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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7월, 장애 정도를 1~6등급으로 분류하는 '장애 등급제' 가 사라진다. 보건복지부는 장애인 복지 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일부개정안을 마련하고, 23일부터 10월 2일까지 입법예고하겠다고 밝혔다. 늘 뜨거운 논쟁 거리던 '장애 등급제' 가 드디어 폐지되는 순간이다. 등급제 폐지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2012년 8월 12일, 전국 장애인 차별 철폐 연대는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주장하는 농성을 시작했다. 광화문 해치광장 지하보도, 오고가는 수많은 인파속엔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는 그들이 있었다. 한파에도 폭염에도 한 자리를 지키며 그들이 절실히 외쳤던 '장애 등급제 폐지'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장애 등급제' 란 일정한 지표를 기준으로 장애 정도를 구분하는 제도로 1급에서 6급까지로 분류된다. 복지 서비스 역시 등급에 맞춰 일괄적으로 제공된다. 이러한 획일적인 서비스로는 개개인이 필요한 지원을 제대로 공급받기 어려운 경우가 빈번했다. 때문에 장애등급제는 시행되었던 기간 내내 '복지의 진정한 의미를 실현하지 못 한다',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들을 오히려 복지 사각지대로 몰고 있다'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장애등급제에 반대하는 광화문 농성장 앞에 놓인 분홍 종이배 더미에는 불합리한 등급제로 인해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장애인들의 실 사례들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이 곳에 적힌 사연 주인공들 중 일부는 극빈한 삶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더 이상 이러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장애인들의 생계와 나아가 양질의 삶을 보장하는 것. 이것이 투쟁을 이어온 이들의 주장이었으며, 이를 위해 '장애등급제 폐지' 는 반드시 필요한 수순이었다.

대통령 후보시절부터 '장애 등급제 폐지'를 이야기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1년 만에 이를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내년 7월부터 정부는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를 통해 장애인의 서비스 필요도를 재평가하고, 수급자격과 급여량을 결정한다. 일괄적이며 그 만큼 허점도 많았던 장애 등급제가 아닌, 장애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수요를 제대로 맞출 수 있는 진짜 '서비스' 가 탄생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하지만 여전히 내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전국 장애인 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장애인 당사자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원하는 만큼 맞춰주겠다고 하는데, 도대체 무엇을 맞춰 주겠다는 지 얼마만큼의 서비스 양을 제공 하겠다는 지 관련된 내용이 없다" 고 강한 불만을 표했다. 이들의 우려처럼 제대로 된 대책 없이 등급제만 우선적으로 폐지할 경우 제도와 제도 사이 공백이 생겨 받아오던 서비스마저 제대로 받지 못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정부의 지원을 받는 장애인 중에는 지원이 한 시라도 끊기면 당장 생계에 위협을 받는 극빈층이 있다. 거동이 불편한 지체 장애인, 고령 장애인, 중증의 발달 장애인의 경우에는 바뀐 등급제에 대한 정보를 얻기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정부와 복지부는 모든 경우의 수를 철저히 챙겨 단 한 사람도 마땅한 권리에서 누락되는 일이 없도록 특별히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많은 장애인들의 우려처럼 정책이 바뀌는 과도기에 혼선이 생기지 않도록 어떤 조사 방식을 통해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 지도 사전에 충분한 논의를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장애 등급제'를 향한 관심은 아직은 꺼져서는 안 될 불처럼 보인다. 2012년부터 이어져 온 투쟁은 '장애 등급제 폐지' 로 막을 내렸지만 정말 중요한 건 앞으로다. 장애인들이 요구해왔던 것이 단지 법안 하나를 폐지시키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단 한명의 장애인도 극빈한 삶에 내몰리지 않는 것, 인간이라면 누구나 추구할 수 있는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 합당한 지원을 받는 것, 그렇게 이 세상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가 사라져가는 것. 이것이 그들이 '장애 등급제 폐지'를 위해 오랜 시간 외로운 투쟁을 이어 온 이유다.

새롭게 시행 될 복지 제도가 제 2의 장애등급제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진정한 평등 실현을 위한 제도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새롭게 태어날 정책에 예의주시하고, '장애 등급제 폐지' 이후 장애인들의 진짜 요구에 귀를 기울여 주어야 할 것이다.

'장애 등급제 폐지' 는 끝이 아니다. 모든 제도의 개선이 그렇듯, 이 역시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첫 걸음일 뿐이다. 첫 걸음을 내딛었음에 기뻐하되 옳은 방향을 향한 첫 걸음이 될 수 있도록 함께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고민과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


태그:#장애등급제폐지, #장애인 , #장애등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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