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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절로 미소 짓고 있다. 안약 넣다가 거울을 보니 그렇다. <법정스님의 뒷모습>을 읽다 생긴 일이다. 맘에 앉은 더께가 어느 결에 털린 게다. 눈을 감고 그 이유를 찾는다. 산방 이불재의 삶 도처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피어난 두 인꽃을 보아서다. 법정스님과 정찬주다.

무소유로 이름난 법정스님은 2010년에 영면했다. 정찬주는 법정스님으로부터 법명 무염(無染, 세속에 있되 물들지 말라)을 받은 재가제자다. 전남 화순 계당산 산자락에 산방 이불재를 마련해 밭 갈며 글 쓰는 정찬주가 은사스님을 기린 산문집이 <법정스님의 뒷모습>이다.

여기서 뒷모습은 떠나간 이를 대표하는 잔상이다. 즉 그를 떠올리게 하는 유무형의 이미지다. 사후에야 뒤늦게 법정스님이 달라이 라마 같은 큰인물이었음을 깨달은 공경심이 부제 '뒷모습이 참모습이다'에서 읽혀진다. 그 참모습을 무염에 충실한 삶으로 좇는 정찬주는 내게 인꽃이다.

인꽃은 자기다운 향기가 나는 사람이다. 내 어릴 적 외할머니의 귀띔이다. 사람 사는 집에는 사람들이 득시글거려야 한다며 대문에 들어서는 허름한 낯선 이조차 외할머니는 환대했다. 부족해 보이는 사람일수록 겉보다 속을 봐 줘야 한다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인꽃이란다" 누누이 강조했다. 누구든 자기의 종자를 발아시켜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날 잠재태라는 걸 일깨운 외할머니가 내 첫 은사인 셈이다.

자기다운 향기는 한결같은 마음다함에 토대한다. <법정스님의 뒷모습>에서 법정스님다운 향기는 '여러 사람에게 갈 행복'과 '고승의 조건'에서 짙게 맡아진다. 앞글은 프랑스 파리에 있는 길상사 창건에 얽힌 비화다.

거부(巨富)의 보시를 물리친 탓에 십시일반으로 힘을 모으느라 창건 작업이 어려웠다는 후문을 전한다. 불가의 자작자수(自作自受)를 본보기 삼은 "행복의 문법" 제시가 외진 산속에서 홀로 정진한 법정스님답다.

뒷글은 법정스님이 길상사 전신이었던 고급요정 대원각을 시주 받은 일화를 소개한다. 절 운영을 감사하겠다는 시주자의 조건을 흔쾌히 수락했던 여러 스님들을 뒤로 하고, 김영한 여사는 최소한의 조건마저 내친 법정스님에게로 돌아선다. 법정스님의 삶에 각인된 무소유가 시주자가 중시한 고승의 조건이었다.

<법정스님의 뒷모습>은 대개 정찬주의 산방 생활로 엮여 있다. 산방 이불재에서 맞은 사계, 즉 겨울, 봄, 여름, 가을 순으로 주변 환경에 순응하는 마음이 드러나 다채롭다. 그 중 정찬주다운 향기는 '산중의 바깥식구들'과 '텃밭의 호된 가르침'이 내겐 으뜸이다.

앞글은 해동머리 무렵 혹한기를 견디는 새나 곤충, 산짐승에 감정이입한 시선이 압권이다. 그 시선이 확연히 보아낸 자연생태계의 연기(緣起)가 저잣거리의 거친 말들에는 부재함을 "한마디를 하더라도 내면에서 깊이 삭혀야만 듣는 이가 마음으로 공감하는 법이다."로 풀어낸다.

무늬만의 산방 생활이 아님을 밝힌 글이 감동적인 건 문장력 때문이 아니다. 땀땀이 정성 들여 수놓듯 농부의 삶으로 들어서는 화합의 언행들이 구체적 사례에 묻어나서다. 그 몸철학은 텃밭을 얻어 일구게 된 과정을 불가의 자비와 연계한 뒷글에서도 드러난다. 그래서 "이제는 어떤 주장을 폈든 자비 안에서 화합하기를 갈망하지 않을 수 없다."는 먼 데를 향한 견해가 설득력 있게 와 닿는다.

향내 맡는 책읽기에 빠져 미소 짓는 경험은 내게 흔치 않다. 책을 덮으며 부리나케 친구에게 문자를 보낸다. "네가 좋아할 향수 하나 보낼게." 친구가 두 인꽃을 만나 잠시라도 폭염에서 놓여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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