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 미소 23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ㆍ팔렘방 아시안게임 펜싱 사브르 남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김정환, 오상욱, 구본길, 김준호(왼쪽부터)가 시상식을 마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금빛 미소 23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ㆍ팔렘방 아시안게임 펜싱 사브르 남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김정환, 오상욱, 구본길, 김준호(왼쪽부터)가 시상식을 마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 펜싱 남자 사브르 대표팀이 아시안게임 2연패를 달성했다.

김정환, 구본길, 김준호, 오상욱으로 구성된 펜싱 남자 사브르 대표팀은 23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컨벤션센터 츤드라와시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펜싱 사브르 남자 단체전 결승에서 이란을 45-32로 꺾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로써 남자 사브르 단체전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 이어 대회 2연패에 성공했다.

한편 1998년 방콕 대회부터 2014년 인천 대회까지 지난 5번의 아시안게임에서 한 번도 금메달을 놓치지 않았던 여자 플뢰레 대표팀은 단체전 4강에서 일본에게 패하며 동메달에 만족했다. 수영의 박태환을 넘어 하계 아시안게임 역대 최다 금메달(7개)에 도전했던 남현희도 한국의 준결승 패배와 함께 기록 달성에 실패했다.

꼼수 부리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가린 펜싱 선후배

거침 없이 공격 23일 오후 (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 결승전. 한국 김준호가 이란 선수를 상대로 공격하고 있다.

▲ 거침 없이 공격 23일 오후 (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 결승전. 한국 김준호가 이란 선수를 상대로 공격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 종목의 세계 최강자를 가리는 올림픽 무대에서는 한국 선수들끼리 금-은메달을 가리는 결승에서 만나는 경우가 가끔 있다. 88서울올림픽 탁구 남자단식의 유남규와 김기택이 명승부를 펼쳤고 양궁이나 배드민턴에서도 함께 땀을 흘린 동료들끼리 '우정의 대결'을 벌이는 경우가 있었다. 동계올림픽에서는 '효자 종목'인 쇼트트랙에서 한국 선수가 결승선을 1, 2위로 통과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사실 금메달과 은메달은 그 선수의 명성이나 연금 점수 등에서 제법 많은 차이가 난다. 하지만 남자 선수들의 경우 올림픽 동메달까지 병역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에 군미필 선수가 은메달을 확보해 두면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게 된다. 하지만 오직 금메달에게만 병역 혜택을 주는 아시안게임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병역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선수는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위해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지난 20일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놓고 한국 선수들끼리 결승에서 격돌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리스트이자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개인전 금메달로 일찌감치 병역혜택을 받은 구본길은 파죽지세로 결승에 올라 아시안게임 3연패에 도전했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구본길과 함께 남자 사브르의 쌍두마차로 꼽히는 김정환을 제치고 개인전 출전 자격을 얻은 신예 오상욱이 결승에 진출했다.

사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을 가졌다면 이미 아시안게임에서 3개의 금메달을 보유하고 있는 구본길이 후배의 병역 혜택을 위해 다소 느슨한 경기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시안게임 개인전 3연패가 걸려 있던 구본길에게도 결승전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승부였다. 무엇보다 금메달이 걸린 결승전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은 스포츠 선수로서 본분을 망각하는 행위다.

결국 두 선수는 대회 3연패와 병역 혜택이라는 놓칠 수 없는 타이틀이 걸린 결승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명승부를 펼쳤다. 동점과 역전을 주고 받던 두 선수는 14-14의 동점에서 두 차례나 동시타가 나왔고 세 번째 동시타가 심판의 판정 끝에 구본길의 득점으로 인정되면서 승패가 갈렸다. 그렇게 구본길은 한국 펜싱 역사에서 누구도 넘보지 못한 아시안게임 개인전 3연패의 주인공이 됐다.

눈물 흘리며 약속한 단체전 금메달 함께 따낸 남자 사브르의 해피엔딩

이 기쁨 어찌할까 23일 오후 (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 결승전에서 승리해 금메달을 획득한 한국 구본길(왼쪽), 오상욱이 기뻐하고 있다.

▲ 이 기쁨 어찌할까 23일 오후 (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 결승전에서 승리해 금메달을 획득한 한국 구본길(왼쪽), 오상욱이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경기가 끝난 후 구본길과 오상욱은 다시 절친한 선후배로 돌아가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하지만 아쉬움과 후련함이 섞인 옅은 미소를 짓던 오상욱과 달리 아시안게임 3연패라는 위업을 달성한 구본길은 후배를 안고 굵은 눈물을 흘렸다. 본의 아니게 후배의 금메달을 빼앗았다는 미안함의 눈물이었다. 구본길은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두 번이나 개인전 은메달을 따낸 적이 있어 은메달의 아쉬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구본길은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인터뷰에서 단체전에 대한 굳은 각오를 밝혔다. 단체전에서 구본길은 "인생의 모든 것'을 쏟아 붓겠다"는 강한 표현을 써가며 후배에게 좋은 길을 열어주고 싶다는 다짐을 했다. 오상욱 역시 "형이 미안해 할 필요 없다"며 경험부족에 따른 실력 차이를 인정했고 구본길과 함께 단체전에서의 선전을 다짐했다.

그리고 구본길과 오상욱의 결의는 3일 후 단체전 금메달로 돌아왔다. 맏형 김정환과 에이스 구본길, 다크로스 김준호, 막내 오상욱으로 구성된 한국은 8강에서 카자흐스탄을 45-17로 완파하며 순항을 시작했다. 한국은 구본길, 오상욱, 김준호가 출전한 홍콩과의 준결승에서도 한 수 위의 기량을 과시하며 45-20 완승으로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 상대는 준결승에서 중국을 2점 차로 꺾은 중동의 이란. 하지만 개인전 금·은메달리스트 구본길, 오상욱과 7월 세계선수권대회 개인전 우승을 차지한 김정환을 보유한 한국에게 이란은 그리 위협적인 상대가 아니었다. 한국은 9번의 세트 가운데 7개의 세트에서 승리를 거두는 압도적인 우세를 펼친 끝에 13점 차이로 여유 있는 승리를 거뒀다. 구본길은 2대회 연속 2관왕에 올랐고 오상욱도 병역 혜택을 받게 됐다.

개인전 3연패를 달성하고도 단체전에서 '인생의 모든 것'을 걸겠다고 다짐한 구본길의 투지는 결코 헛되지 않았다. 결국 선배에게 찰나의 차이로 금메달을 놓쳤던 막내 오상욱은 형들과 얼싸 안으며 자신의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마음껏 기뻐할 수 있었다. 개인전 금, 은메달에 이어 단체전 금메달까지. 그야말로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긴 한국 펜싱 남자 사브르 대표팀의 완벽한 해피엔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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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 구본길 오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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