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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탄광 마을에 위치한 초등학교에서 4학년 친구들과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아침 시간, 수업 틈틈이 짬내어 그림책을 읽고 있습니다. 그림책 같이 읽으며 나온, 아이들의 말과 글을 기록합니다. - 기자말

점심 메뉴로 산채 비빔밥이 나오자 아이들은 절반 이상 밥을 남겼다. 잘게 썬 상추와 당근이 맛없고, 고추장이 맵다고 했다. 비슷하게 매운 제육볶음을 다 먹은 걸로 보아 야채가 먹기 싫었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두 젓가락만 더 먹어보자고 해도 굳게 다문 입은 요지부동.

"이거 북한 가면 없어서 못 먹는 메뉴다. 한국만 벗어나도 굶는 애들 천지야."

진심으로 한 말이었는데 아이들은 실실 웃으며 잔반통에 식판을 긁어 부었다. 굶주림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 밥을 남기는 건 살을 뺀다와 같은 의미다. 그러나 세 끼를 거르면 어떤 메뉴든 진수 성찬이 된다. 결핍을 이해해야 내가 누리는 풍요가 선명해진다. 넉넉하고 깨끗한 음식, 건강한 가족, 안전한 학교, 충분한 수면은 누구나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어린이' 하면 떠오르는 행복하고 즐거운 이미지는 전 세계 몇 퍼센트 만이 누리는 특권일까? <거짓말 같은 이야기>는 이 질문에 적절한 대답이 될 수 있는 책이다. 책의 내용은 거짓말 같을 뿐 모두 진짜다.

 2011 볼로냐 국제  어린이 도서전 라가치 상을 수상했다.
 2011 볼로냐 국제 어린이 도서전 라가치 상을 수상했다.
ⓒ 시공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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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내 이름은 솔이야.

솔이는 대한민국에 산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서, 솔이 방에는 지금껏 그린 작품들이 여기저기 붙어있다. 바닥은 물감 더미와 물통, 공룡, 로봇 장난감들로 어지럽다. 화가를 꿈꾸는 장난꾸러기답다. 현재 작업 중인 그림은 가족화다. 솔이가 엄마, 아빠 손을 잡은 채 활짝 웃고 있다.

"우리 엄마도 내 그림 벽에 붙여주시는데."

솔이 방 풍경을 보고 승표가 웃었다. 류은이도 어릴 때 작품이 아직 걸려있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가정이나 애들 상장과 그림이 집안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솔이 얘기가 더 궁금해져 다음장을 넘겼다.
안녕? 내 이름은 하산이야. 

솔이 대신 머리에 안전모를 뒤집어쓴 남자애가 등장했다. 몇몇 애들이 대번에 안전모 앞에 붙은 전등을 알아챘다. 여기 삼척시 도계읍은 탄광촌이라 광산업에 종사하는 학부모가 꽤 된다. 광부의 자녀는 아버지가 사용하는 도구를 쉽게 발견했다. 그런데 왜 어린아이가 작업모를 쓰고 있는 걸까?

하산은 키르기스스탄에 산다. 한국 아이들이 수학 익힘책 문제 풀고 피구 하는 동안, 하산은 지하 갱도에서 매일 오십 킬로그램이 넘는 석탄을 실어 올린다. 시커먼 탄가루와 땀이 뒤섞여 때처럼 피부를 덮는다. 방진 마스크도 없이 석탄 더미를 나르는 일이 힘들지만 배고픈 동생을 떠올리면 참을 수 있다.

"초등학생이 광산에 들어갈 수 있나?"

승우가 납득이 안 된다는 듯 입을 샐룩거렸다. 하산이라고 연필 대신 곡괭이를 쥐고 싶었을까. 극심한 가난은 하산을 제 발로 학교에서 나오게 만든다. 유독 가스가 들어찬 막장에는 하산 친구들이 여럿이다.
 키르기스스탄은 1991년 구소련에서 분리 독립한 나라다. 중앙아시아 최빈국으로 꼽힌다.
 키르기스스탄은 1991년 구소련에서 분리 독립한 나라다. 중앙아시아 최빈국으로 꼽힌다.
ⓒ 시공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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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내 이름은 파니어야.

뒤로 가니 또 다른 꼬마가 나타났다. 인도에 사는 파니어는 하루에 열네 시간씩 카페트를 만든다. 여린 손으로 씨줄과 날줄을 엮어 완성한 카페트 품삯은 가족의 빚을 갚는데 쓰인다. 높은 곳에 작게 뚫린 창으로 겨우 밖이 보인다. 파니어는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을 공장에서 보낸다. 피로에 절은 파니어가 울긋불긋 화려한 카페트 아래에서 손가락을 바지런히 움직인다.

"선생님, 인도에 똑똑하고 잘난 사람 많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지영이가 용케 예전 이야기를 기억해냈다. 사회 시간에 구글, 페이스북, 애플 소개를 하면서 핵심 엔지니어들 중 상당수가 외국인이라고 강조한 적이 있었다. 특히 인도 출신 인재들이 미국 IT 기업 CEO가 된 사례가 흔하다며 뉴스를 보여줬다. 지영이 눈에는 4차 산업 시대 핵심 국가라고 소개받은 인도가 파니어의 인도가 맞는지 헷갈렸을 것이다.

"그 인도가 여기 나오는 인도 맞아요. 믿기 힘들죠?"

세계 2위 인구대국이자, 명목 GDP 순위 7위(2018년 기준) 인도에서는 어린이 노동 착취가 흔하다. 최첨단 IT 기술을 개발하는 1류 엔지니어 집으로 취약 계층 어린이들이 가정부와 잡역부가 되어 출근한다. 법은 느슨하고 가난한 어린이를 뜯어먹는 관습은 여전하다. 파니어는 인도의 그림자다.
 교육 받을 기회를 박탈당한 파니어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교육 받을 기회를 박탈당한 파니어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 시공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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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파니어 다음에는 누구예요?"

솔이와 하산, 파니어를 거치며 아이들은 책의 비밀을 알아냈다. 다음은 우간다의 키잠부다. 키잠부는 말라리아에 걸렸다. 우간다에서는 해마다 약 11만 명의 어린이가 말라리아로 죽는다. 무덤가 십자가에 앉은 독수리가 키잠부 쪽으로 눈알을 부릅뜬다. 양 무릎을 감싸 쥐고 앉은 키잠부는 독수리가 와도 떨쳐낼 힘조차 없어 보인다.

"말라리아는 왜 걸리는 거예요?"
"말라리아 원충에 감영 된 모기가 사람을 물면 병이 옮겨와요."
"그래도 11만 명 씩이나."

찬혁이가 11만, 11만을 곱씹었다. 같은 또래 11만 명이 같은 병에 걸려 죽는 걸 상상하기 힘든 모양이었다. 한국은 영유아 사망률이 1000명 당 3명에 불과하다.

"와 한국은 대박 좋은 나라네."

지우는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에 해외여행 가면 없던 애국심이 생기는 것처럼, 고달픈 지구촌 친구들 얘기를 듣던 한국 초등학생들은 안타까움과 자랑스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한국이 내부적으로 교육, 빈부격차, 세대갈등 따위로 속 시끄러운 건 사실이나 절대적 삶의 조건을 갖추지 못한 국가와 비할 바가 아니었다.

"다음 장은 또 누구지?"

아이들은 새로운 인물을 궁금해했다. 그런데 아까와 달리 목소리가 약간 들떠 있었다. 아주 미묘한 차이였지만 눈썹 움직임이나 입꼬리에서 호기심이 느껴졌다. 나는 문득 닭살이 돋으며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왜냐하면 공포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이 된 기분에 사로잡혔기 때문이었다. 공포 영화는 무서움을 즐기는 엔터테인먼트 상품이다. 화면에 몰입하면 신경이 곤두설 만큼 소름 끼치지만, 귀신이 관객을 덮치리라 믿는 사람은 없다.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읽고 있는 우리는 경악을 넘어 절대적 절망 속에 근근이 생을 이어가는 아이들을 에어컨 바람 씽씽부는 교실에서 보고 있었다. 키잠부와 하산은 불쌍하고 안쓰럽지만 우리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평생 만날 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존재였다. 빈곤과 비위생적 환경이 제공하는 극한의 드라마에 가슴 아파하면서도 '나는 사실 상관없다'는 안도감이 공존하는 이중 상황, 어쩌면 타인의 곤란함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혼란스러웠다.

"선생님 얼른 넘어가요."
"어... 그래. 루마니아에 사는 엘레나는 삼 년째 거리의 맨홀에서 외롭게 살고 있습니다. 작은 개 세시만이 엘레나의 친구가 되어 줄 뿐입니다."

 고통을  콘텐츠를 즐기고 있다는 감정을 지울 수 없었다.
 고통을 콘텐츠를 즐기고 있다는 감정을 지울 수 없었다.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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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책을 끝까지 읽기로 했다. 엘레나에서 아이티 지진으로 부모를 잃은 르네로, 르네에서 콩코 내전 소년병으로 끌려간 칼라미를 만났다. 아이들은 한숨을 푹푹 쉬며 이야기에 빠져 들었다. 최근 읽었던 책 중 반응도 제일 열광적이었다. 그렇지만 하루 종일 기분이 찝찝했다. 토론도 충분히 깊이 있었고, 몰입도는 단연 최고였는데 굵직한 무언가가 마음을 누르고 있었다.

'괴로운 아이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나는 뭘 해야 하지? 그냥 그림책 읽고 토론하면 그걸로 되는 건가?'

고민의 요점은 실천 범위였다. 아이들에게 지구촌 곳곳의 부조리함을 절감하게 한 것만으로도 의의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좀 더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하는 것일까? 생각이 이쪽저쪽으로 옮겨가며 갈피를 잡지 못했다. 분명 아침에 학교 올 때까지만 해도 좋은 책 구입했다고 신나서 휘파람을 불었는데 퇴근할 무렵이 되어서는 시름에 잠겼다.

세상에는 무지와 무관심에 의해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슬픔과 사연이 무수하다. 우리는 그저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하기에 편견은 더욱 공고해지고 변화는 더디다. 언제나 내가 누리는 것들을 당연히 여기지 않고 감사하기, 내가 할 수 있고 일상을 깨뜨리지 않는 범위에서 남을 돕기. 거짓말 같은 이야기는 돌고 돌아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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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찬히 바라보고, 천천히 생각합니다.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을 연재하며,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