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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보통 웹툰에세이 '살아, 눈부시게!'
 김보통 웹툰에세이 '살아, 눈부시게!'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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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의심했다. 후배가 꼭 보라고 해서 집어 든 책이다. 그런 말이 없었다면,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김보통 작가가 또 에세이를 냈네 하고 말았을 거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아무 생각 없이 펼쳐 든 책 <살아, 눈부시게!>를 읽기 시작했다. 근데 뭐야, 이거... 완전 내 이야기잖아.
"주변 눈치를 너무 많이 봐요. 어떻게 해야 눈치를 보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의지가 너무 약해요. 어떻게 하죠? 특히 먹는 걸 못 참겠어요. ㅜ.ㅜ"
  
 '살아, 눈부시게!' 내용 중 일부
 '살아, 눈부시게!' 내용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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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고민을 보는 순간, 너무 놀라 책을 놓칠 뻔했다. 진짜 '소오름'. 최근 급격히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체중으로 당장 식사 조절을 해야 할 것 같은 위기감이 들었다. 나는 장거리 출퇴근자, 1시간 여를 넘게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면 허겁지겁 5분 밥을 먹는다. 좀 많이 먹는다.

그래서 배고픔에 미리 대비하는 전략을 세웠다. 회사에서 나가면서 방울토마토를 먹거나, 가볍게 빵을 먹거나 하며 저녁을 거르겠다는 의지를 불태운 것. 하지만 웬 걸. 집에 도착함과 동시에 냉장고 문을 열고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기 바쁘다.

밥을 다 먹을 무렵, '간식을 괜히 먹었다'라고 반성하는 것도 잠시, 과일을 조금만 먹는다는 것이 그만 배부를 정도로 먹게 된다. '의지박약'이라고 자아비판하면 뭐하나. 같이 운동 가자는 남편의 제안도 기운이 없다며 거부한다. 잠을 자려고 고단한 몸뚱이를 침대에 뉘이며 생각한다.

'오늘도 실패했네... 의지가 너무 약해. 특히 먹는 걸 못 참겠어. 대체 넌 왜 그러는 거니?'

이런 일이 요즘 며칠 반복되었으니 저 고민 상담 내용을 보고 놀랄 수밖에. 그뿐인가.
"가끔은 사람들 속에 있어도 외로운데 왜일까요?"
"외로움을 이겨내는 방법이 있을까요?"
"하루하루 버티기가 너무 지치면 어떡하죠?"
  

언젠가 한 번쯤 고민했을 법한 내용도 있었다. 순식간에 페이지는 절반 이상으로 넘어갔다. 레진코믹스에 연재했던 만화 '내 멋대로의 고민상담'을 묶어서 낸 책이라는데, 그 연재에 대해 전혀 몰랐던 나는 등장인물 고독이, 미묘, 노골이를 보는 재미도 톡톡했다(특히 열두 살 딸아이도 인정하는 이들의 표정 연기가 일품이다).
 등장인물. 때론 촌철살인, 때론 귀요미, 때론 감동이
 등장인물. 때론 촌철살인, 때론 귀요미, 때론 감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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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단순하다. '네 인생 네 멋대로(자존감), 대충 살아(관계), 뭐가 되든 되지 않든(진로), 응원할 테니까(위로), 뜻대로 되지는 않겠지만(연애)'이라고 쓰여 있는 목차 그대로다. 어쩌면 내 이야기 같은 내용을 발견할 때마다 반가운 마음이 든다. 나만 그렇지 않구나,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구나 괜히 위로가 되고, 어이없는 웃음이 나고, 때론 감동적인 눈물도 난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아이를 하늘나라로 보낸 이가, "제가 살아있어도 될까요?" 하는 고민 상담 내용을 볼 때 그랬다.
"무슨 소리야, 내가 다시 가려고 준비 중인데... 조금만 기다려. 반드시 찾아낼 테니까! 엄마를."  

왈칵 눈물을 쏟을 뻔했다. 독자인 나도 이런데, 직접 고민을 보낸 그분의 마음 어땠을까. 이 아이와 엄마가 꼭 만나길, 아니 꼭 이 아이가 엄마를 찾아내길 바라는 게 나뿐만은 아니었을 거다. 그런데 '남의 고민에 별반 관심이 없다'는 김보통 작가는 어쩌다 이런 만화를 그리게 된 걸까. 에필로그에도 잠깐 나오지만, 지난 22일 합정 빨간책방 카페에서 열린 저자와의 만남에서 김보통 작가는 말했다.

"연재했던 만화 '내 멋대로 고민 상담'이 우여곡절 끝에 3년 만에 <살아, 눈부시게!>라는 이름으로 나오게 됐다. 저는 원래 다른 사람 고민에 대해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다. 이번에 어떤 독자분이 '책은 재밌게 잘 봤는데, (에필로그에) 타인의 고민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는 말을 보고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라고 쓴 서평을 봤다.

그런 제가 이 만화를 연재하게 된 건 에필로그에도 썼지만, 어시스트 월급 때문이었다. 그때 당시 4명이 일주일 내내 매달리던 작품이 있었는데, 30분~1시간 쉽게 그린 이 만화의 조회수가 20배 더 높았다. 성인/비성인만화 포함해서 5위까지 순위가 올라갔다. 대박이 났지만, 3개월 만에 연재를 끝냈다. 4명이서 열심히 그리는 만화보다 잘 나가니까 자존심이 상해서(하하)."

지금이야 웃으면서 말할 수 있지만, 사실 이 만화는 몸보다 마음이 힘든 일이었다고 저자는 말했다. 힘든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보낸 고민이 너무 많아서다. 그래서 상담에 필요한 몇 가지 원칙도 정했다.

"다수의 대중을 고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일단 고민을 보낸 이 사람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는 게 좋겠다'라고 생각했어요. 누군지도 모르는, 얼굴도 모르는 나에게 이런 고민을 보내는 사람들은 대부분 '답정너' 예요. 답은 정해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라는 거죠. 그렇지만, 이분들이 얼마나 동의가 고팠으면 그게 나일까, 실제로 아무런 효력도, 영향력도 없는 나 같은 사람한테... 하고 생각하니까 진짜로 주변에 고민에 대해 말해줄 사람이 없으면 내가 해줘야지 그런 마음으로 연재를 했어요."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정신과 전문의도 상담을 말렸다. 의사도 아닌 사람이 불안하고, 죽고 싶고,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혹은 필요한 조언을 계속해서 해준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실제로 그도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 그것이 '말뿐인 위로'라 해도 말이다. 웹툰 아래 덧붙인 짧은 에세이에서도 심리적으로 견디기 어려웠던 저자의 속마음이 드러난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지만, 고민 중에는 자살을 암시한 글이 많다. '죽고 싶어요'가 아니라 '이제 곧 죽을 겁니다. 안녕히 계세요'라는 글들. 숨이 막히고 머리가 아픈데. 거짓말이길 비는 수밖에 없다. 힘들다. 내가 막을 방법이라도 있다면 어떻게라도 막아볼 텐데. 그저 순간순간 숨이 막힌다. 고민을 보기가 두렵다. 다 거짓말쟁이들이었으면 좋겠다.

책에는 다 담지 않았지만, 자살을 예고하는 상담이 너무 많아서 마음이 아팠다고. 더는 견딜 수가 없어서 '아직 답변하지 못한 고민 팔천육백여 개가 남은 상태'에서 연재를 중단했고, 그것을 모아 3년 만에 이번 책을 낸 거였다. 하지만 이것이 완결의 의미는 아니란다. 오히려 연재가 중단된 지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말뿐인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으니, 다시 해보자는 도움닫기에 가깝다'고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밝혔다. 그러니 우리는 잊은 듯 기다릴 밖에. 그의 당부대로 '눈부시게 살아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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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출판 담당 기자로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을 연재하며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 ohmybook2016@gmail.com

라이프+ 여행·문화 담당 기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선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