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호스틸> 포스터

영화 <호스틸> 포스터 ⓒ 영화사 마농(주)


가까운 미래,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들로 인해 세상은 황무지로 변했다. 종말에서 살아남은 소수 무리에 속한 줄리엣(브리터니 애쉬워스 분)은 괴물을 피해 식료품과 연료를 찾던 와중에 자동차가 전복되는 사고를 당한다. 의식이 돌아온 줄리엣은 다리가 부러져서 옴짝달싹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다. 설상가상으로 괴물이 그녀의 차를 덮치기 시작한다.

<호스틸>의 메가폰을 잡은 메튜 터리 감독은 영화계에서 잔뼈가 굵다. 2009년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조감독으로 입문한 이래 <지.아이.조-전쟁의 서막> <히어 애프터> <셜록 홈즈: 그림자 게임> <레드: 더 레전드> <개그쟁이 스머프 2> <더 체이스> <쓰리 데이즈 투 킬> <매직 인 더 문라이트> <루시> <바스티유 데이> <트레이터> 등 작품에서 조감독으로 경력을 쌓았다.

장편을 위한 준비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2010년 연출한 단편 영화 <선즈 오브 카오스>는 시체스영화제 단편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고 2013년 발표한 단편 영화 <브로큰>은 인디페스트 어워드에서 최우수 단편 영화상을 받으며 신예 감독으로 눈도장을 찍었다. 메튜 터리 감독의 장편 데뷔작 <호스틸>은 포스트 아포칼립스(종말물)를 배경으로 전복된 차 안에 홀로 갇힌 한 여성이 괴물과 맞서는 내용을 담았다.

종말인 현재와 과거 교차하는 편집

<호스틸>의 배경, 괴물, 설정에는 새로운 구석이 없다. 더는 인간이 살아갈 수 없게 된 풍경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를 연상케 한다. 종말 이후 생존하고자 몸부림치는 인간은 <더 로드>와 <스테이크 랜드>에서 목격한 바 있다. 제한된 공간에서 괴물과 맞서는 전개는 <디센트>의 영향을 받았다. 그렇다면 <호스틸>이 보여주는 새로움은 무엇일까? 바로 '교차 편집'과 장르의 융합'에 있다.

 영화 <호스틸>의 한 장면

영화 <호스틸>의 한 장면 ⓒ 영화사 마농(주)


<호스틸>은 뉴욕에서 화학 테러 공격이 일어났다는 사실 외에 아무런 설명을 하질 않는다. 인간을 먹는 돌연변이 괴물이 왜 태어났을까? 이들이 어떻게 세상을 공격했을까? 시간은 얼마나 흘렀을까? 알 수 없다. 영화는 그런 설명이 중요하지 않다는 태도를 취한다.

<호스틸>은 차 안에 갇힌 줄리엣이 괴물과 맞서는 '현재'와 종말 이전에 줄리엣이 뉴욕 아트갤러리의 소유자인 남자친구 잭(그레고리 피투시 분)와 사랑에 빠진 '과거'를 계속되는 교차 편집으로 보여준다. 흡사 <덩케르크>를 떠올리게 하는 병렬 진행이다. 생존을 위해 괴물과 싸우는 현재의 줄리엣은 잭의 도움을 받아 마약중독자를 벗어나고자 했던 과거의 자신을 끊임없이 떠올린다.

줄리엣의 과거와 현재는 종말 전후로 나뉘기 때문에 이야기의 온도가 완연히 다르다. 괴물과 싸우는 현재의 줄리엣은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일반적인 주인공과 다를 바가 없다. 반면에 과거의 줄리엣은 잭과 만나 마약 중독을 극복하고 결혼하여 새로운 집에서 미래를 꿈꾸는 멜로드라마 속 주인공이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와 멜로 장르를 결합한 <호스틸>의 특별한 구성에 주목한 해외의 한 평자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가 <귀여운 여인>과 만났다"고 평가했다.

 영화 <호스틸>의 한 장면

영화 <호스틸>의 한 장면 ⓒ 영화사 마농(주)


단순히 과거와 현재를 오갔다면 <호스틸>은 <127시간>과 별반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메튜 터리 감독은 과거와 현재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되도록 만들었다. 예를 들면 마약 중독을 벗어나려는 과거 장면 뒤엔 차 안으로 괴물이 들어오려는 현재 장면이 이어진다. 괴물은 곧 마약의 의미로 다가온다. 괴물로 인해 나갈 수 없는 현재의 자동차 속 상황은 과거 잭에게 마음을 닫고 있었던 모습과 맞닿는다.

반전보다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줄리엣 역을 맡은 브리터니 애쉬워스는 사막과 도시란 상반된 상황에 놓인 인물, 심지어 극의 절반 정도는 1인극에 가까운 분량을 훌륭히 소화했다. 괴물로 열연한 하비에르 보텟도 눈길을 끈다. 2m에 달하는 신장과 타고난 체격을 활용한 하비에르 보텟은 <컨저링 2>의 크룩맨, <크림슨 피크>의 유령, <인시디어스 4: 라스트 키>의 열쇠귀신으로 분하며 공포, 스릴러 장르의 '악령 전문 배우'로 명성이 높다. <호스틸>에서도 그는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며 줄리엣과 관객을 두려움과 절망으로 몰고 간다.

 영화 <호스틸>의 한 장면

영화 <호스틸>의 한 장면 ⓒ 영화사 마농(주)


제작자로 이름을 올린 자비에르 젠스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프런티어>와 <디바이드> 같은 독특한 색깔을 가진 호러 영화를 연출한 자비에르 젠스는 최근 <셀: 인류 최후의 날>을 제작하며 보폭을 넓혔다. <디바이드>의 벙커와 <프런티어>의 좀비는 <호스틸>의 제한된 공간과 괴물에 스며들어 있다.

극 중에서 잭은 줄리엣에게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을 설명하며 "안의 아름다움이 보일 때까지 지켜봐요"라고 이야기한다. 분명 <호스틸>은 엄청난 숫자의 괴물을 기대해선 곤란하다. 불충분한 설명으로 불편할 수도 있다. 과거와 현재가 반복되는 구조에 피로할지도 모른다.

<호스틸>은 다른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에 없는 아름다움을 가졌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 상황, 그 속의 정서를 놀라운 방식으로 연결하다가 마지막엔 하나로 합친다. 그 끝엔 의외의 결말이 기다린다.

중요한 것은 '반전'이 아니다. 교차 편집과 장르의 융합을 통해 고유한 정서를 만들고 독창성 있는 서사를 꾀했다는 사실이다. <호스틸>은 저예산 장르 영화의 흥미로운 답안이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을 볼 때처럼 음미하며 보길 추천한다.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다. 제15회 뉴욕호러필름페스티벌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베스트SF상, 음향상, 특수효과상 수상작. 23일 개봉.

호스틸 메튜 터리 브리터니 애쉬워스 그레고리 피투시 하비에르 보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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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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