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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강남의 어느 교회에 다닌 걸 자랑으로 얘기 한 시절이 있었다. 그 교회가 착실히 성장할 땐 뿌듯한 자부심도 느꼈다. 내가 태어나던 해 서울의 어느 달동네에서 시작한 교회였다. 70년대 중반에 하나님의 은혜(?) 혹은 선견지명이 있었던 창립자들의 주도로 한강을 건너 허허벌판이던 강남으로 이전했다.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목이 좋았던 때문인지 목사 등 교회 구성원의 능력 때문인지 교회는 계속 성장했다. 주변의 작은 아파트들은 재개발에 성공해 고급 아파트 단지가 되었고, 지금은 성공한 교회의 전형적인 모습인 크고 아름다운 건물과 연예인들이 출석하는 대형교회로 성장했다.

그렇게 되기까지의 모습에 부끄러워 떠난 사람들이 많다. 나처럼. 비단 그 교회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2017년 '사단법인 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서 '종교 신뢰도 조사'를 한 결과를 밝혔는데, 개신교가 5점 만점에 2.55점으로 꼴찌를 했다. 해당 사이트 자료에 의하면 지난 10여 년 동안 꼴찌를 점하고 있다.

분석 결과를 더 들여다보면 '한국 사회'가 '한국 개신교'를 바라보는 시각을 느낄 수 있다. "교회 밖 세상과 잘 소통한다"라는 항목에 56.9%가 '그렇지 않다'라고, "사회통합에 기여 한다"라는 항목에 62.1%가 '그렇지 않다'라고, "현 시국에서의 역할 잘한다"라는 항목에 72.4%가 '그렇지 않다'라고 답했다.

 <권력과 교회> 책 표지
 <권력과 교회> 책 표지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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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표본이지만 많은 사람이 개신교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 한다는 걸 유추할 수 있다. 심지어 설문 참여자에는 개신교인이 다수 있었고 이들도 낮은 점수를 줬다는 분석이 눈에 띄었다. 외부의 손가락질 못지않은 내부의 비판이 있는 것이다.

이런 결과에 주목하여 개신교계 다양한 인물들의 대담을 토대로 정리한 <권력과 교회>를 읽었다. 제도권 신학 바깥에서 신학을 연구하는 김진호가 다양한 시각의 전문가들과 대담을 하여 이슈별로 정리했다. 이 책에서 주목한 주제는 네 가지다.

기독교와 보수

첫 번째로 "개신교의 권력화 메커니즘이 보수주의와 연계"되어 있다는 걸 밝히며 개신교는 "권력의 장치로써 보수주의를 재생산하며" 이러한 보수주의가 다시 "권력의 메커니즘으로 개신교를 작동"하는 현상을 분석한다.

이 부분은 미국의 신학대학에서 신학과 다양한 이슈를 접목해 연구하는 강남순 교수가 권력과 젠더의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교회 내에서 남자가 하는 일과 여자가 하는 일이 정해져 있는 걸 예로 들며 사랑과 평등을 전하는 개신교가 사실은 차별을 실천하는 아이러니를 비판한다. 이런 차별이 '증오'를 낳는 현상도 분석하고 이런 활동이 '보수' 진영의 논리에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설명한다.

이러한 '개신교'와 '보수'의 협업은 오늘날 갑자기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해방 후와 전쟁을 거치며, 군사 독재와 개발 독재 시대를 거치며 개신교가 권력에 어떻게 면죄부를 주었는지, 권력은 어떻게 개신교에 이익을 보장해 주었는지 담담하게 나열한다. 서로의 존재와 이해를 위해 서로를 위해 복무한 역사적 사실을.

대형교회, 그들만의 세상

 더 넓고 큰 첨단 시스템의 교회로. 당연히 사람들이 더 모이고, 돈도 더 모이고. 특히 유력자, 권력을 가진 자가 있는 교회로 사람들이 더 모였다고 책은 설명한다.
 더 넓고 큰 첨단 시스템의 교회로. 당연히 사람들이 더 모이고, 돈도 더 모이고. 특히 유력자, 권력을 가진 자가 있는 교회로 사람들이 더 모였다고 책은 설명한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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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박노자가 외부자의 관점에서 이러한 "개신교 권력의 장치는 대형교회와 불가분 연계되어 있다는 점"을 얘기하며 "대형교회가 없었다면 개신교는 권력의 장치가 될 수 없었을 것"이며 "개신교의 권력화는 대형교회를 탄생시키는 가장 중요했던 요소"라는 걸 밝힌다.

이 책에서 다루는 "대형교회는 90년대 중반 이후 강남과 분당을 중심으로 나타난 교회로 급격한 성장을 이룬 교회"를 의미한다. 이들 교회 성장의 특이사항은 개신교를 새로 믿게 된 사람들이 유입된 것이 아니다. 다른 교회에서 "수평 이동"을 한 교인을 의미한다.

여러 통계에 의하면 90년대 이후 한국 개신교의 성장은 멈췄거나 후퇴했다. 교회는 늘었지만. 늘어가는 교회가 주목한 건 기존 교회에 만족하지 못하는 교인들이다. 수준 높은 설교를 듣고 싶어서, 유명한 사람들이 등록한 곳에 가고 싶어서, 비슷한 계층들이 모인 곳에 가고 싶어서 등. 이들은 자기들의 취향에 따라 소문나는 교회로 몰렸다고 한다.

"저신뢰 연줄형 사회"가 되어 버린 한국에서 "특정 교회에 다니는 게 '신분'이 되고 '인맥'의 중요한 데이터베이스"가 된 것이다. 사람들이 모인다는 건 '돈'이 모인다는 거. '잉여 재정'으로 건축을 하게 된다. 더 넓고 큰 첨단 시스템의 교회로. 당연히 사람들이 더 모이고, 돈도 더 모이고. 특히 유력자, 권력을 가진 자가 있는 교회로 사람들이 더 모였다고 책은 설명한다.

과거 보수 정권의 유력자를 배출한 교회가 어디라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고 그 교회와 인맥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많이 알려진 일이다. 최근에는 대형교회 이슈가 뉴스를 장식하기도 한다. '세습' 아니면 '돈' 문제로 시끄러운 교회들. "세습한다는 건 지킬 게 많다는 것이다. "지킬 게 많으니 감추는 것도 많고." 그래서 많은 부분이 "담임목사와 일부 엘리트 평신도에게 권력"이 쏠린다고 한다.

이런 구조의 역학관계는 '보수' 성향과 맞아 떨어져 서로의 이해관계를 위해 복무했다고 한다. "보수는 교회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를 보호해주고 교회는 보수를 지켜주는 면죄부를 제공"하는 현상을 설명한다.

예수천국 불신지옥

세 번째로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한국 근대사의 맥락에서 개신교의 역사적 의미를 얘기한다. 위에서 언급한 "개신교의 권력화는 주로 지적, 사회적 자원을 과점한 이들의 현상"이지만 한편으로 개신교는 "권력에서 소외된 이들의 반지성주의적 신앙을 동원해 정치화"한 현상을 분석한다.

해방 후에는 북한 지역에서 내려온 사람들과 이들이 세운 교회들이 한국 사회에 영향을 끼쳤다. 이들은 일본이 두고 간 종교시설을 불하받아 성장의 기반을 닦았다. 미군정과 정권이 원한 모종의 일을 한 대가라며 해방 후와 전쟁을 거치며 이들이 한 일들을 담담히 나열한다. 이들은 투철한 '반공주의자'였다. 오늘날 "개신교의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증오는 이때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다.

안정된 교회 재산을 기반으로 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몰렸다. 게다가 미국 근본주의 신학을 받아들였다고 주장하는 이런 교회들에 미국의 지원이 몰렸다. 국가가 못하는 '복지'의 역할을 하니 인재들도 몰렸다. 이들이 미국을 좋아하는 각계각층의 인물이 된 건 자명한 일.

국가주도 개발이 이뤄지고 도시화가 진행될 때 세속적 욕망, '물질'의 축복을 빌어주는 교회로 교인들이 몰렸다. 고향을 떠나 도시로 밀려난 사람들이 모이고 고향 못지않은 공동체가 되었다. 이들에게 "교회는 어려운 현실을 잊게 하는 곳이었고 교회는 이들에게 열심히 일하는 게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선포"했다. 이는 "개발 독재의 맨 아래에 있는 노동자들을 다독이는 이념으로 작동"했다고 설명한다.

이때 '신비주의 교회'도 생겼다. 무속적 성향이 가미된. 사회는 이성적으로 변해갔지만 "맹목적 믿음에 갇힌" 사람들이 생겼다고 설명한다. 이런 교회는 머잖아 쇠퇴했지만, 일부는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거리의 전도자로 변신했다고. 책에서는 이들의 상당수가 "태극기 집회에 참여"했다고 분석했다. 관찰과 인터뷰로 밝힌 사례다.

책을 읽으니 이들이 '성조기'와 '이스라엘' 깃발을 들고 나온 게 이해됐다. 그들에게 '미국은 구원자'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축복한 땅'이니까. 이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곳이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으로 나온 것이고. '보수'는 이들과 이해가 맞아떨어져 정치 세력화하여 이용한다고 분석했다.

신뢰회복을 위하여

마지막으로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응교는 개신교 내부 시각에서 개신교를 비판하며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 사실 신뢰회복을 위한 처방은 굳이 책에서 설명하지 않더라며 자명하다. "귀와 눈을 교회 밖으로" 돌려야 하고 "철저한 반성"과 "실천"이 따라야 한다는 것. 책에서 언급한 "작은 교회 운동"과 같은 방법론도 있다.

그러나 교회가 작다면 문제가 없을까? 몇 번의 토론과 몇 권의 책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다. 어두웠던 시절에 빛이 되는 걸 두려워 한, 핍박받는 자의 아픔에 귀를 닫은, 권력의 부름에 무릎 꿇은 교회를 비판하기에 앞서 그 자리에 나도 있었다는 걸 부끄러워하고 회개하게 한 책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강대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오피니언뉴스에도 게재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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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영화, 에니메이션 등 콘텐츠 회사와 투자회사에서 프로젝트 기획과 프로젝트 펀딩을 담당했다. 오피니언 뉴스에 북에세이와 문화 컬럼을 게재하고 있으며 전문 문예지에도 글을 싣고 있다.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을 연재하며,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