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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대로 북쪽을 향해 가는 길

 이르쿠츠크대학교 부속 안과병원
 이르쿠츠크대학교 부속 안과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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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눈병이 났다. 아무래도 알혼섬 숙박시설의 위생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 생긴 것 같다. 또 알혼섬을 다녀오는 과정이 힘들어 몸의 저항력이 약해진 때문으로도 보인다. 우리는 이르쿠츠크대학교 부속 안과병원에를 잠시 들른다. 이 건물은 그린라인 10번 건물로 근대문화유산이기도 하다. 그런데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한두 시간은 걸릴 것 같다.

우리는 병원을 나와 가까운 약국에서 간단한 진단을 받고 충혈을 막아주는 약과 안과 질환 바이러스 약제를 구입한다. 하루에 6-10회 눈에 넣어주면 된다는 것이다. 사실 오늘 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30시간을 가야하는데 걱정이다. 장기간 여행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몸에 탈이 나는 일이다. 지금까지 여행에서는 감기와 소화불량 정도만 경험했는데, 이번에는 눈병까지 걸리니 긴장이 된다.
 키로프광장
 키로프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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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볼 문화유산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는데, 이걸 어째야 하나? 이르쿠츠크 행정과 종교의 중심건물은 키로프광장 북쪽에서 앙가라강에 이르는 레닌대로에 있다. 러시아 도시에서는 시내 중심거리 이름이 레닌인 경우가 많다. 그것은 그가 공산주의 혁명을 성공시킨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린라인으로 알려진 관광명소의 절반이 이곳 레닌대로변에 있다.

키로프광장 역시 레닌대로 오른편에 있다. 이르쿠츠크 시내에서 가장 큰 공원 겸 광장으로, 그 이름은 공산주의 혁명지도자 키로프(Andrei Kirov)에서 따왔다. 이 광장은 처음에는 시장광장 개념으로 만들어졌고, 그 후 차츰 교회가 들어와 이르쿠츠크 구시가지를 형성했다. 키로프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1934년이고, 공원이 생긴 것은 1961년이다.

나는 광장 안에 있는 여행안내소에서 처음으로 여행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이르쿠츠크. 쉽게 여행하기>라는 가이드북이다. 이곳에 이르쿠츠크의 역사, 건축, 관광명소, 기념물 등이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다. 그린라인도 지도와 함께 그 지점을 리스트로 정리해 놓았다. 교통 통신은 물론이고 쇼핑과 식사까지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이 책은 이르쿠츠크뿐 아니라 바이칼 호수 관광까지 안내하고 있다.

키로프광장에서 앙가라강으로

 추모의 광장, 영원의 불꽃, 벨로보로도프 흉상, 사랑의 다리
 추모의 광장, 영원의 불꽃, 벨로보로도프 흉상, 사랑의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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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로프광장 북쪽에 이르쿠츠크 주정부 청사가 있다. 무미건조한 현대식 건물이다. 사회주의가 현실성과 실용성을 추구하면서 만들어낸 건축양식이다. 청사 뒤에는 추모의 광장(Memorial Complex: 그린라인 17번)이 있고, 그 뒤로 사랑의 다리를 넘어가면 앙가라강변에 이른다. 추모의 광장에는 영원의 불꽃이 타오르고, 그 뒤에 이르쿠츠크 출신의 장군 벨로보로도프(A. P. Beloborodov)의 흉상이 있다.

추모의 광장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이르쿠츠크 지역 출신 군인들을 추모하고 기리는 공간이다. 전쟁에 참가한 군인은 21만 명 정도이며, 그 중 5만 명이 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1975년 5월 처음 만들어졌고, 1995년 기념물이 추가되고, 추모공간이 더 넓어졌다.

 이르쿠츠크 개척자 빠하보프(Yakov Pokhabov)
 이르쿠츠크 개척자 빠하보프(Yakov Pokhab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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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다리에서 앙가라강변까지는 결혼식을 마친 신랑신부가 친구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앙가라강을 따라 동쪽으로 내려가면 빠하보프(Yakov Pokhabov) 동상이 나온다. 빠하보프는 코사크족의 대장으로 1661년 시베리아에 길을 내면서 이르쿠츠크라는 도시를 최초로 개척했다. 이 동상은 도시 탄생 350주년인 2011년 9월 세워졌다. 높이가 6m나 된다.

이 길을 따라 하류로 더 내려가면 아이들을 키우는 어머니 동상을 만날 수 있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것으로 보아 선생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의 표정이 밝고 진지하다. 여기서 더 내려가면 모스크바 개선문(19번)을 만날 수 있다. 이 승리의 개선문은 알렉산드르1세 때인 1813년 처음 만들어졌다. 1812년 나폴레옹의 침공을 막아낸 러시아군의 승리를 기념하는 최초의 개선문이다. 또 러시아를 잿더미로부터 구해낸 알렉산드로 1세를 추모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승리의 개선문: 왼쪽에 신부의 들러리들
 승리의 개선문: 왼쪽에 신부의 들러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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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승리의 개선문은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도 세워졌다. 이르쿠츠크의 모스크바 개선문은 소비에트 사회주의 시절인 1928년 철거되었다. 이것이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세워진 것은 이르쿠츠크 도시 설립 350주년인 2011년이다. 개선문의 높이는 19m이다. 이번에는 오히려 모스크바에 있는 승리의 개선문을 모방한 느낌이다. 차이가 있다면 이곳에는 동상이 없다.

구세주 교회와 주현절 성당

 구세주교회
 구세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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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주 교회(16번)는 1672년 이르쿠츠크에서 가장 먼저 목조로 지어졌다. 1706년 이르쿠츠크 최초의 석조건물로 다시 지어졌고, 1710년 축성되었다. 앙가라 강변을 따라 만들어진 이르쿠츠크 성곽의 내부에 있던 유일한 건물이다. 1967-80년 사이 건물 중수와 리모델링을 거쳤다. 그리고 건물 내․외벽의 프레스코화도 다시 그려졌다. 1982년부터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다가, 2006년 교회로 되돌아왔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면 깨끗하고 신성한 이콘화를 볼 수 있다. 이들은 1970년대 후반 건물을 리모델링하며 다시 그려졌다. 그 중 3단으로 그려진 이콘화가 가장 인상적이다. 각각의 단은 7개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한가운데 위로부터 아래로 성모자, 주 예수, 최후의 만찬 그림이 그려져 있다. 상단 2단에는 마리아, 세례 요한, 사도들이 그려져 있다. 하단에는 예수의 생애와 관련된 그림이 있다.

 성 표트르와 페브로니야 부부
 성 표트르와 페브로니야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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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옆에는 성 표트르와 페브로니야 부부의 동상이 서 있다. 이들 부부는 새끼를 키우는 비둘기 부부를 양손으로 받치고 있다. 이들 부부는 러시아 사람들에게 부부와 가족의 수호성인으로 추앙받는다. 그 때문인지 결혼식을 마친 부부와 가족들이 많이 찾는다. 이들은 동상 앞에서 경의를 표하기도 하고, 동상 뒤쪽에 있는 토끼의 코를 만지며 소원을 빌기도 한다. 이 동상은 이르쿠츠크 설립 350주년인 2011년 2.8m의 높이로 세워졌다.

주현절 성당(18번)은 1693년 목조로 지어졌다. 1716년 불이나 1718년 석조건물로 다시 지어졌다. 1724년 북쪽 제단에 페트로와 파블롭스키가 모셔졌고, 1746년 9월 주현절 성당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1815년 성당 옆에 종탑이 추가되었다. 주현절 성당은 1720년대부터 이르쿠츠크 주교좌 성당이 되었다. 소비에트시대인 1934년 성당은 문을 닫고 1968년까지 베이커리와 기숙사로 사용되었다. 성당이 이르쿠츠크 교구로 돌아온 것은 1994년이다.

 주현절 성당
 주현절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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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현절 성당 내부
 주현절 성당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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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주 교회와 주현절 성당 옆에는 폴란드 사람들이 세운 가톨릭교회(15번)가 있다. 이 교회는 1825년 성모마리아 승천교회로 지어졌다. 1879년 화재로 불탄 것을 벽돌건물로 다시 지었다. 외형은 신고딕양식이며, 내부 장식은 폴란드 예술가 코페르스키(V. Kopersky)가 했다. 1978년 독일제 오르간을 구입해 오르간 홀을 만들었고, 그 때문에 필하모닉 오르간 홀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즈나멘스키 수도원에는 어떤 사연이

 즈나멘스키 수도원
 즈나멘스키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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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앙가라 강변에 있는 마지막 종교시설 즈나멘스키 수도원을 찾아간다. 즈나멘스키 수도원으로는 대중교통이 잘 연결되지 않아 택시를 타고 간다. 즈나멘스키 수도원은 우샤콥카(Ushakovka)강이 앙가라강에 합류되는 지점에 위치한다. 1693년 목조건물로 지어졌고, 1757년 석조건물로 거듭났다. 1760년에는 니콜라이 예배당이 만들어졌다.

19세기 후반 수도원은 절정기를 맞이했는데, 학교, 양로원과 고아원, 빵집, 수공예작업장, 온실 등을 운영했다. 소비에트 사회주의시대인 1920년대 문을 닫고, 자동차 수리공장과 주차장으로 사용되었다. 1928년부터 1953년까지 수도원은 수상비행기 기지로 사용되면서 수도원의 면모를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종교적인 시설뿐 아니라 수도원에 있던 무덤까지 훼손되었다.

 예카테리나 트루베츠코이 무덤
 예카테리나 트루베츠코이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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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이르쿠츠크 최초의 주교 성 인노센트(Saint Innocent), 데카브리스트의 무덤과 부유한 상인들의 무덤만 확인된다. 그들 중 대표적인 것이 데카브리스트 트루베츠코이의 부인 예카테리나의 무덤이다. 그녀는 남편을 따라 이르쿠츠크에 왔다가 주민의 계몽과 교화에 힘쓰다 1854년 이곳에 묻혔다. 2015년에는 소설가이자 환경보호주의자인 라스푸틴(Valentin Rasputin)이 이곳에 묻혔다. 그는 1970년대 이래 바이칼호수와 앙가라강을 보호하는데 앞장섰다.

 콜착제독 동상
 콜착제독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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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을 나오다 보면 콜착(A. Kolchak)제독의 동상이 보인다. 이 동상은 러시아 혁명기인 1920년 이르쿠츠크에서 적군(Red Army)에게 체포되어 총살당한 콜착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다. 콜착제독은 볼셰비키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백군(White forces)의 리더였으나, 2월 7일 아침 처형되어 앙가라강의 얼음 속에 버려졌다. 최근에 와서 콜착제독은 조국을 사랑한 비극적 영웅으로 평가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그린라인 지도는 7회 연재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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