸우고 있습니다. 사드가 들어오면 미군부대가 생기는 거니까 사드 뺄라고 싸운다 아입니까? 우리는 소성리 마을 사람들에게 미안해 해야 합니다. 다 함께 사드반대 해 놓고는 소성리 갔다고 모른 척 하고 살면 안 되자나예?"

그들은 소성리를 기억하고 있었지만, 무관심했다. 잊어버리고 있었던 기억을 영화전단지가 깨워주었다. 수고한다고, 고생한다고, 말해주는 이들이 있었지만, 그런 말들이 고맙지 않았다. 내가 바란 건 당신들이 사드 반대를 외쳤던 지난 날을 잊지 않는 거다.

당신의 머릿속에서 사드가 배치된 마을 소성리를 지우지 말아달라는 거다. 그리고 당신은 소성리에 미안해 해야한다. 지금은 당장 당신 집 앞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서 관심을 가지지 않겠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사드를 왜 그토록 반대했는지 깨달을 날도 오게 될테니까.

다음 날은 벽진면으로 돌아보았다. 2년 전 사드가 성주를 찾아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매주 촛불소식지를 발행했다. 배달꾼들을 모아서 지역별로 신문배달을 했다. 내가 주로 갔던 곳이 벽진면의 달창마을까지 올라갔다.

벽진면에 소재하고 있는 농협과 우체국, 복지회관, 하나로마트에 전단지를 돌렸다. 직원들은 소성리가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나보다. 전단지를 사무실내에 비치해 달라는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나도 그 부탁을 하기까지 굉장한 용기가 필요했다. 누군가가 나를 알아볼까 봐 조심스러웠다. 알아봐도 모른 척 해줄 거라 생각하지만, 그들과 아는 척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오랜만에 찾은 장군순대 식당에서 전단지를 받아주었다. 그 길을 따라 외기, 봉학, 선학, 달창마을까지 가는 곳마다 회관에는 할매들이 화투를 치고 놀고 있었다. 나를 보고 아는 척하는 분이 있었다. 어렴풋이 내 얼굴이 기억날 듯 말 듯 한 모양이다. 할매들께 "소성리 아시죠?" 하니 하나같이 "초전의 소성리?" 한다.

"네.. 소성리가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하면 할매들은 깜짝 놀란다. 소성리에 사드 들어간 것도 다 알고 있었다. 할매들은 2년 전 사드를 반대하기 위해서 성주 촛불에 나갔던 기억을 잊지 않았다. 사드가 소성리로 갔다는 것도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는 어떻게 되었는지 소식을 들을 길 없었다.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을 영화<소성리> 전단지를 보면서 끄집어냈다.

"소성리 주민들이 사드 뽑아 낼라고 아직까지 싸우고 있습니다. 소성리 아직도 촛불집회하고 있습니다. 매주 토요일날 밤에 하는데 엄니들 한번 놀러오이소... 소성리 주민들 힘든데 한번 와주셔야 안 되겠습니까?"

할매들은 "우리야 가고 싶어도 차가 있어야 가제? 이장이 가자고 하면 좋은데" 그래 할매들은 누군가가 앞장세워야 올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장이나 마을에서 그녀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앞장세워서 모시고 오지 않는다면 이동의 자유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영화 전단지에 나온 소성리할매들의 사진을 보고는 누군가는 할매들을 앞장세워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목소리를 들었다.

사드를 반대했던 수많은 성주의 할매들이 있었다. 성주사드를 소성리로 밀어넣은 비열한 인간들도 할매들은 이용했다. 성주에 사드가 배치되는 것을 막으러 가자고 할매들을 실어나르던 인간들은 성주 사드가 물러가지 않은 채 성주땅 소성리에 처박혔는데도 사드는 끝났다면서 거짓 선전하였다.

솔직히 딱 깨놓고 이야기 하자. 누구나 서로를 이용하자나. 이용하고 사는 거 인정하자. 대신 잘 이용해야지. 단물만 빼먹고 버리지는 말아야지. 당신들, 사드반대 하자고 촛불 들었던 당신, 그 입이 부끄럽지 않도록 소성리 할매들 욕되게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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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모하기 딱 좋은 나이"인 팔순할매들과 삼평리송전탑공사 반대 투쟁을 함께 했다. 나이마흔을 비관 할 즈음에 할매들의 투쟁에 영감을 받아 앞으로 40년은 끄덕없이 데모하러 다닐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다. 앞으로 남은 생애를 데모도 하고, 기록도 남기고자 한다. 글쓰는 즐거움을 누리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