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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들 알다시피, 습관으로 정착된 행동의 내용과 방향 그리고 그 방식은 고치기 힘들다. 왜 그럴까? 이 물음에 답하기 전에, 우리는 습관을 왜 어떻게 형성하게 되는가? 하는 물음에 먼저 답했으면 한다.

2.
습관은 생명 활동을 원활하게 하는 데 필요한 기초다. 모든 생물체들은 환경에 잘 적응해야만 살아남는다. 환경은 시시때때로 매번 다르게 주어진다. 그런데 개별 생명체는 늘 다르게 주어지는 환경의 내용에 일일이 특별하게 대응할 수도 없고 대응할 필요도 없다. 생명체는 지금 당장 주어진 환경에 '전형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자신의 생명을 유지한다.

이때 '전형'(典型)은 흔히 '패턴'이라 부르는 것인데, 생물체와 환경 간의 오래된 접촉에 의해 형성된다. 생물체의 행동을 결정하는 데 작동하는 전형은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장구한 진화의 과정을 통해 유전되는 종적(種的)인 전형이고, 다른 하나는 개체로서의 생물체가 자신의 삶을 살면서 변이를 이루어 형성하는 개별적인 전형이다. 후자는 전자의 바탕 위에서 형성될 뿐만 아니라, 달리 보면 전자를 활용해서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종의 생물체들 간에 각기 나름의 다른 행동 방식이 전형적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이러한 행동 방식의 전형은 각 생물체의 행동을 통해 표현된다. 그런데 행동을 통한 표현의 바탕에는 각 생물체의 일반화된 유기적인 구조 ― 행동의 표현이 그때마다 특수한데 비해 일반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 가 있어 그 힘을 발휘한다. 말하자면, 각 생물체의 유기적인 구조가 어떤가에 따라 그 생물체의 행동을 통한 표현이 달라지는데, 양쪽을 매개하는 것이 전형인 것이다.

생명체는 구조-전형-표현이 마치 삼발의 솥처럼 작동하면서 전체적으로 하나의 체계를 이룬다. 이에 생명체를 '전형에 따른 구조의 체계'라 부를 수도 있고, '전형에 따른 표현의 체계'라 부를 수도 있다. 이러한 이중적 형태의 체계인 생명체는 자신이 한 순간도 빠뜨리지 않고 그 속에 살면서 접속하는 환경을 그 나름으로 구성하는 힘을 발휘한다. 말하자면, 관찰자인 우리 인간이 보기에는 각 생물체들에게 주어지는 환경이 동일한 것 같지만, 각 생물체 자신에게 주어지는 환경은 자신의 체계에 따라 이미 달리 구성된 환경인 것이다. 각 생물체에게 있어서 체계-환경의 쌍은 이원적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연동되어 구성함과 구성됨을 주고받는 또 다른 상위의 체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각 생물체에게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다른 생물체들이 자신의 환경을 구성하는 요인이 된다는 사실이다. 각 생물체들은 다른 생물체들을 자신의 환경으로 구성하되, 기존에 자신이 형성한 환경에 원만하게 편입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호 환경 구성이 생물체들 간에 원만하게 이루어지면 공존이 잘 이루어지고, 그렇지 못하면 생물체들 간의 적대적 관계로 인해 체계가 심하게 위협을 받거나 심지어 붕괴되기도 한다.

3.
인간 역시 각자가 나름의 생명적인 체계를 이루고 있어 구조-전형-표현의 활동을 계속해서 해 나간다. 인간 생명은 자신의 환경 구성적 체계적인 위력을 그 어떤 다른 종들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발휘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그 결과, 급기야 기묘한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었는데, 그것은 제 자신마저 특이한 방식으로 환경으로 삼게 되었다는 점이다. 자신의 생명 활동을 제 스스로 뒤돌아보아 자신의 생명 활동 자체를 또 다시 새로운 생명 활동을 해 나가는 데 필요한 환경으로 구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소 어렵게 말하면, 인간 생명은 '재귀적인 환경 구성적 활동'을 발휘하는 데서 그 특유성을 갖는다.

이러한 재귀적인 환경 구성적 활동 덕분에 자신이 지닌 생명의 힘을 발휘해서 환경에 대한 행동으로 표현할 때, 인간은 그 표현에 자신의 생명활동과 그 결과에 대한 앎을 담아낼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생명의 힘을 발휘해서 행동으로 표현할 때, 그 표현에 자신의 생명에 대한 앎을 담아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앎은 인간 특유의 앎으로써 여느 다른 일반적인 생물체들이 갖는 앎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일반 생물체들의 앎은 자신의 생명 체계 속에 닫혀버린 앎이고 그래서 사실 연계에 포섭된 앎이지만, 인간 고유의 앎은 자신의 생명 체계로부터 열려 있는 앎 ― 물론 이 열림의 정도는 인간 생명 체계 내에서 볼 때 실제로는 상대적으로 더 많이 또는 더 적게 실현될 것이다. ― 이고 사실 연계를 넘어선 의미 상황에서의 앎이다.    

자신의 생명 체계로부터 열려 있는 이 같은 앎을 통해 인간만의 활동인 의미 생산이 발생한다. 따라서 인간이 생산하는 의미는 또 다른 차원에서 그 나름의 구조적인 체계를 형성하되, 자신의 체계 속에 닫혀있지 않고 계속해서 새롭게 열려나가는 구조적인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그렇게 생산된 의미들을 인간 생명의 체계는 또 다시 자신의 환경으로 재구성하여 편입시킨다. 

의미 생산의 과정과 그 결과들의 응축 및 환경 구성에의 재활용 등의 전반적인 과정을 일컬어 역사라 할 것이다. 그래서 인간만이 역사를 지닌 것이다. 재귀적 생명 활동을 통해 제 스스로를 새롭게 재구성해 나가는 힘을 발휘하되, 그 자기 재구성의 과정을 통해 생산되는 의미를 자신 바깥으로 표현해 냄으로써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들이 그 의미를 각자의 환경으로 재구성해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역사적 인간'인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인간 역사에서 무슨 필연적인 법칙이 존립한다거나 그 법칙을 찾아낸다거나 그 법칙을 모두에게 적용하려 한다거나 하는 일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역사적 인간이란 처음부터 역동적으로 열려있는 존재이고, 그 역사적 인간의 삶을 통해 형성될 뿐만 아니라 그런 역사적 삶의 환경으로 주어지는 역사 역시 역동적으로 열려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 인간을 가장 적실하게 드러내는 것이 바로 언어다. 인간의 언어활동은 반드시 의미의 열린 구조적 체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언어는 언어가 아니다.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그 언어가 지시하는 의미로서의 환경을 서로 주고받음으로써 삶을 유지한다는 것을 뜻한다.

4. 
이제 습관으로 되돌아오자. 생물체 일반에 있어서 습관은 행동의 습관이다. 행동은 환경 속에서 환경을 향해 이루어지는 구조적으로 작동하는 전형에 의거한 표현이다. 거꾸로 보면, 행동의 표현을 일정한 전형에 따라 해 나가는 것이 습관이다. 그래서 습관은 생명 활동을 원활하게 해 나가는 데 필수적이다.

이처럼 애초 생명체들이 자신의 생명 활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형성, 발휘하는 습관은 이제 인간의 단계에 이르러 그 내용이 바뀐다. 인간은 생명체로서 기본적으로 형성, 발휘하는 습관뿐만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역사성에 의거해서 의미를 형성, 발휘하는 습관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습관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 습관을 통해 자신의 생명활동이 원활하게 유지되면서 발휘되고 또 강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 고유의 역사성에 의거한 의미 영역에서 구조적으로 형성되는 습관 역시 마찬가지다. 개개 인간들은 이 의미 영역에서의 습관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존재가 더 원활하게 유지되면서 발휘되고 또 강화될 수도 있다고 여긴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여느 생물체들과 달리 의미를 생산해 내어 그것을 자신의 환경으로 삼는 인간 생명의 구조적 체계는 닫혀 있는 것이 아니라 열려 있다. 이러한 인간 생명의 특이한 열림은 그 생명의 환경 역시 열려 있어 여느 생물체들의 환경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그 융통성과 가변성이 크다는 것을 일러준다. 아울러 가변성이 큰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려면 기존의 생명 활동의 습관을 필요에 따라 바꾸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일러준다.   

5.
길게는 70년, 짧게는 30년 묵은 적대관계를 청산하려는 모처럼 이루어진 비핵화와 평화를 향한 역사적 기운을 일구어낸 북미 관계가 최근 들어 답보 상태를 보이는 모습이다. 서로를 믿을 수 없다는 식으로, 미국에서는 '비핵화의 목록과 프로그램'을 먼저 내놓으라고 하고, 북한에서는 '종전선언을 통한 체제안정의 기초'를 먼저 보장하라는 주장으로 맞서는 형국이다.

이러한 상호 불신의 바탕에는 그동안 형성되어 온 역사적인 습관들과 그에 따른 투쟁이 작동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환경이 변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데도, 그동안의 환경에서 형성되어 오랫동안 생존에 유리하다고 여겨온 습관이 새로운 환경에 반기를 들고 있는 것이다. 함부로 습관을 바꾸면 생명활동에 지장을 가져올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렇지만, 환경이 크게 바뀌어 기존의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습관을 형성해야 한다고 판단되면, 기존의 습관에서 이탈하여 새로운 습관의 길을 과감하게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모든 생명체들과 인간생명 공동체들은 파멸할 수밖에 없었다.

인류 문명을 일구어온 북반구 온대에서 폭염이 지속되면서 지구 온난화의 거센 파고가 지구적 삶 전체를 위협하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공존의 환경 형성을 향한 인간 생명체의 체계적인 구조의 혁신이 요구된다. 겨우 이백여 년에 걸친 생산력 중심의 기술 산업주의의 삶과 그를 둘러싼 제국주의적 지배 중심의 경쟁이 이처럼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을 초래한 것이다. 제국주의적인 헤게모니를 통해 역사적 의미의 삶을 구축하고 영위하고자 하는 세력의 그 무서운 습관은 언제쯤 역사의 무대에서 영구히 사라질 것인가? 대대적인 습관의 개변이 요구되는 데도 기존의 삶을 유지해 온 습관의 역습은 강고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 역습을 철저히 경계하면서 용기 있게 극복할 수 있는 정치 외교적 실천의 지혜를 짜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글은 인권연대 <수요산책>에도 게재되었습니다. 글을 쓴 조광제 님은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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