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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과연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자리에 섰을 때, 당당하게 예스라고 외칠 수 있을까.
 나는 과연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자리에 섰을 때, 당당하게 예스라고 외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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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지인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교회에서 진행된 식이었는데, 사제가 신랑 신부에게 서로 평생 사랑할 것을 약속하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예스였고, 사제는 둘이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했다. 하객들은 모두 기쁜 마음으로 박수를 보냈다.

나는 과연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자리에 섰을 때, 당당하게 "예스"라고 외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자신이 없다. 당장 내일도 예측하지 못하는 것이 세상 일인데 하물며 60년 뒤의 일을 어찌 알 수 있을까?

더군다나 사랑이란 사람의 마음이다. 마음이 다스리는 일은 사람이 약속할 수 없다. 앞으로 평생 화를 내지 않겠습니다, 라고 맹세할 수 있는가? 이는 인간이 할 수 없는, 오직 신만이 할 수 있는 약속일 것이다.

내가 지금 당장 한 여자를 가슴 깊이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그 감정이 계속 지속되리라는 서약은 할 수 없다. 성서에 나오는 베드로가 스승인 예수를 목숨 걸고 지키겠다고 약속해 놓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이를 져버린 일화는 유명하다. 사람 마음의 간사함이 이럴진대, 어찌 나 자신을 속이는 약속을 할 수 있겠는가?

주위의 친한 친구들이 하나둘 결혼을 하기 시작한다. SNS에는 하루가 멀다고 청혼 반지를 받고 기뻐하는 지인들의 사진이 올라온다. 영국의 다이아몬드 회사 드비어의 마케팅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것도 안타깝지만, 더 안타까운 것은 결혼이라는 종신 계약에 대해 제대로 공부도 하지 않은 채 사인을 해 버리는 것이다. 한낱 직장을 고를 때도 그 회사에 대한 기본적인 조사를 하고 고용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데, 왜 결혼이라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계약을 맺으면서 그에 대한 공부는 하지 않을까?

왜 결혼을 해야 하는가

주위 사람들이 나에게 왜 결혼을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왜 결혼을 하지 않느냐를 묻지 말고, 왜 결혼을 해야 하느냐를 물어봐 주면 좋겠다. 결혼은 선택이지 필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20대는 흔히 결혼을 하기 위해 준비 기간, 혹은 아직 나타나지 않은 짝을 찾는 기간으로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인생 최고의 황금기인 20대를 기다림과 초조함으로 소비한다는 것이 내겐 너무 허무하게 느껴졌다. 미혼의 삶을, 나비로 변하기 전의 번데기 같은 미완의 존재로 여겨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배우자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혼자서 완전체가 되는 법을 배우는 것이 20대에 주어진 진짜 숙제가 아니겠는가.

성인 남성과 여성을 한 지붕 아래 묶어두고 같이 살도록 장려하는 결혼이라는 이름의 습속은, 아마 인류의 가장 오래된 풍습일 것이다. 혼자서 나름대로 결혼의 기원과 역사에 대해서 공부를 해 보았다. 인류가 결혼이라는 풍습을 발명한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었다.

1. 두 부족과 가문 사이의 거래나 연합 등 정략적인 목표를 위해
2. 어미가 임신 중이거나 육아 중일 때, 식량을 가져다줄 아비를 붙잡아 두기 위해(진화심리학에서는 이를 '암컷의 장기적 생식 전략'이라 한다)
3. 아비 입장에서 어미의 자궁을 독점하여 적통이 보장된 새끼를 얻기 위해(진화심리학에서는 이를 '수컷의 장기적 생식 전략'이라 한다)

세 이유 모두, 성평등을 기치로 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음을 느낄 수 있다. 애초에 결혼이라는 풍습이 발명되었던 이유 자체가 희석되고 있는데, 이를 존속시키려고 굳이 노력할 필요가 있겠는가?

사랑한다면 결혼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미혼인 커플도 동거를 하거나 아이를 가지며 얼마든지 깊은 인연을 맺을 수 있다. 미혼 커플은 기혼 커플과 같은 깊이의 사랑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동거 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이의 편견일 뿐이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결혼은 이혼에 대한 억제력을 발휘함으로써 충동적인 헤어짐을 방지해 준다고. 그 결혼이 애초부터 유지되는 것이 마땅한 관계였음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 결혼이 유지되지 않아야 마땅한 관계였다면? 결혼이라는 이혼 억제 장치가, 헤어져야 당연한 커플을 억지로 붙잡아 놓는 악효과를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남편의 폭력과 외도를 참고 사셔야 했던 우리 어머니 세대들이다. 이분들은 남편과 헤어져야 마땅했지만, 결혼이라는 장치 때문에 이혼하지 못하고 희생하며 사셨다. 이분들의 인생은 누가 보상해 줄 것인가? 참음의 미덕을 깨치게 해 준다? 참을성을 기르는 방법은 폭력적인 부부 생활 견디기 말고도 다른 건설적인 방법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는 두 남녀가 싸움과 화해의 반복을 통해 해로(偕老)에 이르게 되는 과정은, 결혼하지 않은 커플이라도 충분히 가능하다.

나는 결혼 무위론자다
  내 인생에서 결혼이라는 여행을 할 기회가 한 번 올 수도 있고, 두 번 올 수도 있고, 아예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내 인생에서 결혼이라는 여행을 할 기회가 한 번 올 수도 있고, 두 번 올 수도 있고, 아예 오지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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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서 결혼하고 싶다는 지인들도 있다. 통재라! 외로움은 인간이, 특히 현대인이 앓아야 하는 숙명이지만, 외로움을 이기기 위한 방법 100개를 적어 보았을 때 결혼을 통해 해결한다는 것이 아마 100위일 것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나 동양의 노자처럼, 진정으로 깨친 자는 주위에 배우자나 친구를 비롯해 어떤 타인도 필요하지 않았다. 외로움은 혼자서 자아실현을 통해 극복하는 것이지, 타인의 도움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결혼식을 올리지 않은 남녀가 한 지붕 아래 살며 아이를 가지는 것이 망측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다. 결혼이라는 제도의 부재로 인해 남녀가 너무 쉽게 연애하고 헤어지는 문화가 도래하는 것이 고까운 분들도 계시겠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낮선 문화에 거부감을 가지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 아니겠는가. 나 또한 이 본능에서 자유롭지 않아서, 가끔 새로 등장하는 문화나 신기술에 대해 호기심보다는 경계심이 앞서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이런 본능을 의지와 지식으로 극복해내는 것이 지성인으로 거듭나는 길이 아니겠는가.

필자는 독일 원어민들에게 독일어를 배우고 있는 중인데, 가끔 레슨이 끝나고 선생들과 담소를 나눌 때가 있다. 내가 독일의 연애·결혼 문화에 대해 얘기해 달라고 했는데, 남녀를 불문하고 하나같이 결혼이란 제도를 냉소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 흥미로웠다. 독일 사회에서는 결혼 대신 동거 문화가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다는 뜻이겠다. 물론 독일 사회가 제시하는 모델이 유일한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결혼이란 제도가 없더라도 사회가 요지경으로 변하지는 않는다는 예는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독신주의자가 아니라 결혼 무위론자다. 둘은 다른 개념이다. 독신주의자란 결혼이라는 제도가 사회에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나 말거나를 떠나서, 자기 자신은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고 사는 자다. 대표적인 예가 기독교의 사제들로, 이들은 결혼이라는 제도를 적극 지지하고 장려하지만 자기 자신은 독신으로 살아가는 독신주의자들이다.

나는 이와는 다른, 결혼 무위론자다. 실제로 결혼을 하고 말고를 떠나서, 머릿속으로는 결혼이 부질없는 짓임을 이해하고 사는 사람이다. 내 개인적인 믿음을 떠나서, 주위의 결혼하는 지인들에게는 진심으로 축하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다 나름대로 결혼이라는 선택을 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 다만 그 이유가, '주위에서 다 하니까'라든지, '뒤처지는 것 같아서' 등의 이유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결혼은 아마도 프랑스 여행 같은 것이 아닐까. 어쩌다 기회가 되어 한 번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평생 기회가 오지 않아도 뭐 나의 삶에 지장이 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 인생에서 결혼이라는 여행을 할 기회가 한 번 올 수도 있고, 두 번 올 수도 있고, 아예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프랑스 여행을 몇 번을 하게 되든, 나 스스로의 정진이 꺾이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심리학자 매슬로는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최상의 욕구로 자아실현(self-actualisation)을 꼽았다. 자아실현이라는 최고의 열매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프랑스 여행을 떠나는 것은 전혀 별개의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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