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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떠나보냈다. 염천 더위가 계속되던 날 5일장을 치렀다. 전태일 열사와 김근태 선생이 묻혀있는 마석 모란공원묘지에 그를 묻었다. "서울에는 구로구 가로수 공원에서 출발하는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라고 시작되는 그의 명연설을 새기며 그와의 작별의식을 마무리했다.

그는 진보정의당 대표를 수락하는 이 연설에서 매일 새벽 일찍 6411번 버스를 타는 사람들을 기억하자고 역설했다. 직장인들이 북적대는 강남의 빌딩숲으로 이 분들이 출근하지만, 아무도 이들을 알지 못한다고 하면서 이분들의 손이 닿는 곳에, 이 분들이 부르는 곳에 정치인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강남의 직장인들이 출근하기 전에 이 분들은 일을 끝낸다. 화장실과 계단과 건물 로비를 깨끗이 청소한다. 부서진 곳을 고치고 설비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점검한다. 그리고는 직장인들이 출근하기 전에 사라진다. 아무도 이들의 존재를 모른다. 한 달에 85만원을 받는 '투명인간'으로 살고 있다는 이들을 기억하는 정치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그. 노회찬이다.

나는 노회찬을 정치인으로만 기억하지 않는다. 입담 좋은 토론자로만 기억하지 않는다. 유머 넘치는 훈남이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그 모든 것들은 그가 갈고 닦아 온 참인격의 산물임을 안다. '인민노련'의 멤버로 30여년 그와 인연을 이어오면서 그의 고난, 그의 선택, 그의 성공과 좌절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좌절의 순간에 더 큰 깨달음을 일구고 성공의 순간에 더욱 겸손할 수 있는 그였다.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 영결식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가운데 노 의원 영정이 고인이 머물렀던 의원회관 사무실을 둘러보고 있다.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 영결식이 7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가운데 노 의원 영정이 고인이 머물렀던 의원회관 사무실을 둘러보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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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부음을 듣고 나는 그의 길을 안내하기로 했다.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으로 가서 독경을 했고 장례 이후에는 작은 기도실을 만들었다. 그가 처음 겪는 사후세계의 생경함과 혼란, 세상에 대한 미련과 애착. 그리고 사회적 활동과 정치에 대한 갈애를 넘어 설 수 있도록 돕기로 했다. 그의 도움만 받아 온 것에 대한 작은 보답이라 여겼다. 어떤 조문객도 하지 않을 것이라 여기고 이 역할을 선배 한 분과 같이 자임했다.

<티벳 사자의 서>를 기본 문서로 하여 매일 매일 노회찬 개인에 맞춰 기도문을 만들었고 낭송했다. 그가 오랜 동안 헌신했던 '매일노동뉴스'라도 된 듯 사후 날짜별로 기도문을 다듬고 음성화일로 변환하여 페이스북 기도실에 올렸다. 이름하여 '노회찬을 기리는 기도실'.

기도문은 늘 반복되는 대목이 있다. "...이것은 모두 당신 자신의 의식이 투영된 환상임을 알아야 합니다"이다. 스스로 그런 환영들과 같은 상태였을 때거나 그와 같은 부류의 존재들에게 완전히 압도당했을 때 느꼈던 두려움과 공포, 희열이었다고 지적한다. 살았을 때의 느낌과 생각과 행동을 다시 환영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이것은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나의 느낌, 생각, 행동이 그와 같다. 실재는 없고 공(空)의 세계를 환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기독교인이라면 예수의 모습으로 불교인이라면 부처의 모습으로 바르도(실상중음 實相中陰)시기를 맞는다고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모든 근원은 내 안에서 시작되고 환영으로 생멸한다.

기도를 시작한 지 14일째 되는 날이었다. 존재의 참모습을 체험하는 실상중음의 마지막 날이다. 그날 밤에 그가 꿈에 나타났다. 너무도 생생했다. 노회찬이 큰 집회에서 연설을 했고 그와 나란히 걷게 되었다. 전혀 특별하지 않은 평소의 대화를 했고 나는 그와 헤어져 집으로 가는 버스정류장을 향했다.

<티벳 사자의 서> 기도문은 끝 부분에서 반복되는 또 하나의 대목이 있다. "... 모두 투영된 환상임을 알아채기만 한다면 당신은 깨달은 몸을 성취하고 절대 자유의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이다. 그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그것이 환영임을 알아채기만 하면! 느낄 수만 있어도!

그렇다. 삶은 죽음까지 포함하는 긴 여정이다. 하룻밤 지나면 저절로 건물이 깨끗해지는 줄로만 알던 직장인들이 6411번 버스 새벽승객들을 알아채기만 해도 될 것이다. 그 투명인간들이 우리의 어머니고 우리의 숙모이고 이웃임을 알아채기만 해도 될 것이다. 노회찬. 보이지 않는 진실에 관심을 갖고 보이는 화려함에 현혹되지 않는 사람. 페이스북 기도실의 바람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함양신문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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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귀농. 2007년 3월부터 치매를 앓는 늙으신 어머니랑 사는데 삶의 새로운 영역을 맛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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