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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삼국시대다. 여와와 복희의 신화에서 시작하여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진나라와 유방의 한나라를 지나 드디어 제10권에서 유비와 조조, 손권이 불꽃 튀는 접전을 벌이는 삼국시대로 접어들었다. 2018년 5월 출간된 이중톈의 중국사 제10권 <삼국시대> 이야기다.

아무리 중국 역사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나 삼고초려의 제갈량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소설은 물론이고 각종 드라마와 영화, 게임의 소재가 되고 있는 삼국시대. 그런데 정작 <삼국시대>의 저자 이중톈은 이 시대를 잊으라 한다.

삼국시대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서도 안 되고, 이 시대의 역사는 그리 중요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2006년 중국중앙텔레비전방송의 '백가강단' 인문강연 이후 '이중톈 현상'이라는 말을 유행시킬 만큼 큰 반향을 일으킨 중국 최고의 역사 고전 해설가인 이중톈의 말이다.

지도자의 표상이 된 유비, 신이 된 관우와 제갈량을 비롯한 걸출한 인물들을 배출하고 수많은 고사성어를 낳은 이 시대가 역사적으로 중요하지 않다니 도대체 무슨 말인가. 그러면서(잊으라면서) 또다시 그 시대를 이야기하는 것은 무슨 논리적 모순이란 말인가.

원래 중요하지 않은 이 시대가 중화 문화권 내의 사람들에게 널리 주목받게 된 것은 나관중의 소설 <삼국연의> 때문이라고 이중톈은 말한다. <삼국연의>의 빼어난 문학적 가치가 이 시대를 특별하게 만들었고 또 실제 역사와는 다른 문학적 이미지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이중톈은 <삼국연의>의 문제가 역사의 사실을 바꾼 것이 아니라 역사의 본성을 바꾼 데 있다고 말한다. <삼국연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지배적인 가치관은 충의로, <삼국연의>에서는 삼국시대를 충의와 간사함의 투쟁의 역사로 보았다는 것이다.

이중톈은 삼국시대의 본성은 앞부분은 조조와 원소의 노선 투쟁이고 뒷부분은 조조, 촉한, 동오의 권력 투쟁으로 봤다. 나중에 삼국이 하나로 통일된 것은 역사의 원래 추세로 돌아온 것일 뿐이라는 거다.

따라서 그 추세를 가리키고 그  뒤편의 깊은 의미와 지배적인 힘을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역사학의 임무라고 이중톈은 말한다. 그러니 어쩌면 이중톈이 잊으라는 것은 소설 <삼국연의>가 만들어낸 '문학적 이미지'로서의 삼국시대다.

또한 그 시대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지류가 모여 큰 강물을 이루는 것처럼 통일을 향해 가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삼국시대는 작은 물줄기일 뿐이라는 것일 게다. 이제 나관중이 만들어낸 삼국이야기는 잊고, 이중톈이 들려주는 삼국시대를 만나보자.

동전의 앞뒷면 제갈량과 조조

<이중톈의 중국사 10 : 삼국시대> 표지
 <이중톈의 중국사 10 : 삼국시대> 표지
ⓒ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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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조조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긴 하지만 삼국시대를 소재로 한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그려진 조조의 모습은 항상 간사하고 비열한 간신의 이미지였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능력은 뛰어났으되 악인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조조는 정말 나쁜 사람이었을까?

이중톈의 평가는 그렇지 않다. 조조는 외로울 뿐만 아니라 억울했다고 말한다. 똑같은 일을 다른 사람은 해도 되지만 조조가 하면 욕을 얻어먹었다는 것이다. 똑같은 일이 벌어져도 촉한에서는 살짝 파문만 일고 지나갔던 것이 조조에게는 쓰나미로 덮쳤다는 것이다.

그것은 조조에 대한 사족의 적의 때문이다. 당시 주요 지배세력이었던 사족을 존중하고 심지어 두려워하기까지 했던 동탁과 달리, 조조는 사족을 뼛속 깊이 업신여겼다는 것이다. '법가적 서족 정권'을 세우겠다는 것이 조조의 신념이었으니 어떻게 사족에게 미움을 받지 않을 수 있었겠냐는 것이다.

무엇보다 조조의 가장 큰 착오는 아들 조비가 황제가 되도록 미리 조건을 마련해 준 것으로 만약 조조가 위왕에 오르지 않았다면, 심지어 위공에 봉해지지도 위나라를 세우지도 않았다면, 아마도 조조는 제갈량처럼 되었을 것이라고 이중톈은 단언한다.

실제 제갈량과 조조의 직무와 직함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면 쌍둥이처럼 비슷하지만 제갈량은 신의 반열에 오른 반면, 조조는 간사하고 교활한 인물의 전형이 되어 왔다. 제갈량이 빛나는 정신의 소유자였던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제갈량이 신이 된 것이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라고 이중톈은 말한다.

그것은 사회가 전형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제국의 통치자는 충신이, 일반 백성들은 청백리가, 사대부는 자신들의 상징이 필요했기에 제갈량이 신이 될 수 있었지만 조조는 그 반대 경우다. 사회에는 긍정적인 전형도 필요하지만 부정적인 전형 역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적 인물로서의 조조와 제갈량은 각기 '장강의 앞 물결과 뒤 물결'에 지나지 않았지만, 문학적 형상이자 민간의 형상으로서의 조조와 제갈량은 동전의 앞뒷면이라고 이중톈은 말한다. 동전의 앞은 천사, 뒤는 악마인데 제갈량이 천사이기 때문에 조조는 별 수 없이 악마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이중톈의 해석이다.

나관중의 붓끝에서 만들어진 관우?!

이처럼 유비나 제갈량을 높이고 조조를 폄훼하는 경향의 뒤편에는 충의를 선양하려는 의도가 존재한다고 이중톈은 말한다. 그 때문에 결정적 역할을 한 손권보다 오히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인물이었던 관우가 더 조명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중톈에 따르면 관우는 그리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다. 역사의 추세와 방향을 바꾼 인물이라면 후한을 결딴낸 동탁, 군웅할거를 선도한 원소, 중원 세력과 대등하게 맞선 손권 등을 꼽아야 마땅하다. 이렇게 본다면 관우는 형주를 함락한 여몽이나 이릉대전에서 유비와 싸워 이긴 육손에게도 훨씬 못 미친다.

그럼에도 관우가 제갈량보다도 더 숭배를 받은 이유는 그가 충의의 모범이자 상징이었고, 이것은 나관중의 놀라운 글재주가 낳은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충의란 절대적인 선인가? 짐작하다시피 이중톈은 아니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절대선으로 생각하는 충(忠)은 신하는 임금에게, 자식은 애비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충성해야 하지만, 반대로 임금이 신하에게, 애비가 자식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충성해야 하는가 하면 그럴 필요가 없는 일방적인 것이다.

의(義) 역시 문제가 있는데, 도의, 정의(正義), 인의, 정의(情義), 신의 중 어느 것이 진정한 의 또는 큰 의이며, 이런 '의'들에 모순과 충돌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것이다. 결국 의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임의대로 해석되는 것이다.

그 결과 충의는 남을 응징하는 무기로 변해버렸다고 이중톈은 말한다. 사실 모든 정치투쟁이 근본적으로 다 이익을 둘러싼 투쟁이기에 이익을 다투면서 의를 얘기하는 것은 허풍과 거짓말일 수밖에 없고 이것이 바로 '위선'이며, <삼국연의>의 병폐라는 것이 이중톈의 주장이다.

제갈량의 삼고초려 역시 그러하다. 조조와 마찬가지로 새 질서의 건설자이자 낡은 제도의 개혁자로 그가 촉한에서 실행한 것은 실제로 '조조 없는 조조 노선'으로 심지어 조조보다 훨씬 더 멀리 나갔지만, 제갈량의 정치 개혁은 끝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정치 개혁에 실패한 제갈량은 도덕적 표상이 되는 수밖에 없었고 심지어는 도교의 신선이 되기도 했으니, 이는 사람들이 그가 이루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한 나머지 '삼고초려' 이야기를 흠모해 마지않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삼국연의>가 창출한 문학적 형상은 원래보다 더 강력해져서 결국 그 시대 역사의 진정한 면모에서 갈수록 멀어지고 말았지만, 정작 역사의 진상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이중톈은 토로한다.

역사는 원래 그렇다. 항상 자신의 원래 모습을 똑똑히 드러내지 못한다. 역사의 형상은 늘 문학의 형상이나 민간의 형상만큼 강력하지는 못해서 우매한 군중의 우상이 절대적인 것처럼 굳어지곤 한다.  (본문 248~249쪽)      

후기에서 밝힌 이중톈의 말처럼 이 책에는 아주 긴박하고 머리를 굴려야 하는 내용은 없다. 그래서 소설 삼국지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다소 심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최대한 진실에 다가간 역사만을 볼 것'이란 이중톈의 말처럼 도원결의로 문을 여는 삼국이야기가 아닌 원소가 막을 올리는 새로운 삼국시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중톈 중국사 10: 삼국시대>, 이중톈 지음, 김택규 옮김, 글항아리 펴냄, 2018년 5월, 276쪽



이중톈 중국사 10 : 삼국시대

이중텐 지음, 김택규 옮김, 글항아리(2018)


태그:#삼국시대, #이중톈, #중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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