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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큰 딸이 태어나고 처음으로 엄마가 됐다. 젖 먹이는 일부터 배냇 저고리 입히기까지 아이에게 손을 댈 때마다 어설퍼서 매번 아이가 울었다. 재우는 것도 못 해, 목욕도 못 시켜, 기저귀도 잘 못 가려.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매일 무능했고, 매순간 낙제생이었다.

지금 뭐하는 거지? 엄마가 되려고 여태 공부하고, 직장 잡은 거 아닌데? 학생 때는 공부 잘 하면 고스란히 자기 몫의 성공이었고, 직장인으로서 제 역할을 다 하면 보람을 느꼈다.

하지만 육아는 그렇지 않았다. 먹이고, 입히고, 씻기는 가장 기본적인 일조차 손에 안 익었다. 엄마가 되면 정말 잘 해보고 싶었는데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학생 때처럼 방학도 없고, 직장인처럼 휴가도 없었다. 아니, 휴가는 커녕 퇴근도 없었다.

육아는 무조건 날 실패하게 했다. 언제나 날 손해나게 했다.

그런데 큰 아이 세 돌 쯤 되어 돌이켜보니 그게 아니었다. 역설적이게도, 무조건 실패였기에 성공할 수밖에 없었고, 언제나 손해였기에 흑자로 살게 됐다.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이만큼 성공할 수 없었고, 이 정도로 풍족할 수 없었다.
 세상에 태어난 딸
 세상에 태어난 딸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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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한 육아 사춘기 덕분에

정해진 길을 고스란히 밟으며 살았다. 학교에서 학교 공부 하고, 대학 가고, 직장을 잡아, 양가 어른들로부터 독립해서 작은 살림도 시작했다. 선생님은 공부를 가르쳐주셨고, 부모님은 삶의 가이드였으며, 사회 분위기는 어떤 결혼식이 무난한지 실마리를 던졌다.

인생의 매 단계를 적당한 노력과 약간의 실패를 겪으며 밟아나갔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쉽게 구했기에, 이렇다 할 사춘기를 겪지 못했다.

출산. 무수히 많은 처절한 실패의 기록. 살림과 육아를 배운 적 없으니, 하루종일 용을 썼다. 최선을 다해도 서툴었다. 자연스럽게 나를 위한 일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뭐라도 해야 했다.

옴짝달싹하지 못 하게 된 덕분에 자유가 더욱 소중해졌다. 엄마에게 흔하지 않은 자유를, 기어이 새벽 시간에 비집고 찾아냈다. 자유로웠던 미혼 시절의 10시간보다, 24시간 편의점 같은 엄마의 1시간을 더욱 밀도있게 썼다. 하고 싶은 일을 온전히 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쓸 줄 알게 됐다.

고작해야 설거지와 빨래가 가장 무거운 집안일이었던 신혼 시절보다 더 부지런해졌다. 시간을 쪼개 썼고, 아침형 인간이 됐다. 잠자는 아이들 뒤로, 방문을 살짝 닫고 나와야 겨우 엄마 시간을 얻었다.

어떻게 얻은 자유시간인데, 이 시간만큼은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아야 했다. 장담하건데 출산과 육아기는 진지하게 '나'에 대해 고민한 첫 사춘기였다.

처음에는 이 시간조차 '12개월 유아 반찬', '책육아', '엄마표 놀이', '아이들 데리고 가기 좋은 곳', '맛집'을 검색했다. 낮 동안 찍어둔 사진과 동영상을 편집하며 아이 성장 일지를 썼다.

그런데 이건 내 취향이 아니었다. 아이를 사랑하지만, 내 자유시간까지 아이에게 투자하고 싶진 않았다. 취향대로 책을 읽었다. 살림책, 미니멀리즘, 휘게 라이프, 소설, 육아서적, 서평 쓰는 법, 재테크... 점점 나은 사람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덕분에 육아는 나란 인간은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세상은 어떤 곳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몰두하게 한 시발점이었다. 한 줄로 정돈할 수 있는 답을 아직 구하지는 못 했다.

하지만 소비로 행복할 수 없다는 것, 자연을 거닐 때 편안해진다거나, 독서와 글쓰기처럼 단순한 취미처럼 거창하지 않은 일들로 매일 즐거울 수 있음을 알았다. 대단한 사람이 될 거란 목표말고 일상을 여행처럼 살아가고자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처절한 육아 사춘기 덕분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모든게 달라졌다.
 아이가 태어나고 모든게 달라졌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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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는 경력단절이 아니라 경력확장

육아는 경력단절이 아니라, 경력확장이었다. 나는 아이 낳기 전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했고, 지금은 휴직 중이다. 두 살 터울 딸들과 씨름하는 3년 동안, 같은 학번 미혼 혹은 무자녀 친구들은 교수학습과 학급경영, 상담, 교육심리, 교육과정을 연마하고 더욱 전문적인 교사로서 성장중이다. 육아휴직을 하지 않은 남편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오로지 육아휴직을 하는 나만 학교 안의 좁은 울타리 밖에서 잠시 숨돌리고 있다. 교사들이 교문 안에 있는 낮 동안 학교 밖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고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하고, 교육 외 도서를 읽는다. 우물 안 개구리가 폴짝 뛰어나와 우물 밖을 구경할 기회였다. 우리는 개인이 볼 수 있는 시야만큼 세계를 이해한다. 육아 덕분에 세계는 이전보다 넓어졌다.

무엇인가를 이해하려면 그것 밖으로 걸어나가서, 그것에서 벗어난 뒤, 다른 것을 둘러봐야만 한다. 그것은 비단 입시뿐만이 아니다. 전공이 되었든, 업무가 되었든, 모든 지식은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것이 아닌 것들로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중. 채사장 지음.

교사로서 잘 가르치려면 교육 관련 도서만 읽어야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별 모양의 지식은 별 모양을 공부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동그라미, 세모, 네모를 알다보니 별이 보였다.

마찬가지로 학교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교수학습 기법만 알아야 하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야 했다. 다른 나라의 육아 환경, 미니멀리즘과 덴마크의 휘게 같은 새로운 가치관, 기후변화를 비롯한 환경 문제, 주인으로서의 삶을 앗아가는 자본주의, 자신을 들여다보는 글쓰기에 대한 책을 읽었다. 일부러 찾아 읽었다기 보다는 짬짬이 독서가 꼬리를 물고 이어진 거다.

교육과 관련 없는 듯한 책들이었지만, 예상치 못하게 어떤 방향성을 갖고 학생들을 끌어갈지 어렴풋이 보였다. 교실 속 아이들을 대하는 방법을 차츰 알아갔다.

그동안은 입시, 취직, 직장 생활을 위해 한 방향으로만 달릴 줄 알았다. 공부하고 경쟁했다. 그러다 육아를 하면서 치열했던 한 줄 달리기에서 살짝 숨을 돌린다. 당연히 육아와 살림하는 몸은 예전보다 더 바쁘다. 그러나 옆을 볼 수 있게 되어, 세계가 넓어졌다. 넓은 공간이 안식을 주듯, 넓은 세계 또한 여유를 줬다.

 키즈카페에서 틈새 독서
 키즈카페에서 틈새 독서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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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벌이와 봉투살림

육아를 손해라고 생각하는 큰 이유 중 하나가 벌이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도 첫아이가 태어나고부터 외벌이가 되었다. 경력 5년차 교사 월급은 세후 200만 원 조금 넘는데, 외벌이가 되니 내 수입이 딱 끊겼다. 두 학번 위인 남편 월급만으로 팍팍한 살림을 꾸려야 하니, 처음으로 아빠가 된 남편은 초조해 했다.

돈이 아쉬워지니 재테크 공부를 시작했다. 종잣돈을 어떻게든 마련해보려고 빈틈없이 지출 통제를 했다. 봉투에 현금을 넣고, 만 원 한 장씩 빼내어 장을 봤다. 가계부 앱도 다운받아보고, 엑셀로 자산도 관리해봤다. 모든 게 처음이었다.

적은 돈으로 살아보니 세상도 달리 보였다. 풍요로운 삶은 많은 물건에서 오는 게 아니었다. 최소한의 물건을 소중히 여기며, 여유있는 집안 공간을 누리는 즐거움을 알았다.

과한 노동과 물건에서 해방되기 위해 궁리하던 중,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을 읽었다. 노동력과 시간으로 바꿔야 하는 많은 돈이 삶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소비조절 능력을 갖추면, 적게 벌어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여전히 돈에 연연하지만, 예전만큼 막연히 두렵지만은 않다. 육아하면서 살림을 꾸려본 덕분에, 원하지 않는 과도한 노동으로 일상을 해치지 말아야 겠다며 다짐했다. '삶이 아닌 것은 살지 않을지니, 삶은 이토록 소중한 것이다'를 외치게 된 거다.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몰랐을 거고, 혹은 늦게 태어났다면 더 늦게 깨달았을 거다. 반토막 난 수입 덕분에, 흑자 인생을 꾸리게 됐다. 육아를 시작하는 그 시점부터, 몸으로 부딪히며 알아차릴 수 있었다.

 외벌이가 되서 봉투살림을 시작했다
 외벌이가 되서 봉투살림을 시작했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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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는 부모를 무조건 실패하게 했고, 그랬기 때문에 무조건 성공할 수밖에 없었다. 인사기록카드에 들어갈 외국어 시험 점수는 일절 없다. 그러나 전공 분야 공부를 멈췄기에 다양한 책을 접했고, 더 적게 벌어도 더 소박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대안을 알게 되어 경제적 자유를 얻었다.

덕분에 아이를 낳기 전보다 훨씬 마음이 풍성해졌다. 미래가 예전처럼 막연히 두렵지 않고 자존감은 높아졌다. 그게 부모로서 얻을 수 있는 우리의 스펙이고, 경력이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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