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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나기'에서 고개 넘어 '보드베'로 
보드베 수도원, 게오르기 성당 게오르기 성당과 종탑이 보인다.
▲ 보드베 수도원, 게오르기 성당 게오르기 성당과 종탑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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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의 동부권 여행은 마치 성녀 니노의 여정을 되짚어 보는 여행같다. 수도와 전도 활동 끝에 마침내 미리안 3세와 지역 주민들을 개종시킨 므츠헤타를 시작으로, 니노가 잠시 머물렀다는 '니노 츠민다' 수녀원이 있는 사가레조를 거쳐, 생을 마감한 산골짜기 작은 마을 보드베에 왔다.
보드베 가는 길 길은 두 갈래길로 나뉜다. 트빌리시와 보드베 가는 길로.
▲ 보드베 가는 길 길은 두 갈래길로 나뉜다. 트빌리시와 보드베 가는 길로.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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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베 수도원은 시그나기에서 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깊은 산골짜기에 자리해 있다. 수도원까지는 버스도 다니지 않아 택시를 타거나 걸어가야 한다. 차로는 10분 거리지만 니노가 걸었을지도 모를 이 길을 천천히 걸어가기로 했다.

마을을 벗어난 길은 이내 오르막길로 접어들었다. 보행도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어서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을 피해 차도 가장자리를 조심조심 걸어야 했다. 길섶에는 야생화들과 한국의 '토종 매화'와 닮은 꽃나무들이 활짝 피어 있었다. 이곳도 봄이 시작되고 있었다. 보드베로 넘어가는 고갯길은 적막했다. 새소리와 차 소리가 이따금씩 적막을 깰 뿐이었다.

카페 카누도시  시그나기에서 보두베 수도원 가는 길에 만난 카페 '카누도시', 알라자니 평원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명당 중의 명당이다.
▲ 카페 카누도시 시그나기에서 보두베 수도원 가는 길에 만난 카페 '카누도시', 알라자니 평원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명당 중의 명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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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걷기만 하는 것이 조금 지루해질 즈음 눈 앞에 빨간색 벽돌 건물이 나타났다. 'Cafe KANUDOSI'라는 간판이 반가웠다. 알라자니 평원을 향해 난 테라스에 펼쳐진 빨간색 파라솔이 말없이 나를 카페로 이끌었다.

진한 에스프레소가 담긴 하얀색 찻잔을 받아들고 파라솔에 앉았다. 명당 중의 명당이다. 시그나기 마을과 알라자니 평원이 막힐 것 없이 펼쳐졌다. 가슴이 탁 트인다는 말 외에 달리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1888년 시그나기를 방문한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3세는 '스위스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었던가?'라며 시그나기와 알라자니 계곡의 아름다움에 감탄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조지아의 작은 스위스'라는 말은 달리 표현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지.

시그나기 보드베 수도원  보드베 수도원 입구, 대형 주차장과 화장실, 카페 등이 갖춰져 있다.
▲ 시그나기 보드베 수도원 보드베 수도원 입구, 대형 주차장과 화장실, 카페 등이 갖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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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자니 평원과 나란히 이어지던 길은 깊은 골짜기 안쪽으로 빠져 두 갈래로 갈라졌다. 편백나무가 높게 솟아 있는 아래쪽 길이 수도원 가는 길이다. 숲 길 모퉁이를 도니 이내 수도원 입구와 주차장이 보였다. 주차장에는 대형 관광버스를 비롯해 수많은 차량들과 사람들이 뒤섞여 북적댔고, 한쪽에 카페와 화장실 건물도 보였다. 관광지를 방불케 하는 풍경이었다.

보드베 수도원 입구에서 만난 걸인들
 
보드베수도원 보드베수도원은 편백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편백 나무 뒤편 수녀들의 거처가 있다. 출입금지구역이다.
▲ 보드베수도원 보드베수도원은 편백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편백 나무 뒤편 수녀들의 거처가 있다. 출입금지구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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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베 수도원은 높은 담장과 편백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수도원에 들어서니 검은 옷을 입은 걸인들이 먼저 반겨 주었다. 그냥 지나쳐도 되는데 늘 그들에게 돈을 건네고 말을 건넨다. 그녀들이 읊는 '한 편의 비극'은 매번 흥미롭다.

보드베의 걸인은 자신의 아들이 갑자기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누워 있단다. 병원비와 약값이 필요한데, 자신도 보다시피 늙고 병이 들어 일할 곳도 없고, 돈 벌 방법이 없어서 이렇게 구걸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몇 번이고 자신의 처지를 늘어놓았다.

"몇 시까지 이곳에 이렇게 앉아 있으세요?"
"이제 6시면 집으로 가요."
"집이 어디신데요?"
"시그나기예요."
"그럼 시그나기까지 어떻게 가세요?"
"택시를 타고 가요."


헉. 이렇게 구걸을 해서 번 돈으로 택시를 타고 집에 간단다. 하긴 다리가 불편하니 그 방법밖에는 없으리라. 버스도 없으니. 많은 관광객들이 그녀 곁을 지나갔으나 그녀에게 돈을 건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렴 어떤가. 나에게 없어도 되는 5라리가 그녀에게 큰 도움이 된다면 나는 오늘 좋은 일을 한 것이지 않은가. 설령 그녀의 말이 거짓이라 해도 그건 그녀의 죄가 될 테니까 말이다.

보드베수도원 보드베 수도원의  수녀님들은 물을 주고, 풀을 뽑고, 꽃밭을 가꾸느라 무척이나 분주하다.
▲ 보드베수도원 보드베 수도원의 수녀님들은 물을 주고, 풀을 뽑고, 꽃밭을 가꾸느라 무척이나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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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들과 함께 나온 젊은 엄마도 있었다. 그녀는 한쪽 눈이 불편했다. 불편한 눈으로 아들을 키우기가 쉽지 않겠다. 그녀에게도 조금의 돈을 주었다. 문득 레르몬토프의 소설 <우리 시대의 영웅>이 생각났다. 착한 얼굴을 하고 주인공을 속이며 밀수를 하던 코카서스인들의 이야기.

손은 5라리를 건네면서 머리 속에서는 수많은 근거 없는 의심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위선적이다. 내 카메라를 보더니 자기 아들 사진을 찍어 달라는 그 여인은 여느 엄마와 결코 다르지 않은데 말이다. 그들과 헤어져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니노의 안식처, 보드베 수도원

길게 늘어진 나무가지 사이로 뾰족한 지붕의 벽돌 건물과 그보다 뒤쪽으로 거대한 규모의 성당이 눈에 들어 왔다. 하나는 작고 오래 되었고, 또 하나는 크고 새로 지어졌다. 세워지고 파괴되기를 반복했던 수도원의 내력을 한눈에 보여주는 풍경이다.

보드베 수도원, 게오르기 성당 보드베 수도원은 4세기에 건립된 이후 끊임없이 파괴되고 복구되었다. 니노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게오르기 성당과 새로 건립중인 성 니노 성당
▲ 보드베 수도원, 게오르기 성당 보드베 수도원은 4세기에 건립된 이후 끊임없이 파괴되고 복구되었다. 니노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게오르기 성당과 새로 건립중인 성 니노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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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오래된 건물이 성녀 니노의 무덤 위에 세워진 '성 게오르기 성당'이다. 여러 차례의 파괴와 복원 및 재건을 거쳐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 게오르기 성당과 니노의 무덤 모두 19세기 미하일 사바닌이라는 사람에 의해 새로 단장되었다.

전승에 따르면 카파도키아 출신의 니노는 로마군 지휘관과 예루살렘의 대주교의 여동생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니노가 12살 때 모든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요르단 사막으로 들어가 수도 생활을 하면서 병든 자들을 돌보며 여생을 마쳤다고 한다.

어린 니노는 예루살렘에서 온 기독교도인의 손에서 자랐다. 2년 후 니노는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파하라는 성모 마리아의 계시를 받고 조지아 땅을 밟는다. 니노는 처음에 보드베로 와서 주민들의 치료와 기독교 전도에 힘썼다.

그녀가 기적을 행사해 치료해준 환자 중에는 미리안 3세의 부인 나나왕비도 있었다. 니노는 므츠헤타로 가서 주민들에게 전도하고 미리안 3세를 개종시켰다(*또 다른 자료에 따르면 니노는 조지아 남서부 자바헤티주를 거쳐 므츠헤타로 갔다).

말년의 니노는 다시 처음 머물렀던 보드베로 돌아와 은수생활을 하다 병이 들어 347년경 사망하였다. 미리안 3세는 니노의 유해를 므츠헤타로 옮겨오려 했다. 그러나 니노의 유해를 실은 수레는 남자 200명이 끌어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니노의 유해를 므츠헤타로 옮기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결국 니노는 자신이 생활하던 천막 아래 묻혔다. 미리안 3세의 청에 따라 무덤 위에 작은 예배당이 지어졌다. 보드베 수도원의 시초다.

보드베 수도원, 게오르기 성당 니노의 무덤 위에 세워진 게오르기 성당, 19세기에 복원되었다.
▲ 보드베 수도원, 게오르기 성당 니노의 무덤 위에 세워진 게오르기 성당, 19세기에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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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나무 문을 통해 성당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의 벽과 천장에는 성화들로 가득했고, 제단 등의 장식은 지나치게 화려했다. 전체적으로 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베리아 성모상 게오르기성당에 모셔진 이베리아 성모상. 소비에트 정권시절 수도원은 병원으로 사용되었는데, 이베리아 성모상을 수술대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성모의 얼굴에 수술가위 자국이 남아 있다.
▲ 이베리아 성모상 게오르기성당에 모셔진 이베리아 성모상. 소비에트 정권시절 수도원은 병원으로 사용되었는데, 이베리아 성모상을 수술대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성모의 얼굴에 수술가위 자국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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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 한 분이 성모상 주변의 촛불대를 정리하고 있었다. '이베리아 성모상'이다.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이 성모상은 '이베리아 성모상'인데 '이베르스카야'라고도 불린다. 이베리아의 아토스 산에 있던 이비론 수도원의 '문을 지키는 성모상'을 본 뜬 것으로 조지아에서 가장 사랑하고 존경받는 이콘 중의 하나이다.
보드베수도원 보드베 수도원 전경, 멀리 알라자니 펴원이 보인다.
▲ 보드베수도원 보드베 수도원 전경, 멀리 알라자니 펴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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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924년 소비에트 정권은 수도원을 폐쇄하고 병원을 만들었는데, 이 성모상을 수술대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성모의 얼굴 부위에 당시 생긴 수술 가위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관람 당시 이 이야기를 알지 못해 가위 자국을 확인하지 못했다). 소비에트 정권이 파괴한 수많은 사원과 성화들 가운데 하나이다.

니노의 무덤은 제단 옆 내실에 있었다. 무덤 위에 십자가 조각이 새겨진 하얀색 대리석 상판이 올려져 있었다. 내실은 향로와 이콘화 이외에 별다른 것이 없이 정갈했다. 이곳에서는 그루지아와 모든 정교 세계의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는 예배가 매일 열린다.

보드베 수도원의 역사

4세기 니노의 무덤 위에 지어진 보드베 최초의 예배당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 후 수도원은 끊임없이 복구되고 파괴되는데, 특히1256년 몽고의 침략, 1612년 페르시아의 침략 등으로 심각하게 파괴되고 말았다.

17세기 말 테이무라즈 1세 때에 비로소 다시 복구되지만, 19세기 초 러시아 제국은 조지아 정교의 독립 교구를 폐지하고, 수도원 소유의 땅과 모든 재산을 국가로 귀속시켰다. 사실상 수도원은 없어진 것과 다름없었다.

19세기 말, 특히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3세에 의해 수도원의 대규모 복구가 이루어졌다. 이때 남자수도원에서 수녀원으로 바뀌었고, 12명의 러시아 수녀들이 파견되었다. 수공예 및 미술학교가 개설되고 수녀의 수가 300여 명에 달할 정도로 활기를 띠었다.

1924~1991년 소비에트 정권은 수도원을 폐쇄되고 병원으로 활용하였다. 1991년 소비에트 정권의 붕괴 이후 수도원은 본래의 자리를 회복하기 시작하였다. 1991-2000년 사이 대대적인 복구 작업을 거쳐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지금 지어지고 있는 '성 니노 성당'이 완공되면 새로운 보드베 시대가 열릴 것이다.

천상의 꽃밭 & 성 니노의 샘물 
보드베 수도원, 게오르기 성당 새로지어지는 성니노 성당과 정원
▲ 보드베 수도원, 게오르기 성당 새로지어지는 성니노 성당과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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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베 수도원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들판을 방불케 하는 '너른 정원'이다. 산등성이 경사면에 조성된 정원의 작은 오솔길에 서면 또 다시 알라자니 평원과 코카서스 봉우리들을 만나게 된다.

눈 앞의 구름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치 구름 위에  올라타서 하늘로 올라가는 느낌이다. 아니면 이미 천상의 세계에 있는 것인가. 수녀님 몇 분이 분주히 오간다. 풀을 뽑고 잔디밭에 물을 주고 잡초를 갖다 버리느라 한 시도 쉴 틈이 없어 보였다. 그 덕분에 수도원은 어디를 가도 꽃길이고,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보드베수도원 수녀님들이 가꾼 꽃길
▲ 보드베수도원 수녀님들이 가꾼 꽃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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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카메라에 보드베를 담고 있는데 수녀님이 꽃다발을 내밀었다. 들꽃으로 만든 예쁜 꽃다발이다.
수녀님이 건네준 꽃다발 보드베 수녀님이 만들어준 들꽃 꽃다발
▲ 수녀님이 건네준 꽃다발 보드베 수녀님이 만들어준 들꽃 꽃다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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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질래요?"

아까 그 수녀님이다. 니나 수녀님이라고 했던. 좀 전에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했더니 '안 된다'고 했던 것이 미안하셨던 모양이다. 수녀님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온화한 얼굴에서 성녀 니노의 모습이 보였다. 무척이나 어린 수녀님이다. 다음에 와도 수녀님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보드베수도원 성 니노 샘으로 가는 길. 계단을 따라 한참 걸어 내려가야 한다.
▲ 보드베수도원 성 니노 샘으로 가는 길. 계단을 따라 한참 걸어 내려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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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베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또 있다. '성 니노의 샘'이다. 치유 효과가 매우 뛰어나다고 한다. 샘 주변에는 성수에 몸을 씻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늘 길게 늘어서 있다고 한다. 샘으로 가기 위해서는 돌계단을 따라 한참 산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계단을 올라오는 이들이 한결같이 힘들다고 한다. 샘으로 내려가던 발걸음을 과감하게 돌렸다. 아쉬움이 남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성수'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은 차로 가는 방법도 있다하니 포기하지 말기를 바란다.
보드베수도원 보드베수도원에서 바라보는 알라자니 평원
▲ 보드베수도원 보드베수도원에서 바라보는 알라자니 평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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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을 떠나기 전 다시 한번 앞 마당에 서 본다. 역시나 아름다운 풍경이다. 니노가 마지막 안식처로 이곳을 택한 것은 어쩌면 보드베에서 하늘나라의 모습을 본 때문은 아닐까. 알렉산드르 3세가 읊조렸다는 말을 나도 따라 해본다.

"이토록 아름다운 곳을 본 적이 있던가?"

덧붙이는 글 | 2018년 4월에 다녀온 조지아 여행기입니다. 기자의 개인블로그에도 동시 게재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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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을 연재하며,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