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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춤사위에 박수치는 최기호 할아버지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둘째 날인 21일 오후 고성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남측 최기호(83) 할아버지가 북측 조카 최광옥(53)씨의 춤사위에 박수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유성호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 이틀째인 21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단체 상봉 행사에서 남측 백민준(93) 할아버지와 북측 며느리 리복덕(63), 손녀 백향심(35) 씨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금강산 공동취재단 신나리 기자]

곳곳에서 "기약이 없다", "헤어질 것을 생각하니 안 됐다"라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21일 개별상봉과 개별 중식이 끝나고 금강산호텔 2층 연회장에서 오후에 3시에 시작된 단체상봉이 5시에 마무리됐다.

2박 3일, 예정된 여섯 차례의 만남 중 다섯 번째 만남이 끝난 것. 이제 남북 이산가족들이 만날 수 있는 건 다음 날인 22일 작별상봉뿐이다.

모여앉아 도란도란

알아볼 수 있을까, 기억할 수 있을까, 내 가족이 맞을까. 전날(20일) 긴장했던 남북 이산가족들은 서로를 익숙하게 대했다. 앞선 상봉이 살아서 만나 반갑고 긴 세월을 못 만난 서러움으로 눈물이 흘렀다면, 개별상봉 후에 이어진 단체상봉에서는 미소로 서로를 맞이했다.

북측은 남북한 가족들과 취재진에게 흰색 봉투를 쥐여줬다. 사탕, 강정, 배단물, 금강산 샘플과 캔커피 등 다과가 있었다.

남북 이산가족들의 친밀함은 앉은 자리에서도 티가 났다. 전날까지 마주하고 앉았던 남북 가족들은 이날은 서로의 곁을 내줬다. 대부분의 남북 가족들이 서로서로 뒤섞여 앉은 채 이야기를 이어갔다.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둘째 날인 21일 오후 고성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단체상봉에 남측 황우석(89) 할아버지가 북측 딸 황영숙(71,왼쪽) 할머니와 함께 건배를 하고 있다. ⓒ 유성호
황우석(89) 할아버지의 남북 가족은 원형 테이블의 3분의 1에 붙어 앉았다. 서로의 물컵을 채우고 커피를 따라주며 건배를 하기도 했다.

다른 테이블의 분위기도 별다르지 않았다. 아버지의 뒤통수에 있던 혹을 기억해내는 남측 할아버지가 친근했고, 인민군에 끌려갔던 형의 생년월일을 제대로 기억해낸 북측 조카를 기특해했다.

"업고 다니던 동생"

자리에 먼저 도착해 여운(90) 할아버지를 기다리던 동생(여양숙·75)은 오빠의 모습이 보이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오빠, 어서 오셔서 앉으셔야죠" 하며 오빠의 손을 잡고 자리로 안내했다. 전날과는 다르게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신재천 할아버지는 북측 동생에게 "그래도 여기 올라와서 너를 보니 마음이 한결 편해"라고 털어놨다. 기자에게는 "내가 얘를 만나 친척들이 어디서 살고 이런 걸 알게 됐다"라며 "내가 업고 다니던 동생"이라고 소개했다.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 이틀째인 21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단체 상봉 행사에서 남측 누나 김혜자(75)씨와 북측 동생 김은하(75)씨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누나는 서울에서 동생의 이름을 크게 부르겠다고 약속했다. 북측 동생은 자신이 대답하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김혜자(75) 할머니가 "내가 서울에서 은하야 하고 부를게" 말하자 할머니의 동생은 "그럼 제가 네, 할게요"라고 말했다.

누나는 떨어져 있던 시간 못했던 사랑 고백을 끊임없이 하고 싶었는지 북측 동생의 귀에 "사랑해"라고 여러 번 속삭였다. 동생은 누나의 고백이 쑥스러우면서도 싫지는 않은 듯 웃었다.

할머니가 "넌 사랑한다는 말 안 하냐"라며 장난에 진심을 녹이자 동생은 "누님을 존경해요. 누님이 날 사랑해주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라고 마음을 전했다. 할머니는 "너무 좋다. 꿈 같다"라며 연신 "같이 있고 싶어. 안 보내고 싶다"라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노래도 흘러나왔다. 한 테이블의 남북 이산가족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자 다른 테이블에서 <고향의 봄>을 이어 불렀다. 북측 한 가족이 <심장에 남는 사람>이라는 북측 노래를 부르자 "같이 할 수 있는 노래를 부르자"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내 고향 언덕 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눈물 흘리며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 잊을 동무여'

자신의 마음이 담긴 노랫말 때문인지 <찔레꽃>을 부르던 이가 눈물을 내비쳤다.

고요해진 상봉장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둘째 날인 21일 오후 고성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단체상봉에 남측 조혜도(86) 할머니가 븍측 언니 조순도(89) 할머니 가족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유성호
"내가 버리고 나와서 항상 죄책감에 가슴이 아파. 내가 형으로서 동생을 버리고 나만 살겠다고 나와 미안해."

차세근(84) 할아버지는 모든 게 미안했다. 할아버지는 북측 동생을 만나 미안함을 전했다. 전쟁통에 택한 피난을 내내 미안해했다. 잠깐이면 될 줄 알았던 이별이 길어진 것을 모두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형의 무릎을 북측 동생이 가만히 어루만졌다.

북측의 언니와 동생을 만난 배순희(82) 할머니는 가는 시간을 부여잡고 싶어했다. 할머니는 "70년 만에 만났으니 못다한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다"라며 "어제, 오늘 한 얘기도 또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기약 없는 만남을 얼마나 더 보내야 다시 볼 수 있을까. 할머니는 아쉬움을 숨기지 못했다.

"집체(단체) 상봉 종료합니다."

오후 5시, 이날의 일정이 끝났다는 방송이 나오자 연회장이 고요해졌다. 좀 전까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이들이 조용히 손수건을 꺼내 눈을 닦았다. 북측 가족들은 자리에 앉아 남측 가족들이 연회장을 떠나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15분 후 남측 가족들이 모두 나가자 어렵사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들의 마음을 아는지 남북 이산가족의 작별상봉 시간이 한 시간여 더해졌다. 22일 마지막 상봉, 오전 11시에 작별상봉을 시작해 12시에 공동중식을 하고 오후 1시에 마무리하려고 했던 일정 시간이 앞당겨졌다. 남북 이산가족들은 오전 10시에 만난다. 두 시간이었던 만남이 세 시간으로 늘어난 것. 이는 남측의 제안을 북측이 받아들여 변경됐다.
태그:#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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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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