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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주한 네덜란드 대사관저에서 인터뷰를 하는 일이 생겼다. 주인공은 네덜란드에 있는 스튜디오 로세하르데의 대표, 단 로세하르데(Daan Roosegaarde). 주한 네덜란드 대사인 로디 엠브레흐츠(Lody Embrechts)가 대한상의 제주포럼 연사로 초대되어 서울을 방문한 로세하르데의 방한을 축하하며 마련한 자리에서 였다.

로스하르데는 '스모그 프리 프로젝트(Smog Free Project)'로 전 세계 미디어와 국가, 도시로부터 커다란 관심을 받고 있다. 세계 곳곳에 초대형 친환경 공기 정화 장치인 '스모그 프리 타워(Smog Free Tower)'를 설치해 미세 먼지를 정화하고, 그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인 탄소를 다이아몬드 생성 기술로 압축해 육면체 모양의 '스모그 프리 링(Smog Free Ring)'으로 변모시켜 그 판매 기금으로 다시 스모그 프리 타워를 설치한다.

로세하르데는 아르테즈 예술대학교에서 순수 미술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베를라헤 건축대학원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2007년 스튜디오 로세하르데를 설립해 다양한 인터랙티브 기반의 공공 예술을 선보이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특히 2015년부터 꾸준히 진행 중인 스모그 프리 프로젝트는 '2016년 올해의 네덜란드 예술가 상', '2017 D&AD 어워드'를 포함해 무수한 상을 받았다.

런던 디자인 박물관, 암스테르담 국립 박물관, 런던 테이트 모던, 파리 장식미술관, 런던 V&A 박물관 등 유수 기관의 기획전에 참여했으며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의 '영 글로벌 리더'로 선정된 그는 현재 싱가포르 정부 산하의 디자인 진흥 기관인 '디자인싱가포르Design Singapore'의 자문 위원이며 상하이 통지대학교의 초빙 교수다.

'예술가의 상상력, 엔지니어의 논리력, 건축가의 구축력, 디자이너의 기획력, 그리고 혁신가의 추진력을 갖춘 다학제적 인재'인 그는 지금 이 시간에도 미세 먼지와의 전투를 위해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유머러스하면서도 단호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히던 모습을 상기하며, 그와 함께 나눴던 대화를 공유해본다.
 
스모그 프리 프로젝트의 주인공, 단 로세하르데.
 스모그 프리 프로젝트의 주인공, 단 로세하르데.
ⓒ STUDIO ROOSEGAAR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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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 이름 앞에는 예술가, 혁신가, 건축가 등 여러 수식어가 다양하게 붙어요. 스스로 어느 쪽에 가깝다고 느끼나요?
"저는 특정한 것에 목적을 두고 찾아내는 사람이기보다는, 주변을 둘러보고 탐색하는 사람에 가까워요. 실제 프로필을 살펴보면 예술, 건축과 관련된 일이 물론 많지만, 수학을 가르친 적도 있답니다. '단 로세하르데'라는 이름 앞에 어떤 수식어가 오는지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미래에 대한 호기심이 모여 우리가 더 나은 삶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미래에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실질적으로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죠.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에 자본과 기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부족한 건 오히려 상상력이죠. 상상력은 예술과 기술, 과학과 건축 사이 어딘가에 존재합니다. 이렇게 새로운 연결점을 찾아내는 능력이 중요해요."

- 그런데 연사 프로필을 확인해보니 건축가라는 타이틀로 정확히 적혀 있던데요. (웃음)
"오! 좋은 사실을 또 이렇게 알고 갑니다. 뭐 사실이죠. 대부분의 시간을 건축가로 보냈으니까. 특히 공공 공간에 관한 프로젝트에 주목했는데, 보통 대중에게 유익하다고 여겨지는 일이었죠. 네덜란드에는 굉장히 유명한 단어가 있어요. 바로 '스혼헤이트schoonheid'입니다. 스혼헤이트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는데, 첫 번째로는 외적인 아름다움을, 두 번째로는 깨끗함, 청결함을 뜻합니다. 아름다운 여인을 표현할 때 쓰이는 단어이면서 깨끗한 공기와 물 같은 환경적 의미까지 두루 갖추었어요. 네덜란드에서는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이 스혼헤이트 개념을 가장 중심에 둡니다. 스혼헤이트한 기술과 건축, 디자인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미래의 삶이 더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어요. 아주 중요합니다."

- 스튜디오 로세하르데의 근래 대표작이라면 2015년 시작한 '스모그 프리 프로젝트'일텐데요. 개인적으로 예전 디자인, 건축, 예술 프로젝트보다 엔지니어링 프로젝트의 정체성이 더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든 건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더러운 공기를 정화하는 행위는 분명 기술에 기반을 두고 있죠. 하지만 맑은 공기를 불러오겠다는 아이디어는 지극히 디자인적인 사고입니다. 기술과 디자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요. 네덜란드인에게는 특히나 그렇죠. 중국 상하이 정도의 인구를 가진 작은 나라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다른 이보다 창의적으로 행동해야만 했습니다. 네덜란드 국토의 대부분이 해수면보다 높이가 낮습니다.

우리는 굉장히 오래전부터 풍차와 댐 같은 인공물을 만들어 왔어요. 창의적으로 우리의 삶터를 디자인해온 셈이죠. 디자인과 창의성, 기술이 한데 어우러지는 것은 네덜란드 특유의 DNA로, 제가 나고 자라온 그 전경에 녹아 있었습니다. 스모그 프리 프로젝트 역시 디자인, 창의성, 기술을 한데 모아 문제점을 개선하는 네덜란드의 '풍광 개발 전통'의 일부라고 볼 수 있어요. 예술과 기술은 분리하기보다 통합하는 것입니다. 그나저나 이런 질문을 한 의도가 궁금해지네요. 저도 질문해도 되나요?​​​​​​​"

- 솔직히 스모그 프리 타워의 조형미가 아쉬웠어요. 일상의 공기 청정기를 거대하게 확대한 느낌이랄까. 기술적인 기능성을 극대화했지만, 공공 공간을 점유한 건축 설치물에 기대하는 미적인 측면이 약해 보였어요. ​​​​​​​
"스모그 프리 타워의 외관은 일본과 중국의 사원에 있는 탑의 형상에서 따온 거예요. 현재 네덜란드를 비롯해 중국의 여러 도시, 폴란드, 멕시코, 콜롬비아, 인도 등으로 확장 중인 이 시설을 접한 현지인은 '공기 정화 사당'으로 부르곤 하더라고요. 스모그 프리 타워를 통해 제가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아름다움'과 '맑고 깨끗함'을 동시에 갖춘 스혼헤이트적 공기였습니다. 핵심이 공기라면, 타워는 매개체죠. 스모그 프리 프로젝트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결과물을 꼽아 본다면 그것은 타워가 아니라 맑은 공기, 그 자체일 것입니다.​​​​​​​"

- 설명을 듣다 보니 단순한 외형을 추구한 까닭이 이해되네요. 사원의 탑이라는 조형적 모티브도 흥미롭고요.
"사실 스모그 프리 타워가 추구하던 초기 디자인 콘셉트는 지하에 시설물을 만들어 지상을 돌아다니는 시민이 그 존재를 모르게 하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프로젝트를 실질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시민이 놀러 오고 찾아오는 쉼터가 되기 위해서 눈에 보이는 형태를 취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죠. 또, 저희는 보편적인 필터식이 아니라 이온을 이용한 공기 정화 시스템을 채택했어요. 보통 병원 내부의 병실에서 쓰이는데 지금까지 실외기에 이온 방식의 정화 시스템을 쓴 건 스모그 프리 타워가 처음이에요. 이유가 궁금하시죠? 간단해요.

엄청 어려운 기술이거든요. 스모그 프리 타워 하나로 축구장 넓이의 면적을 하루 동안 정화하는 게 가능해요. 그것도 아주 적은 전력을 소비하면서 말이죠. 사실 기술적으로는 지금보다 훨씬 크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아담한 크기로 결정한 까닭은 작업이 추구하는 의의 때문이에요. 스모그 프리 프로젝트는 우리의 잘못된 현실을 실질적으로 '바로잡는' 행위죠. 더러운 공기를 깨끗하게 만드니까요. 동시에 인류가 그린 에너지를 활용해 어떻게 청정한 환경을 창조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에 대한 해답을 제시합니다. 그래서 의의가 남다르죠."
 
스모그 프리 타워의 원리를 설명하는 로세하르데.
 스모그 프리 타워의 원리를 설명하는 로세하르데.
ⓒ STUDIO ROOSEGAAR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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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처음 설치한 스모그 프리 타워.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처음 설치한 스모그 프리 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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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텐진에 설치한 스모그 프리 타워. 마치 사원의 탑을 연상시킨다.
 중국 텐진에 설치한 스모그 프리 타워. 마치 사원의 탑을 연상시킨다.
ⓒ STUDIO ROOSEGAAR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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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모그 프리 프로젝트는 도시와 연관 지어 장기적으로 진행된다고 들었어요.
"맞습니다. 그래서 스모그 프리 타워뿐 아니라 '스모그 프리 바이시클Smog Free Bicycle'이라 이름 붙인 자전거도 있습니다. 중국의 오포OfO와 함께 만든 자전거에요. 도시 환경 개선은 단계씩 밟아가야 하는 장기 캠페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인프라에 투자하는 정부가 필요합니다. 그린 에너지, 전기 자동차, 자전거 이용률의 상승 등을 기대하며 자금을 투자하고 운영하는 거죠. 흔히 말하는 '탑-다운 방식'입니다. 하지만 '바텀-업 방식'과 공존하지 않는다면 프로젝트는 불완전합니다.

스모그 프리 프로젝트의 기획과 그 결과물로 나오는 타워나 반지 등이 정부가 추구하는 거대한 의제를 지지하는 디자인적 방식으로 제시되고 젊은 세대에게 영감을 주는 것이죠. 정책을 펼치는 정부와 아이디어를 내는 디자이너 사이에서 우리는 두 집단을 엮으며 영향력을 균질하게 유지하고, 프로젝트가 매끄럽게 퍼질 수 있도록 북돋는 역할을 맡습니다. 이제 내년까지 타워 이외의 새로운 프로토타입이 순차적으로 공개될 예정입니다. 타워의 개수도 더 많아질 테고, 그 형태 또한 다양해질 전망입니다."​​​​​​​  

- 스모그 프리 프로젝트에 대한 정부나 시민의 반응은 어떤가요?​​​​​​​
"스모그 프리 타워는 거대한 공기 정화 시설을 짓는 기술적인 영역에 속하면서, 동시에 많은 시민을 보살피는 무언가를 강구하는 프로젝트입니다. 그래서 깨끗한 공기뿐 아니라 그 부산물인 먼지를 다이아몬드 생성 기술을 통해 장신구로 만들었을 때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어요. 스모그 프리 타워가 지역의 명소가 되면서 프러포즈 장소로 인기를 끌게 되었는데요. 프러포즈하려면 반지가 필요한 건 잘 아시죠? 요즘 웨딩 반지로 스모그 프리 링이 인기랍니다. 저희는 남성을 위한 커프링크스(cuff links)를 만들기도 했고, 얼마 전에는 다양한 장신구로 장식한 한 벌의 드레스를 주문받기도 했어요. 반지 등의 장신구는 스모그 프리 프로젝트에서 소셜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는 중요한 촉매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공기 정화 과정에서 수집한 탄소 먼지에 고압의 다이아몬드 생성 기술을 적용해 만든 스모그 프리 링.
 공기 정화 과정에서 수집한 탄소 먼지에 고압의 다이아몬드 생성 기술을 적용해 만든 스모그 프리 링.
ⓒ STUDIO ROOSEGAAR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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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질문입니다. 스모그 프리 프로젝트의 핵심은 제품화 같아요. 건축이나 예술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스모그 프리 타워를 마치 제품처럼 생산하고, 부수적으로 장신구를 만들어서 상업적인 영역으로 끌어들인 거죠. 보통 환경을 생각하는 착한 프로젝트가 간과하는 부분이기도 한데요. 프로젝트의 지속 가능케 하는 상업적인 생태계를 구축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순환(circular)을 말씀하시는군요. 프로젝트가 안정적인 궤도에 들어서려면 순환적인 사고가 필수입니다. 이 원형의 순환 고리를 인지하고 디자인을 기획해야 하죠. 하나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길은 동시에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길의 양분이 되는 것처럼 결국 서로가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된 시스템 아래에서 각자 역동적으로 길을 찾게 됩니다.

하지만 많은 경제 정책이나 사회적 디자인 영역에서는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가면서 매우 손쉽게 획득하는 1차적 성공 여부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는 것 같아요. 저는 공공 디자인 프로젝트에서 앞서 말한 선순환 시스템을 마련한다는 것은 하나의 경제를 만드는 일과 별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우주가 탄생하는 거죠.​​​​​​​"

덧붙이는 글 | 필자의 <허프 포스트 코리아> 블로그에 올린 글을 재편집했다. www.huffingtonpost.kr/harry-jun


태그:#단 로세하르데, #DAAN ROOSEGAARDE, #스모그 프리 타워, #전종현, # SCHOONHE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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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건축, 예술, 문화에 대한 글을 쓴다. harry.jun.writer@gmail.com www.huffingtonpost.kr/harry-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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