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서연고서성한중경외시건동홍...'흡사 주문같이 들리는 이 문장은 대학 입시를 겪은 이들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문장일 것이다. 전국 4년제 대학을 입학 성적에 따라 차례로 줄 세운 뒤 대학 이름에서 한 글자씩 갖다 만든 이 어구는 각종 입시 사이트와 대입 지표에서 소위 불리는 '대학 서열표'의 역할을 맡고 있다. 정확한 출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나, 대략 2000년대 중반쯤 디씨인사이드 수능 갤러리와 네이버 카페 수만휘(수능날 만점 시험지를 휘날리자)에서 생성된 것으로 통상 알려져 있다.

10년이면 금수강산도 변한다지만, 저 대학 서열은 이와는 관계없이 현재까지도 사회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진다.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서열표를 달달 외우며 자신의 입시를 고민하고, 입시 사이트는 해당 대학 서열 상위에 해당하는 합격자 명단을 사이트 메인에 걸며 대대적인 홍보에 활용한다. 대학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취업 면에서도 이는 해당하는데, 최근 몇몇 기업은 입사 시 대학별 차등점수를 매긴 표가 공개돼 곤욕을 겪기도 했다.

오랜 시간 고착된 이 지표는 우리 자신을 스스로 학벌이라는 고정된 사고에 가둔 채, 스스로 이뤄낸 대학 입시를 만족하게 만들기보단 더 높은 대학을 못 간 자신을 비교하고 낮추는 요소로 작용한다. '지잡대'란 단어를 들어본 적 있는가? 이는 지방에 있는 잡다한 대학의 준말로, 네트워크상에서 빈번히 쓰이는 비하 용어이다. 요즘은 이에 그치지 않고 '설잡대'라는 단어 또한 자주 사용되는데, 이는 서울에 있는 잡다한 대학의 준말이다. 소위 '인서울'이라 불리는 전국 단위 상위 대학 내에서도 급을 나누며 비난을 서슴지 않는 실정이다.

하지만 해당 대학 서열은 분명한 오류가 있다.

첫째로는 문과 중심으로 구성된 표라는 것이다. 대학별로 강세가 있는 학과가 있고, 이에 문과 강세 학교와 이과 강세 학교는 나눠진다. 한국외국어대학교의 경우 문과, 특히 어문계열에 상당히 강점이 있는 학교로 분류돼 상위권의 학생이 즐비하지만, 이과는 문과만큼의 역량을 보여주지 못한다. 이처럼 이과를 기준으로 나누면 순위가 역전되는 학교가 상당수 존재하기에 저 대학 서열표를 사회의 공통된 기준으로 삼는 것은 큰 문제가 있다.

둘째로 해당 서열은 정시 입시 결과만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2019학년도 기준으로 전국 4년제 대학 입시에서 수시모집 비율은 76.2%로 정시 비율은 과반에 훨씬 못 미친 23.8%에 불과하다. 소수의 정시 모집 인원을 토대로 그 대학 전체의 입시 수준을 판별하는 것은 그리 합리적이지 않다.

현재 이러한 학벌 사회는 무너지고 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다. 정부가 이를 위해 제시한 대책으로는 크게 블라인드 채용과 지역인재 할당제가 있다.

블라인드 채용이란 입사지원서에 신체 조건이나 학력 등을 기재하지 않는 등 선입견이나 차별적 요소를 배제하여, 직무 수행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 등을 평가하는 데 초점을 맞춘 채용 방식이다. 지역인재 할당제는 공공기관의 신규 채용인원의 35% 이상을 지방대학 학생 혹은 졸업생으로 채용하는 제도이다. 지방대생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이다. 학벌주의에 따른 사회적 차별을 돌파할 수 있다는 희망을 걸고 있다.

충청도 H 지방대에 다니는 박모씨는 "우리나라에서 학연, 지연이 심하기에 좋은 취업을 위한 같은 출발선에 놓이는 기회 자체가 너무 반갑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구직자들의 입장은 다르다. 취업 준비생 850명 중 38% 이상이 지역인재 할당제가 구직자에게 역차별을 갖고 올 것이라고 말했다. (2015년 기준 취업 포털 커리어 구직자 850명 대상 조사) 학벌 사회를 타계하기 위한 방침으로 제시했던 정부 정책이 오히려 인서울권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새로운 차별을 만든 것이다.

공평과 형평의 차이를 아는가? 공평은 누구에게나 같은 기회를 주는 것이고, 형평은 수준 차이에 따라 극복할 여지를 주는 것이다. 지나친 형평은 다른 이들에게 역차별의 여지를 남길 수 있다. 학벌 사회는 무너지고 있다. 무너짐을 비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능력이 중심이 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다양한 능력을 토대로 가치를 평가받는 것은 옳기에 '학벌'이라는 단 한 가지 요소만으로 계급이 정해지는 사회는 당연지사 무너져야 할 순리일 것이다.

그러나 높은 학벌은 잘못이 아니다. 그 또한 자신의 능력이며 강점일 것이다. 이에 지역인재 할당제와 같이 오직 지방대 학생만을 위한 자리를 따로 마련한다는 것은 '학벌'이라는 엄연한 능력에 역차별을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블라인드 채용 또한 마찬가지이다. 출발선이 같다는 것은 정확히 무엇이고, 그 기준이 되는 시점은 어디인가? 대학교 졸업 후를 기준으로 출발선을 놓는다는 것은 누군가가 그 이전에 십몇 년 동안 해온 각자의 노력은 무산된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 아니던가.

현재 우리는 학벌 사회의 불공정한 면에 지나치게 치중해 그 본질을 잃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공평'한 출발선에서 '형평'을 추구하는 것은 맞지만 '공평'하지 못한 출발선에서 '형평'을 부여하는 건 지나친 형평, 즉 역차별과 같다. 무너지고 있는 학벌 사회, 우리가 진정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디일지 깊이 고민해야 할 시점임이 분명하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당신을 듣다, 진실을 말하다. 기자 이상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