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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어로 광고가 된 메로나와 빙그레와 빙과류 제품들이 반갑다.
 스페인어로 광고가 된 메로나와 빙그레와 빙과류 제품들이 반갑다.
ⓒ 송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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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로나: 빙그레 주식회사에서 출시한 초록색 멜론 맛 아이스크림. 멜론에 크림을 적당히 섞은 듯한 맛이며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장수 아이스크림이지만 전 연령대에서 사랑받는다. 1992년 출시됐으며 출시 당시부터 엄청난 인기를 끌어 매년 빙과류 판매 상위권을 차지했다. 그 당시 판매가는 200원으로 저렴한 편이었다. (출처: 나무 위키)

1992년. 기자와 출생연도가 같으니 올해 반오십인 만 25세인 셈이다. 이렇게 강산이 두 번 넘게 변하는 시간을 함께 해왔지만 우리 세대의 '최애 아이스크림'이라고 말하기엔 힘든 점이 있다. 가짓수조차 세기 힘든 '아이스크림의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한 요즘인지라 전보다는 조금 뒷전으로 밀려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몇 개에 5천 원, 만원 하는 식의 세일 행사가 진행되면 심심치 않게 다른 것들과 함께 딸려 들어오는 '안전빵' 정도는 된다. '베스트셀러'는 아니어도 '스테디셀러' 자리는 확실히 지키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본인은 만 스무 살 때부터 나라 밖을 떠돌며 지낸 터라 메로나는 기억 속에서 점점 잊히고 있었다. 그런데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이곳 아르헨티나에서 다시 조우한다면, 그것도 질리도록 자주 볼 수 있다면 믿어지겠는가?

반년 전 한참 이곳 현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국제영어교사 자격증 학원을 다닐 적이었다. 잠깐 지낸 난민촌 같은 호스텔에 충격을 받은 나는 급기야 이곳의 대치동 격인 벨이라 노(Belgrano)로 이사를 강행했다(당시에는 이 동네 땅값 명성을 알지 못했다). 이 노른자위 땅 위의 새 보금자리에는 무려 '차이나타운'이 이웃해 있었다.
 방문자들의 '포토 스팟'이기도 한 차이나타운 입구
 방문자들의 '포토 스팟'이기도 한 차이나타운 입구
ⓒ 송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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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이나타운에는 예외적으로 스페인어와 중국어 도로명 주소가 함께 표기되어 있다.
 차이나타운에는 예외적으로 스페인어와 중국어 도로명 주소가 함께 표기되어 있다.
ⓒ 송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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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람들이 우리에 버금 가게 한식의 수요가 높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 그러니 그곳에 기본적인 한국 식품들이 비치되어 있을 거라는 내 예상은 적중했다. 그렇게나 그리던 라면과 김의 공급지를 도보 15분 거리에 확보하니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다. 한 번씩 장 보러 가는 날에는 가슴이 다 두근두근 설레기까지 했다. 그 얼마 후, 좋은 것을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볕이 좋은 어느 날 반 친구들 몇을 꼬드겨 그 천국의 문(?)으로 함께 들어섰다.
 우리에게 친숙한 말도 스페인어로 쓰이면 상당히 다르게 느껴진다.
 우리에게 친숙한 말도 스페인어로 쓰이면 상당히 다르게 느껴진다.
ⓒ 송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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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 2세부터는 아르헨티나 사람이면서도 뿌리를 지켜가는 경우가 많다.
 이민 2세부터는 아르헨티나 사람이면서도 뿌리를 지켜가는 경우가 많다.
ⓒ 송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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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상징적인 동물  '드래곤(용)'과 수도 거주민을 뜻하는 '뽀르테뇨(Porteno)'가 만나 한 식당의 이름이 되어있다.
 중국의 상징적인 동물 '드래곤(용)'과 수도 거주민을 뜻하는 '뽀르테뇨(Porteno)'가 만나 한 식당의 이름이 되어있다.
ⓒ 송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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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꽉 찬 만두에 밥알에 기름 코팅 촥- 된 볶음밥까지. 머릿속으로는 이미 주문을 다 시켜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지 식당들이 하나같이 모두 문을 닫은 것이다. 점심 영업 후 해질녘까지는 장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 당시에는 점심이건 저녁이건 늦게 먹는 현지인의 생활습관이 몸에 익지 않은 탓에 영업시간을 예상하지 못하고 만 것이다.

그래도 이왕 여기까지 발걸음 한 거 어쩌랴 싶어 중국인 마트와 길거리 가판대를 들락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아르헨티나 현지인과 이민자 입맛을 둘 다 고려한 메뉴와 중국식 이름의 스페인어 번역이 이채로웠다.

'메이드 인 꼬레아'도 상당히 눈에 띄었다. 그때마다 갑자기 우리 문화 전도사로 혹은 쇼핑 호스트로 돌변했다. 그렇게 침튀겨가며 친구들에게 설명을 해주느라 한참 바빠졌다. 각각 미국 텍사스와 덴마크에서 온 친구 둘은 호기심에 몇을 집어 들다가도 '깡패 같은 가격'에 냉큼 도로 갖다 놓았다.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아르헨티나이지만 가격이 부담스럽지 않는 것도 몇 있었다. 그중 하나는 단연 우리 모두의 친구 메로나(한화 약 2500원, 2018년 2분기 기준). 못 보던 사이에 신제품도 나와 색깔별로 고이 냉동고 안에 누워있다. 첫 번째도 두 번째로 간 곳도 메로나가 아예 독점해 있어도 그러려니 했지만 세 번째에 이르자 의아해지기 시작했다.

나중에 자주 방문한 뒤 안 사실이지만 타운 안 대여섯 개에 이르는 대형 중국인 마트 아이스크림 코너는 한국 아이스크림이 점령한 지 오래라고 한다. 정말 다른 현지 아이스크림이나 수입된 것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식당들도 한편에 메로나(혹은 빙그레) 상호가 적힌 냉동고를 두고 후식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거리의 작은 구멍가게에도 메로나가 떡 버티고 있고 잡화점에도 메로나 네온사인이 깜빡인다.
 잡화점에서도 네온사인을 밝히고 메론나 홍보에 열을 올린다.
 잡화점에서도 네온사인을 밝히고 메론나 홍보에 열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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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로나가 베스트셀러였던 내 어린시절은 여기서 현재진행형인 모양이다.
 메로나가 베스트셀러였던 내 어린시절은 여기서 현재진행형인 모양이다.
ⓒ 송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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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인들과의 의사소통의 벽을 허물지 못한 관계로 이 기이한 현상은 미궁에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한국인으로서, 또 한때 메로나의 열성팬으로써 가슴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덧붙이는 말이지만 기자가 영어나 스페인어로 대화를 시도하려 하면 늘 돌아오는 말은 중국어 뿐이었다).

차이나타운이 가장 바쁜 주말 오후에 들러보면 느지막이 점심을 마친 사람들의 손에 메로나가 들려있다. 정말 남녀노소 가림 없이 다 같이 '쪽쪽' 빠는 모습이 내겐 오히려 '문화충격'이었다. 거리의 쓰레기통 곳곳에도 한글과 영어 상호가 앞뒤로 적힌 색색의 메로나 껍데기로 가득했다.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어느 날이었다. 그 근처를 자주 오가는 현지인 친구에게 물어보자 돌아오는 말은 더 충격적이다.

"아~ 그 달달한 중국 아이스크림?"

그 친구의 목덜미 잡게 하는 대답에 열을 올리며 메로나의 국적을 분명히 해주었다. 친구는 건성으로 사과하며 다시 입을 떼었다.

"차이나타운에서 먹는 주말 저녁은 집에서 가장 가까운 해외여행 같은 거였달까?"
"되게 이국적이었다는 말이구나?"

"맞아. 그리고 중국 음식이 좀 기름지잖아. 그래서 집에 가는 길에 부모님 졸라서 '메로나 하나씩 까면' 또 그게 입가심도 되면서 얼마나 별미인지."
"뭐, 별미씩이나..."


"아니야, 그때 그 시절 우리한테는 그랬어. 혀끝에 닿기도 전에 습한 공기에서 맡아지는 그 달콤한 향기... 그리고 차갑고 부드럽게 입안의 여름을 날려버리는 그 맛... 지금 생각해보니 메로나가 내 어린 시절의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했던 것 같네?"

산다는 건 가끔 정말 이상한 일이다. 이렇게 지구 반대편에서 나고 자란 친구가 나와 같은 어린 시절의 행복의 맛을 안다는 것. 그리고 이방인인 나를 그들과 잠시 하나로 묶어놓을 수 있다는 것. 그 시절의 우리는 이런 메로나의 힘을 짐작이나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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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수박과 생막걸리가 유명한 곳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집나가서 하는 개고생과 그를 바탕으로 끄적이는 글쓰기가 인생의 큰 낙이지요. 호주, 유럽, 동남아를 거쳐 지금은 남미 아르헨티나에 정착해 영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항상 여행에 목말라하며 늘 궁금해하는 삶을 살고자합니다. 저와 같은 꿈을 가진 분들은 이곳에서 제 여행에 동참하셔도 좋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