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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소방서 소속의 소방대원들이 현장활동 중 소화전을 소방차에 연결하고 있다. (사진: Firehouse)
 시카고 소방서 소속의 소방대원들이 현장활동 중 소화전을 소방차에 연결하고 있다. (사진: Firehouse)
ⓒ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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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대원들이 화재 현장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찾는 것이 바로 소화전이다. 신뢰할 수 있는 '수원'(Water Source)을 찾아야만 불과의 전쟁에서 효과적인 전략을 세워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1600년대부터 등장한 소화전은 그렇게 소방 활동의 중요한 요소가 됐다.

지난 3일 신시내티의 그린 타운쉽(Green Township) 소방서장 스캇 소우더스(Scott Souders)는 자신의 동네에 색 바랜 소화전을 보고 무언가 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곧바로 집에 있던 노란색 페인트를 가지고 나와 소화전을 색칠하던 그는 문득 자신의 관내에 3200여 개의 소화전 모두 정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만약 시민들이 자신의 집 근처에 있는 소화전을 분담해서 색칠해 준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그렇게 지역주민들과 함께 '소화전 색칠 프로젝트'(Repaint Fire Hydrants)가 시작된다. 물론 소화전에 색을 칠하는 데 필요한 페인트와 붓은 소방서가 제공한다. 또한 학생들이 소화전의 색을 칠하기 위해 함께 참여하면 그 시간만큼 봉사시간으로도 인정해 준다.

이렇듯 미국의 안전시스템은 소방대원을 중심으로 시민과 기업이, 지방정부와 주정부가, 그리고 연방정부가 함께 참여해 서로의 안전에 이익이 되는 소위 '윈윈(Win-Win)효과'를 만들어 가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정책에 대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소통하고 논의하는 과정은 필수다.

하지만 공공의 목적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 소화전을 관할 소방서의 승인 없이 색을 칠하거나 지나친 상상력을 발휘해 소화전 본래의 목적을 훼손하는 것은 금지된다.

그래서 '미국방화협회'(National Fire Protection Association)에서는 소화전에 특정 색깔코드 네 가지(Light Blue, Green, Orange, Red)를 부여해 각각의 색이 입혀진 소화전이 분당 얼마나 많은 양의 물을 공급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놓고 있다.

무심코 지나친 소화전, 상당히 중요함에도

미국방화협회에서 제시한 소화전 색깔규정. 맨 좌측의 옅은 파란색 소화전의 경우 분당 1500갤런(약 5678리터) 이상의 물을 제공할 수 있는 기준을 충족할 때 칠해진다. (출처: NFPA Standard 291)
 미국방화협회에서 제시한 소화전 색깔규정. 맨 좌측의 옅은 파란색 소화전의 경우 분당 1500갤런(약 5678리터) 이상의 물을 제공할 수 있는 기준을 충족할 때 칠해진다. (출처: NFPA Standard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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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는 미국방화협회에서 정한 기준인 만큼 강제성은 띄지 않는다. 참고할만한 기준일 뿐 각 주별로 자신들의 기준에 맞게 얼마든지 운용할 수 있다.
로즈 아일랜드 주 워치 힐 소방서(Watch Hill Fire Department)에서 설치한 '소화전 정원(A Garden of Fire Hydrants)'. 실제로 상수도와 연결되어 있진 않지만 소방 활동에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시민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해당 소방서에서 만들어 조성했다. (사진: Watch Hill Fire Department)
 로즈 아일랜드 주 워치 힐 소방서(Watch Hill Fire Department)에서 설치한 '소화전 정원(A Garden of Fire Hydrants)'. 실제로 상수도와 연결되어 있진 않지만 소방 활동에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시민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해당 소방서에서 만들어 조성했다. (사진: Watch Hill Fire Depart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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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도 소화전은 소방관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자원 중 하나다. 하지만 소화전을 차량으로 가로 막거나 일부는 소화전을 훼손해 사용할 수 없게 만드는 사례들이 종종 눈에 띈다.
한 가게에서 가게 처마를 지탱하기 위해 소화전 보호대에 기둥을 용접해 놓은 모습
 한 가게에서 가게 처마를 지탱하기 위해 소화전 보호대에 기둥을 용접해 놓은 모습
ⓒ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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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본 미국의 사례처럼 우리나라에서 시민들이 직접 소화전에 색을 입힐 수는 없을까. 아직까지는 현행법상 어렵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왜냐하면 소방기본법 제28조에 보면 누구든지 정당한 사유 없이 소화전을 손상, 파괴, 철거 또는 그 밖의 방법으로 효용(效用)을 해치는 행위는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의 사례에서 보듯 안전은 소방대원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정책에 시민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성과를 볼 수 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안전 정책들이 만들어지고 폐지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참담한 재난들을 경험해야 했고, 무수히 많은 인명과 재산피해 앞에 무기력하게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정책이 시민들을 일종의 방관자로 만들어 개개인의 '안전 자생력'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때다.


태그:#소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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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출생. Columbia Southern Univ. 산업안전보건학 석사.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소방칼럼니스트. <미국소방 연구보고서>, <이건의 재미있는 미국소방이야기> 저자.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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