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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년 전, 갑자기 채식을 시작했다
 8년 전, 갑자기 채식을 시작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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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살 때였다. 사촌 오빠가 돼지고기 비계를 다 떼고 먹길래 물었다.

"오빠, 그거 내가 먹어도 돼?"

친척들은 모일 때마다 아직도 그 얘기로 날 놀린다. 아빠는 그때마다 "얘가 여섯 살 때부터 삼겹살 한 근을 먹던 애"라며 자랑스레 무용담까지 늘어놓는다. 그런 내가 스물 일곱 살에 '고기'를 끊었다. 모두 그놈의 사랑 때문이었다.

그날 그의 젓가락이 방황하고 있음을 눈치챈 건 나였다. 삼겹살 3인분은 족히 먹던 그가 삼겹살집에서 상추나 무생채만 집어 먹길래 물었다. "선배, 왜 그래?" 그러나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눈치만 살피다 둘이 있을 때 물으니 얼마 전 <육식의 종말>을 읽었단다. 180cm에 80kg인 그가 풀만 먹고 살겠다니. 마음이 쓰였다. 그는 '공룡발'(빅사이즈 신발 브랜드)의 세계를 처음으로 알려준, 나의 애인이었기 때문이다.

데이트는 늘 식당을 찾아 헤매는 일로 시작됐다. '이렇게 삼겹살집이 많았나?' 채식 식당은커녕 채식 메뉴조차 만나기 힘들었다. 비빔국수나 비빔밥 따위를 먹을 때마다 "나 때문에 맛있는 걸 못 먹는다"라며 그가 민망해하고 미안해하는 것이 싫었다.

어느 날인가 육식을 비판하는 책을 잔뜩 빌렸다. 공장식 축산이 동물을 얼마나 잔혹하게 대하는지, 그 많은 고기를 키우고 유통하기 위해 얼마나 환경이 파괴되는지. 채식할 이유는 차고도 넘쳤다. 8년 전 겨울, 길을 걷다 그에게 무심히 말했다.

"선배, 나도 이제 고기 안 먹으려고."

우리는 무엇이 '고기'인지 잊고 산다
 
 이제 직접 채식만두를 만들어 먹는다.
 이제 직접 채식만두를 만들어 먹는다.
ⓒ 우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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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고기 안 먹는다며?"

주변 사람들은 귀신같이 고기를 찾아냈다. 채식할 생각은 조금도 없으면서 내 채식에 참견하는 일에는 이상하리 만큼 의욕적이었다. 그저 '삼겹살을 그만 먹는 정도'로 채식을 이해했던 난 당황했다.

김치만두에 왜 돼지고기를 넣을까. 살면서 그토록 실제적이고 깊은 고민을 해본 일이 없다(만두는 내 소울 푸드다). 이전에 내가 고기인 줄도 모르고 먹었던 수많은 고기들과 작별을 고해야 했다. 밖에서 사먹는 짜장면, 카레, 피자빵, 핫도그 등을 비롯해 고기 육수로 끓여낸 수많은 찌개와 국들과도 안녕이었다.

고기와의 이별은 지지부진했다. 육수로 끓여낸 음식은 적당히 건더기만 건져 먹는 것으로 종종 타협했고, 실수로 주문을 잘못해 나오면 되도록 먹었다. 고기가 안 들어간다고 해서 시킨 볶음밥에 햄이 잔뜩 나왔다고 주문을 무를 수 없었다. 환경을 위한답시고 채식을 하는데 쓰레기를 만들 수는 없으니까. 종업원의 입장도 이해가 갔다. 우리는 대부분 무엇이 고기인지 잊고 산다.

'이건 뭘로 만든 거지?' 생각하지 않으면 아차 하는 순간 입에 고기가 들어왔다. 채식은 결심하는 순간 완성되는 그럴싸한 라이프 스타일이 아니었다. 곳곳에 잠복해 있는 고기를 면밀히 관찰하고 찾아내야 하는 고된 훈련이었다. 고민 끝에 그와 난 육식을 단계적으로 줄여나가는 방식을 선택했다. 처음에는 덩어리 고기에서 간 고기로, 또 육수로. 그리고 생선과 유제품을 줄일 때 즈음 우린 헤어졌다. 

왜 나는 채식을 하는가. 그와 헤어지고 나니 다른 답이 필요했다. 더는 "애인 때문에요"라고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와 이별 후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고, 너도 이제 가식 그만 떨고 먹으라고 친구들이 짓궂게 놀렸지만 그럴 이유가 없었다. 나는 다시 '동물의 사체'를 먹고 싶지 않았다. 

불편한 질문들은 날 생각하게 한다
 
 아빠가 날 위해 차려준 채식 밥상. 산나물과 표고버섯, 두릅으로 차린 특별식이다.
 아빠가 날 위해 차려준 채식 밥상. 산나물과 표고버섯, 두릅으로 차린 특별식이다.
ⓒ 우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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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채식을 하냐?"는 질문에 늘 "애인 때문에요"라고 능글맞게 말했지만, 그건 사실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는 차선의 대답이었다. 그 질문은 대체로 식당에서 던져졌고, 마주 앉은 사람이 제육볶음을 먹고 있는데 "그 '고기'도 생명이었다. 동물을 타자화하고, 고통 주어 착취한 결과를 먹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더이상 나 자신을 속이고 싶지 않다. 내가 채식을 공부하면서 가장 절절하게 느낀 건, 육식으로 인한 환경 파괴도, 그로 인한 지구 멸망의 공포도 아니었다. 육식 문화 속에서 잔인하게 죽어가는 동물들의 고통이었다. 어릴 적부터 반려견과 살아온 나는 그 생명들을 고기라고 부르며 타자화할 수 없었다. 내가 울 때 달려와 나를 위로해주는, 감정과 마음을 가진 동물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말대로 나의 엉터리 채식이 괜한 민폐만 끼치는 일은 아닐까 두렵다. 그런데도 늘 뻔뻔하게 채식한다고 말하는 건 그로서 내가 무언가 배우기 때문이다. 불편한 질문들은 날 생각하게 한다. '페스코'(해산물, 달걀, 유제품 외 육류를 먹지 않는 채식)인 내게 누군가 "채식한다면서 왜 계란말이를 먹느냐?"고 물었을 때, 난 무엇을 위해 채식을 하는지 스스로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기로 태어나서>란 책에 나온 산란계들의 현실이 떠올랐다. 전자레인지만한 캐리어에 농구공만한 닭 5마리가 구겨져 살며 산 채로 썩어가는 그 장면이 계란말이와 겹치며 마음을 콕콕 찔렀다. 누군가 말처럼 "나 하나 안 먹는다고 세상 안 바뀐다"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좀 편할까? 그날 이후 습관처럼 냉장고에 채우던 계란을 더이상 사지 않았다. 

'채식을 언제까지 하나 보자'는 시선은 날 외롭게 했지만, 모른 척 지지해주는 사람들을 발견한 건 큰 기쁨이었다. 고지식한 사람이라 믿었던 아빠는 한 번도 내게 "왜 채식을 하냐?"라고 묻지 않았다. 대신 늘 가족 모임에서 먹던 '닭백숙' 대신 순두부 탕과 두릅, 고사리, 표고버섯을 올려주었다. 아빠가 직접 재배해 만든 음식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나를 사랑하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의 손길이 없었다면 나의 채식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나는 지난 8년 동안 한결같이 채식에 실패했다. 우유를 끊겠다며 두유를 사오는 길에 아이스크림을 사오기도 했다. 실패를 거듭한 뒤에야 나는 배운다. 내가 먹는 것이 무엇인지,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어릴 때부터 아무 생각 없이 즐겨마시던 우유는 암소가 평생 강제 임신과 출산을 반복한 고통의 결과로 내게 온 것이다. 그러니 매일 살피고 기억해야 한다. 내 입에 들어오는 작은 음식 하나가 얼마나 많은 희생과 착취로 이곳에 와 있는지를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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