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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의 의미

광복절 아침. 일어나자마자 6살 막둥이의 지식자랑이 시작된다. 어제 어린이집에서 뭔가 배운 모양이다.

"아빠,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
"휴일 아냐?"


아빠의 상상도 못한 답변에 아이는 깜짝 놀랐지만, 이내 의기양양해져 대화를 이어나간다. 자신이 아는 걸 아빠는 모를 때 느끼는 쾌감.

"아니야, 아빠. 오늘은 광복절이야."
"광복절? 아, 맞다. 광복절이지. 너, 광복절이 무슨 날인지 알아?
"그럼. 어제 어린이집에서 배웠어. 일본한테서 우리나라가 풀려난 날이야."


말인즉슨 틀린 건 아니었지만 왠지 언짢았다. 하필 풀려난 날이라니. 아이가 뭘 얼마나 알겠냐만 그 단어 선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빠의 머뭇거림을 봤기 때문일까? 둘째가 동생과 아빠와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냐. 광복절은 일본이 항복한 날이야."
"항복? 누구한테 항복했는데?"
"미국. 일본이 미국에게 항복해서 우리나라가 해방된 거야."


이 역시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불편하긴 매한가지였다. 아빠의 표정이 나아지지 않자 이번에는 첫째가 대화를 이어갔다.

"8월 15일이 광복절이지만 진짜 항복은 나중에 했대."
"응. 그것도 맞아. 일본은 15일에 전쟁을 그만둔다고 발표했고, 항복은 시간이 좀 지나서 9월에 했었어. 그럼 광복절은 무슨 날일까?"
"일본이 미국과 전쟁을 끝낸 날인가?"


결국 나의 표정은 밝아지지 않았다. 아이들이 광복절을 우리나라가 미국에 의해 해방된 날로 인식하는 것이 씁쓸했다. 일제 강점기, 얼마나 많은 선인들이 목숨을 걸고 투쟁했던가. 비록 가시적인 성과는 내지 못했어도 그런 움직임이 있었기에 연합국들은 조선의 독립을 당연시했다.

그런데도 선인들의 투쟁은 기억하지 못하는 현실. 김형민의 '한국사를 지켜라 1'은 바로 이와 같은 현실에 맞서는 책이다. 저자는 그동안 우리가 잊고 있었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던진 선인들을 나열한다.

그리고 그들을 기억하는 것이 곧 우리의 책무임을 이야기한다. 그들을 호명하여 공동체가 기억하는 만큼 역사는 변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 글들을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라고 주간지에 기고했듯이 그것은 미래 세대를 위한 일이다.

우리가 잊어버린 독립투사들


 한국사를 지켜라 1
 한국사를 지켜라 1
ⓒ 푸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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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용, 이재명, 이동수, 전명운, 장인환, 김마리아, 최용신, 이상룡, 최인걸, 남자현....

저자는 책에서 많은 독립투사들을 거론하지만, 대부분 생소하기만 하다. 김원봉, 김상옥 등은 그나마 조금 나은 편이지만, 그들 역시 정규 교육과정에서 배웠다기보다는 <암살>이나 <밀정> 등 최근 이슈가 되었던 영화들을 통해서 낯을 익힌 이들이다.

우리가 심지어 김구보다도 더 높은 현상금이 걸려 있었던 의열단의 김원봉을 낯설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결국 분단으로 인해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의 역사를 반만 가르치는 우리 역사 교육의 한계요, 광복절을 건국절로 부르려는 이들을 청산하지 못한 현실의 결과이다.
1919년 11월 9일 열변을 토하며 의열단 탄생을 주도하던 홍안의 청년, 평생을 민족 독립을 위해 소진한 한 독립운동가의 정확한 최후를 우리는 아직도 모른다. 남과 북은 합작으로 그를 배신했고 우리 현대사의 큰 봉우리 하나를 역사 속에서 지워 버렸다....그것이 일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독립운동가에게 해방된 조국이 베푼 일이었다. - 133p

분단으로 인한 반쪽자리 역사 교육은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위대한 장군 중의 하나였던 홍범도 장군마저 잊게 만들었다. 그는 청산리 전투 이후 자유시참변을 겪은 뒤 소련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했는데 우리의 역사는 이마저도 교과서에서 삭제해버린다. 그가 무슨 사상을 가지고, 어떤 삶을 살았느냐와 상관없이 공산주의와 관련이 있으면 무조건 언급 자체를 회피한 것이다.
홍범도는 알마아타의 크질 오르다 고려인 극장의 수위로 말년을 보낸다.... 소련의 중앙아시아로 끌려가 그곳에서 생애를 마쳤기에 그는 남한의 역사적 시야로부터 결정적으로 멀어진다. 사회주의자를 자처한 적은 없었던 그였지만 소련에서 죽은 독립군 지도자의 행적은 남한에서 용납되기 어려웠던 것이다. 어릴 적 봤던 위인전에서 그는 '행방불명'으로 처리되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 63p


독립운동 하는 보통사람

 독립운동가들은 그들이 져야 했던 역사의 무게 때문에 항상 갈등할 수밖에 없었던 존재이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가 이봉창 의사이다
 독립운동가들은 그들이 져야 했던 역사의 무게 때문에 항상 갈등할 수밖에 없었던 존재이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가 이봉창 의사이다
ⓒ 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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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저자는 분단으로 인해 잊힌 독립운동가와 함께 실제로 우리가 잘못 인식하고 있는 이들도 이야기한다. 우리의 교과서에는 마냥 영웅으로 기술되어 있지만, 일제 강점기라는 엄혹한 시대에서 독립운동가들은 그들이 져야 했던 역사의 무게 때문에 항상 갈등할 수밖에 없었던 존재이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가 이봉창 의사이다.

윤봉길과 함께 대표적인 의사로 손꼽히는 이봉창. 그러나 저자는 그가 한때 누구보다 일본 신민이 되고 싶어 했고, 또한 일본인이기를 거부당했던 식민지 청년이었음을 기억한다. 우리는 그를 마냥 영웅으로만 기억하지만, 그는 식민지에서 끊임없이 좌절해야만 했던 조선인의 비극적인 자화상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봉창의 최후 진술에 주목한다.

"나는 김구로부터 부추김을 받아 결국 그런 마음이 생겨 천황 폐하에 대해 난폭한 짓을 했습니다만 오늘에는 굳이 김구를 원망하지는 않으나 그 사람의 부추김에 놀아난 나 자신의 어리석음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나의 어리석음으로 엄청난 짓을 해 참으로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이를 보고 이봉창 의사에 대해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저자는 대신 연민의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비록 독립운동사에 기록될만한 의거를 했지만, 그것은 100% 신념이라기보다는 삶의 돌파구가 없었던 식민지 청년의 감정적 폭발에 가깝기 때문이다. 사회구조가 개인의 삶을 지탱해주지 못할 때 겪을 수밖에 없는 괴리. 어쩌면 저자는 이봉창 의사에게서 우리의 현실을 보는지도 모른다.

이봉창의 최후 진술로 알려진 말이다. 배신과 변절을 상상할 수도 있겠으나 인간 이봉창의 평범함을 다시 한 번 느껴 볼 일이다. 목숨도 아깝고 가족 생각도 나고 생에 대한 미련도 바짝 살아난 보통 사람. 혁명의 감화도, 학문과 지식의 세례도 별반 받지 못했던 한 식민지 청년의 분노와 절망, 그 '보통 사람'을 다시 본다. 위의 말이 사실이라 해도 우리가 그를 기억하고 기려야 할 이유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 177p
 
 <암살>의 전지현 분
 <암살>의 전지현 분
ⓒ 케이퍼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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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글머리에 우리나라 독립운동사를 노천광에 비유한다. 비록 흙투성이로 보이지만 씻어 보면 엄청난 양의 황금이 묻혀있는 노천광처럼, 우리의 독립운동사에는 선인들의 목숨을 건 이야기가 차고 넘친다는 것이다. 단지 우리가 아직 채 발굴하지 못했을 뿐. 시대가 어두우면 그만큼 밝으려는 의지도 존재하는 법인데, 아직까지 우리는 그 수많은 이야기들을 짐작만 하고 있다.

영화 <암살>에서 전지현이 분한 독립운동가는 이야기한다.

"알려줘야지…. 우리는 끝까지 싸우고 있다고."

이는 그 당시 선인들이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말이다. 아직 우리는 광복을 온전하게 맞이하지 못했다. 오늘을 위해 죽어간 이들을 더욱 열심히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부끄럽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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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지금은 비록 회사에 몸이 묶여 있지만 언제가는 꼭 공부를 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