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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수많은 직장인들이 꿈꾸는 퇴사! 새해 첫날 좌천 통보를 받고, 나락으로 떨어지던, 무기력한 40대 회사원이던 제가 딴짓을 하면서 퇴사 프로젝트를 가동하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과연 퇴사할 수 있을까요? - 기자 말

[이전기사] "정말 재밌어요"... 혹시 나, 글쓰기에 소질있나?

글을 써 보기로 했다. 이 행위로 뭔가를 이루겠다는 희망이나 포부 따위도 없었다. 그냥 회사 업무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도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10년 후쯤에 50대를 기념해 아내와 제주도 자전거 일주도 다시 하고, 자비출판이라도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자! 그런데 뭘 쓰지? 소설? 시? 에세이? 애초에 유시민 작가나 박경리 작가 같은 글을 뽑아낼 수 없다는 나 자신의 명확한 한계를 인지하고 나니, 선택지가 줄어들면서 가닥이 잡히기 시작했다. 나는 흔히 말하는 기계치에 성격도 급하고, '두부 멘탈'에 잘생긴 외모도 아니다. 그렇다고 학업성적이 뛰어난 수재도 아니지만, 한 가지 남보다 뛰어난 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아는 지식에 대해서 누구보다 쉽고 재미있게 상대에게 전달할 수 있는 재주는 확실히 있다.

자신의 수많은 단점을 극복하려 애쓰기보다는 한 가지의 장점을 살리는 게 훨씬 합리적이라고 나 자신을 다독였다. 문제는 평생을 오직 훌륭한 학생과 회사원이 되기 위해- 실패했지만- 살아왔기에 평균의 사람들보다 지식의 깊이가 조금 더 있는 건 영어뿐이었다. 하지만 누굴 가르칠 정도의 영어 실력은 아니었다.

 TV에서는 역사 다큐멘터리를 방영 중이었다. 그때 내 후두부를 강타하는 강력한 무언가가 떠올랐다. (사진은 드라마 <태조왕건> 화면 갈무리)
 TV에서는 역사 다큐멘터리를 방영 중이었다. 그때 내 후두부를 강타하는 강력한 무언가가 떠올랐다. (사진은 드라마 <태조왕건>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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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을 고민하고 있던 찰나, TV에서는 역사 다큐멘터리를 방영 중이었다. 왜 저렇게 어렵게 이야기를 풀어나가지? 그때 내 후두부를 강타하는 강력한 무언가가 떠올랐다.

'그래! 이거다!'

악마의 속삭임이 현실로 구체화되는 느낌이었다. 내가 아는 역사 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 써 보기로 마음먹었다.

자 이제 글의 주제를 정했으니 쓰면 된다. 하지만 내가 쓴 글이 어떤지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물론 비평이나 악플(악성댓글)이 겁나기는 했다. 그래서, 익명성이 보장되며 내 글을 객관적으로 봐 줄 사람들이 있는 곳을 떠올려보았다. 어렵지 않게 한 곳이 떠 올랐다.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1+1으로 밀려왔지만...

2007년에 한 재테크 카페에 가입했다. 그곳에서 경제나 재테크에 대한 정보도 많이 얻고 가끔 오프라인 모임도 참석했다. 일단 회원 수가 많으니 악플이라도 피드백이 오겠지라는 생각이었다.

첫 이야기는 두 명의 이모와 결혼할 수밖에 없었던 비운의 고려왕 인조 이야기였다. 내가 알던 역사적 사실에 오류가 있을지도 모르니, 자료들을 더 찾아 확인 작업을 거쳤다. 그리고 쉽고 재밌게 전달될 수 있도록 이야기 형식으로 글을 써 내려갔다.

형식파괴! 미사여구를 최대한 배제한 간결한 문장! 재미 최우선! 그렇지만 역사적 사실에 대한 검증을 반드시 거치자는 나름의 원칙을 세웠다. 어설프게 교훈이나 감동을 주려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아니, 그럴 여유도 능력도 부족했다.

 생각보다는 쉽게 글을 썼다고 생각했는데, 시계를 보니 3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생각보다는 쉽게 글을 썼다고 생각했는데, 시계를 보니 3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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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자료를 수집하고, 이야기의 구도를 구상한 뒤 드디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생각보다는 쉽게 글을 썼다고 생각했는데, 시계를 보니 3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회사에서는 1시간만 앉아서 문서 작업을 해도 오십견 때문에 책상에서 잠시라도 일어나야만 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3시간을 넘게 책상에 앉아 있었고, 기분 좋은 뻐근함만이 느껴졌다. 역시 육체를 지배하는 것은 정신이란 걸 다시 한번 느꼈다.

글을 몇 차례 다시 확인하고 난 후, 확인 버튼을 누르기까지 20분 이상의 시간이 또 흘렀다. 돈이 되는 일이 아니지만 내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처음 작성한 글이라고 생각하니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기분 좋은 설렘 따위 없었다.

확인 버튼을 눌렀다. 내 글이 잘 올라갔는지 확인하라는 메시지가 떴지만, 너무나 두려운 마음에 컴퓨터를 꺼 버리고 침대로 향했다.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어린아이처럼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1+1으로 밀려왔다. 성인이 된 후 기업의 이윤추구나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추기 위함이 아닌 오로지 나의 생각과 결심으로 한 첫 번째 일이었다. 나이 43살에 말이다. 이날은 좌천이 된 이후 처음으로 단잠을 잤다.

다음 날, 출근과 동시에 내가 올린 글을 확인해 보니 무려 4개의 댓글이 달려 있었다.

'서, 설마... 이런 글에 몰려들어서 굳이 4개나 되는 악플을 달진 않았겠지?'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악플이란 것을 달아 본 적도 없고, 댓글 자체를 달아 본 기억이 별로 없었으나, 요즘 워낙 인터넷 상에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자주 일어나다 보니 겁이 났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눈앞에 벌어졌다. 아! 세상에 내가 올린 역사 이야기가 무려, 심지어 재미있다는 거다. 어떤 분은 빨리 다음 이야기를 올려 달라고 하질 않나, 시리즈로 연재를 해 달라는 황공한 분의 댓글도 있었다.

세상에는 아직도, 아니 여전히 훌륭한 인격을 가지신 분들이 이렇게나 많이 우리와 함께 숨 쉬고 있구나 싶었다. 돈이 되는 일도 아니다. 내 글이 재미있다는 -얼굴도 모르는- 분들의 댓글에 신명이 났다고 하면 내가 너무나 감성적인가?

다시 찾은 자유의지, 그래 이거였어

남들이 뭐라 하든 다음 글쓰기를 이어 나갔다. 너무나 벅찬 감격의 순간이었지만, 아내에게조차 비밀로 하고 5편의 이야기를 더 이어 나갔다. 세상에서 태어나 나의 자유의지로 누구의 지시를 받지 않고 해낸 첫 번째 일이었다.

초인적인 힘이 솟아났다. 회사 일을 하지 않는 동안에는 글 소재 찾기와 이야기 구도 구상하기에 집중했다. 퇴근 후에도 피곤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밥을 먹고 컴퓨터로 달려가 – 집이 좁아서 달려갈 수는 없구나- 구상했던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아내는 나의 신경질과 짜증이 줄어드니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무슨 꿍꿍이지 하는 의아함을 동시에 품은 채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듯했다.

 그렇게 나만의 소수정예 댓글 부대가 생겼다. (사진은 MBC <무한도전> 화면 갈무리)
 그렇게 나만의 소수정예 댓글 부대가 생겼다. (사진은 MBC <무한도전> 화면 갈무리)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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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올릴 때마다 조회 수도 늘어나고 댓글도 조금씩 더 늘어났다. 어느새 눈에 익은 –댓글을 자주 달아 주시는- 아이디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분들이 다음 글을 기다리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으로 마음은 급해져 갔다. 그리고 마침내 아내에게 내 글을 보여 주기로 했다. 나는 짐짓 남의 글인 양 스마트폰을 아내에게 건넸고, 뜬금없이 밀려오는 갈증을 달래기 위해 물을 들이켰다.

나는 다른 일을 하는 척하면서 아내의 표정을 살피기 시작했다. 표정 변화 없이 글을 읽던 아내의 입꼬리가 보기 좋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여보! 다 읽었어. 재미있어. 역사를 이런 식으로 풀어 쓰는 것도 괜찮네. 필력도 좋고. 신선했어."

평소 장난기가 많은 그녀였지만, 진심으로 기뻐해주었다. 글이 재미있다는 댓글을 보고 그녀도 나만큼이나 놀랐다. 그녀의 반응이 신기해서 내친김에 친구에게 내 글을 모바일메신저로 보내주었다. 언제나 바쁜 그 녀석은 다음 날 저녁이 돼서야 답을 했다.

"이걸 진짜로 네가 썼다고? 죽마고우도 와이프도 모르는 재능을 43년 만에 찾아낼 수 있는 거야?"

이왕 이렇게 된 거 블로그를 만들어 봐야겠다. 어차피 쓴 글들을 모아둘 공간도 필요하고. 혹... 혹시라도 파워블로거까지는 아니어도, 한 달에 30만 원짜리 배너광고라도 받는 블로거가 된다면!

다음 날 회사 출근길,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나의 의식의 흐름과 무관하게 입술이 오물거리면서, 휘파람이 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얼굴도 모르지만 나의 부족한 글들을 좋아해 주는 독자들이 생겼다. 그들은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댓글을 달았겠지만, 나는 그 댓글을 통해 산삼보다 더 강력한 에너지를 받았다. 당장 돈이 안 되는 일이었지만 이상하게 신이 났다.

그렇게 나만의 소수정예 댓글 부대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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