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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은 두류산이라고도 하였으며 금강산(봉래산), 한라산(영주산)과 더불어 삼신산으로 불리어 방장산으로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신라시대에는 토함산, 계룡산, 태백산, 팔공산과 더불어 오악이라 하였는데, 그중 지리산은 남악이라 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백두산, 묘향산, 금강산, 삼각산과 더불어 지리산을 오악이라 하였습니다.

조선시대 궁궐 정전의 어좌 뒤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병풍인 일월오봉도는 해와 달, 그리고 오악이 그려져 있는데 다섯 개 봉우리 중 하나가 바로 지리산 노고단입니다.

일월오봉도 조선시대 궁궐 정전(正殿)의 어좌(御座) 뒤, 또는 야외 행사 때에는 천막 안의 옥좌 뒤에, 사후에는 빈전(殯殿)에, 진전(眞殿)에는 국왕의 초상화 뒤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병풍(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일월오봉도 조선시대 궁궐 정전(正殿)의 어좌(御座) 뒤, 또는 야외 행사 때에는 천막 안의 옥좌 뒤에, 사후에는 빈전(殯殿)에, 진전(眞殿)에는 국왕의 초상화 뒤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병풍(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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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과 더불어 살아온 구례 사람들은 지리산 노고단에서 하늘과 산에 제사를 올리고 국태민안과 시화연풍을 기원하였으며 신라시대부터 매년 나라에서 제관을 보내어 중사의 제례를 받들어오다가 조선시대 세조 2년부터 노고단 남쪽 광의면 온당리에 단을 세우고 제례를 올렸습니다.

남악사터 1908년 폐사되기 전까지 제례를 올렸던 곳
▲ 남악사터 1908년 폐사되기 전까지 제례를 올렸던 곳
ⓒ 임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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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한말 외세에 의해 우리 고유의 풍속이 쇠퇴했고, 1908년에 폐사되어 현재는 터만 남아 있습니다.

광복 후 화엄사 일주문 앞에서 제사를 올렸으며 1969년 현재의 터에 남악사를 건립하고 매년 곡우절을 맞이하여 지리산 일대의 영약으로 이름난 '거자약수' 봉제하면서 '약수제'라 칭하게 되었습니다.

구례 남악사 해마다 곡우절에 남악제례를 올리는 곳
▲ 구례 남악사 해마다 곡우절에 남악제례를 올리는 곳
ⓒ 임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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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남악사 구례 사람들이 1969년 건립한 남악사
▲ 구례 남악사 구례 사람들이 1969년 건립한 남악사
ⓒ 임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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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라의 태평과 국민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의 제례 행사가 약수 판매를 위한 행사로 변질됨에 따라 본래의 의미를 되살리기 위해 2000년부터 '지리산 남악제'라 개칭하고 남악제의 참뜻을 계승하게 되었습니다.

남악제례 지리산 남악제 남악제례
▲ 남악제례 지리산 남악제 남악제례
ⓒ 임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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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곡우절이 되면 지리산 남악제를 열어 지리산 산신에게 나라의 태평과 국민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남악제례를 올리는 구례 사람들의 순수하고 소박한 마음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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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를 읽어주는 윤서아빠 임세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