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회고전 주인공 이장호 감독

23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회고전 주인공 이장호 감독 ⓒ 부산영화제


이장호 감독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회고전의 주인공으로 선정됐다. 부산영화제는 <별들의 고향> <어둠의 자식들> <바보 선언> 등 8펀의 작품을 상영한다고 21일 밝혔다. 부산영화제는 지난 1월 이용관 이사장과 전양준 집행위원장이 복귀한 후 프로그래머들과 논의를 거쳐 이장호 감독의 회고전을 준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영화제 한국영화회고전은 국내 주요 원로감독들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박근혜 정권 시절 블랙리스트 등으로 표현의 자유가 억압당하고 이용관 이사장이 강제로 쫓겨나는 등 수년 간 정치적 탄압이 이어졌던 것을 감안하면 이번 회고전의 주인공으로 이장호 감독이 선정된 것은 더욱 특별해 보인다.

박정희의 유신독재가 이어지던 1974년 <별들의 고향>으로 데뷔한 이장호 감독은 1970, 80년대를 대표하는 사회파 감독으로 꼽혀왔다. 사회변혁을 위한 도구로서 영화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던 한국의 영화운동사에서 그 이전부터 길을 닦아온 감독이기도 했다. 1988년 결성된 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에서는 영화인으로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1980년대 한국영화사의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사람으로 한국영상자료원이 2013년에 펴낸 '한국영화 100선'에 <별들의 고향>, <바람불어 좋은날>, <바보선언>,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등 4편이 선정됐다. 그만큼 이장호 감독의 영화적 성취가 뛰어남을 방증한다.

1980년대 사회 비판 리얼리즘 작가

 이장호 감독의 데뷔작 <별들의 고향>

이장호 감독의 데뷔작 <별들의 고향> ⓒ 부산영화제


이번 회고전에는 그의 대표작들이 모두 망라됐다. 이장호 감독의 데뷔작인 <별들의 고향>은 당시 서울 관객 기준 46만 명을 동원해 흥행감독으로 우뚝 서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첫사랑에게 버림받고 의처증이 있는 남자의 후처로 살다 헤어진 뒤 결국 술집 여자로 전락한 경아(안인숙)의 이야기는 당대 관객을 울렸다. 이장희의 노래를 비롯해 1970년대 청년문화의 새로운 흐름이 반영된 작품으로 평가된다.

1980년 개봉작인 <바람 불어 좋은 날>은 1970년대 강남 개발이 시작된 뒤의 서울을 그리고 있는 작품으로 한 시대의 전체상을 보여주는 영화다.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온 가난한 세 청년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면서 각기 다른 사연을 지닌 다양한 남녀노소가 등장하는데, 이장호 감독에게 '사회 비판적 리얼리즘 작가'라는 인식을 심어준 결정적 작품으로 꼽힌다.

1981년에 만든 <어둠의 자식들>은 이철용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다. 몸을 파는 여자로 전락하는 한 여인의 삶을 다룬다는 점에서 <별들의 고향>과 일맥상통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삶 속에서 겪는 온갖 시련을 담아냈다.

1983년 작 <과부춤>은 <어둠의 자식들>과 함께 이철용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로, 이런저런 이유로 남편과 결별하여 살아가는 과부들의 삶을 통해 사회에 대한 비판을 시도한다.

'바보선언'은 독재시대가 낳은 작품

 이장호 감독의 영화 <바보선언>

이장호 감독의 영화 <바보선언> ⓒ 부산영화제


1983년 개봉한 <바보선언>은 전통적 리얼리즘 스타일의 영화로 두각을 나타냈던 이장호 감독이 혁신적 영화기법을 동원해 후대에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다. 어린이의 목소리로 반어적 내레이션을 시도하고 무성영화와 같은 저속 촬영과 풍자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한 중견 제작자는 "5월 광주항쟁이 일어난 후 폭압의 시대가 이어졌던 1980년대에 <바보선언> 같은 영화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고 평가했다. 상당히 풍자적이고 은유적인 영화로도 보이지만, 내용 깊숙이 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어 그 시대 분위기에서는 상당히 노골적으로 보이는 부분도 있었을 정도로 대단한 영화였다"고 덧붙였다.

이장호 감독 역시도 "나는 <바보선언>을 내가 만든 작품이라고 하지 않는다. 독재 시대가 낳은 작품이다. <바보선언>을 시작할 때 나는 철저히 영화를 포기하고 그것도 아니면 영화판을 떠나겠다"고 말했을 만큼 맹렬한 태도가 돋보이는 영화다. <바보선언>에는 노무현 정부 시절 문화관광부 장관을 역임한 김명곤 배우가 출연했다.

1984년 개봉한 <어우동>은 <무릎과 무릎사이>와 더불어 이장호 감독의 에로티시즘 영화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고, 1987년 작품인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는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강한 작품으로 이제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이장호 감독의 후기 걸작으로 손꼽힌다. 당시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2013년 작품인 <시선>은 데뷔 40년을 맞던 해 만든 감독의 20번째 작품으로 인간의 본성과 종교적 신념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선교단체가 이슬람 무장단체에 피랍되는 이야기라 2007년 아프카니스탄에서 탈레반에 피랍된 샘물교회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보기도 하지만 개봉 당시 감독은 "그렇지 않다"며 "소설 '침묵'의 마지막 장면에서 영감을 받은 영화"라고 밝혔다.

부산영화제 측은 올해 회고전에 대해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이장호 감독의 영화들은 오늘날의 영화인과 관객 모두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안겨줄 것이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장호 감독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초창기 집행위원장을 지냈고 현재 서울영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장호 부산영화제 회고전 별들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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