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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가 끝나고 홍성주민들은 구자환 감독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사진 오른쪽 구자환 감독, 왼쪽 정재영 홍성 YMCA 사무총장. |
ⓒ 이재환 | 관련사진보기 |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문제를 다룬 영화 <해원>이 지난 16일 구자환 감독과 함께 충남 홍성을 찾았다.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된 <해원>은 해방 직후부터 한국전쟁까지 전국에서 자행됐던 민간인 학살 문제를 인터뷰와 현장 탐사를 중심으로 구성해 만든 영화이다.
충남 홍성에도 광천 담산리와 용봉산 등 수많은 민간인 학살지가 있다. <해원>에도 담산리 현장의 발굴 장면과 용봉산의 유해 안치 장면이 담겼다. 영화는 홍성세월호촛불이 주최하고 홍성YMCA가 주관해 상영됐다. 영화가 끝난 뒤 구자환 감독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주민들과 담소를 나눴다.
구자환 감독은 "오늘은 조금 일찍 내려와서 예산 수덕사에 들렀다"며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절 주변의 풍광을 보면 기분이 좋아 진다"고 말했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구 감독은 <민중의소리> 기자이기도 하다. 그는 "기자생활을 하면서 30대가 되어서야 민간인 학살을 알게 되었다"며 "부끄러운 마음에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민간인 학살 문제를 여전히 이념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한국전쟁 전후에 발생한 민간인 학살 문제는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어 오다가 학살 현장이 속속 발굴 되면서 그 참상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쉽게 믿기는 어렵지만 그 학살의 주범 중 하나는 대한민국 국군과 경찰이다. 구자환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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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을 만나고 학살 현장을 찾다 보니 유족들이 지닌 한이 내게도 스며든 것 같다. 많은 언론사들이 민간인 학살을 다룬다. 하지만 그 시점이 지나가면 이 사회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똑 같아 진다. 그러다가 발굴이 시작되면 민간인학살이 잠시 조명되다가 사그라진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는 가해자를 찾는 일이다.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예로 들면 현장 가해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군인들이 민간인들을 갑자가 산으로 끌고 가서 집단학살을 자행했고, 살아남은 사람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승만처럼 정치적인 책임자는 분명히 있다."영화가 끝나고 감독과 대화를 나누면서 문득 구 감독이 걱정됐다. 세월이 한참 지났다고 해도 학살 현장과 유가족을 인터뷰하는 일은 만만치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유족을 만나고, 학살 현장을 다니다 보다보면 상처가 남을 것 같은데, 어떻게 치유하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구 감독은 "우울증에 걸린 것 같다"며 덤덤하게 자신의 상황을 털어놨다.
"우울증이 생긴 것 같다. 기자생활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업무가 아니면 사람을 잘 만나지 않는다. 어느 연구자가 한 말이 있다. 그는 민간인 학살을 연구하는 연구자나 학자 뿐 아니라 나처럼 영화를 찍는 사람들까지도 트라우마가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그것(트라우마)을 풀 수 있는 방법도 없다. 나도 한이 맺힌 것 같다."끝으로 구자환 감독은 "민간인 학살을 연구하는 학자들조차도 이 분야는 연구하면 할수록 어렵다고 말한다. 사건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라며 "나는 민간인 학살을 널리 알리는 사람이지 연구하는 사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