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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일 강원도 고성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제20차 남북이산가족상봉 작별상봉을 마친후 북측 가족들이 버스에 탑승한 가운데 남측 가족들이 마지막으로 손을 잡으며 눈물로 배웅하고 있다.
 오는 20일부터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린다. 지난 2015년 10월 이후 2년 10개월 만이다. 사진은 2015년 제20차 남북이산가족상봉 당시 북측 가족들이 버스에 탑승한 가운데 남측 가족들이 마지막으로 손을 잡으며 눈물로 배웅하는 모습이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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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취재단 신나리 기자]

오는 20일부터 26일까지 8.15계기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금강산에서 열린다. 4.27 판문점선언에 따라 열리는 이번 상봉행사는 지난 2015년 10월 이후 2년 10개월여 만이다.

이번 상봉에서 이산가족들은 형제와 자매 혹은 자녀와 손주를 만난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3촌 이상의 가족을 만난다. 이미 사망한 형제·자매 대신 그의 아내나 남편·조카를 만나는 식이다. 조카며느리를 만나는 이도 있다.

20일부터 22일까지 이뤄지는 1차 상봉 가족 89명 중 3촌 이상의 가족을 만나는 이들은 39명이다. 조성연(85), 김영자(73), 안승춘(81)씨 역시 이번 상봉에서 3촌 이상의 가족을 만난다.

[조성연씨 이야기] "제2의 이산가족이 되지는 않을까"

사실은 모르는 사람들이다. 조성연씨는 피난하며 떨어지게 된 남동생과 여동생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살아있었다면 일흔아홉이 됐을 여동생은 지난 3월, 세상을 떠났다. 조씨의 나이 열일곱, 언니와 형부를 쫓아 일주일만 다녀온다는 생각으로 대구로 향했는데 이승에서의 마지막 만남이 됐다.

"사실 피가 한 방울도 안 섞였죠. 이들을 68년 만에 만나는 거예요."

그는 이번 상봉에서 남동생의 부인과 여동생의 남편과 딸을 만난다. 1980년대부터 꾸준히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했지만, 기회가 닿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일찍 상봉할 수 있었다면' 되새겨보지만 세월은 덧없이 흘렀다.

동생들과 세월을 함께 보낸 이들의 얼굴에서 남동생과 여동생의 모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조씨는 남은 기대를 부여잡고 그의 남편과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와 상봉에 함께하기로 했다.

"그동안 북한 가족과 서신 교환도 할 수 없었잖아요. 이번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나고 헤어지면 제2의 이산가족이 될 것 같아요. 앞으로 또 언제 만날지 기약이 없으니까요."

현재 이산가족 등록자 중 생존한 것으로 파악된 수는 5만6862명이다. 이 중 전자추첨으로 당첨된 것도 기적이었다. 하지만 다음이 또 있을 수 있을지, 이번에 만나서 제2의 이산가족이 될 거라면 차라리 안 만나는 게 나은 건지 고민하기도 했단다. 마주한 얼굴을 잊고 살아야 하는 걸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조씨는 심란했다.

"앞으로 서신이라도 주고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통일부에도 적십자사에도 부탁했어요."

어럽게 닿은 연락, 그보다 더 어려웠던 이산가족 상봉의 기회. 하지만 조씨는 한 번의 만남이 아닌 소식을 알고 지내기를, 꾸준히 연락하고 지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고 상봉을 준비하고 있다.

[김영자씨 이야기] 아버지, 한마디를 품고 산 마음

"그때 선정됐다면,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을 텐데... 남들이 아버지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 그게 참 부러웠어요. 지금도 부러워요."

큰소리로 아버지를 부르고 싶었다. 한 번이라도 아버지 앞에서 그 이름을 부르며 마주하고 싶었지만, 이 생에서는 기회가 닿지 않았다. 김영자씨는 사실 아버지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아버지와 헤어졌을 당시 김씨의 나이가 어렸기 때문이다. 핏줄이라면 그래도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30여 년 전부터 이산가족 신청을 했지만, 기회를 잡을 수 없었다. 2002년 6월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뿐.

대신 김씨는 배다른 동생과 조카를 만나게 됐다. 아버지가 일본에서 북송선을 탔다는 소문을 듣기도 했다. 그 이후에는 소문마저도 발길이 끊겼다. 북한에 있다는 이복동생의 나이가 예순셋이라니 일본에서 태어난 게 아닐까, 이것 역시 혼자 어림잡아본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가 없어서 지금 나이가 이렇게 들었는데도, 부모님 생각이 나요. 내가 부모님 나이가 되면 그리운 것도 없을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김씨의 나이 일흔셋, 여전히 제대로 불러본 적 없는 부모님이 그립다. 어렸을 때 심장마비로 남쪽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도, 얼굴이 그려지지 않는 아버지도. 김씨는 이복동생을 만나서, 그의 조카를 만나서 찬찬히 그 이야기를 들어볼 생각이다.

[안승춘씨 이야기] 처음 만나는 동갑내기 올케

오빠는 자고 있었을 뿐이다. 전쟁이 나자 새벽에 오빠는 방에서 끌려나갔다. 6·25 때였다. 6.25는 안씨의 가족을 갈라놨다. 부모님이 사망했고, 열여덟 오빠가 사라졌다. 그때 안씨의 나이는 열세 살.

"오빠가 2006년에 사망했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됐어요. 아쉽지만 그래도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있게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오빠는 못 보지만 올케와 조카를 이렇게 만나네요."

안씨는 아들인 이용석씨와 금강산을 찾는다. 안씨의 이모가 한국에 있지만, 치매 때문에 이번 상봉에 함께 할 수 없게 됐다. 육체는 달아나는 세월을 쫓아가지 못했다. 다만 안씨는 이모가 있는 요양병원에 찾아가 상봉 소식을 전했다. 이 좋은 소식이 이모의 기억 한쪽에 남아있을 수 있을까.

안씨의 나이 여든하나, 처음 만나는 올케(새언니)가 동갑내기라는 걸 알게 됐다. 무엇을 품에 안기고 올 수 있을까. 안씨를 대신해 그의 아들들이 과거 이산가족 상봉을 한 이들의 블로그를 찾아봤다. 의약품이 좋다는 이야기를 보고 다양한 약품을 준비하고 있다. 올케와 조카가 조금이라도 건강하게 오래 살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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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