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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위한 의미있는 '무엇'이 필요한가요? 계간지 <딴짓>의 발행인인 프로딴짓러가 소소하고 쓸데없는 딴짓의 세계를 보여드립니다. "쫄지 말고 딴짓해!" 밥벌이에 지친 당신을 응원합니다. [편집자말]
"백수가 과로사한다!" 그 말을 한 이는 제대로 된 백수 생활을 누려본 것이 틀림없다. 백수의 생활을 이렇게 정확하게 표현하다니! 어떤 백수는 바쁘다. 일에 치여 죽을 만큼 말이다. 직업이 뭐냐는 질문에 나는 스스로를 프로딴짓러 혹은 엔잡러(N-job)로 표현하지만 우리 부모님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나를 백수의 카테고리로 분류한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한다고 말해 보았자 한 곳에서 많은 수익이 나지 않는 이상 프리터족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백수치고는 일이 좀 많다. 과하게 많다. 하여 오늘은 반 프리랜서 겸 자영업자인 프로딴짓러로 사는 것의 부작용에 대해 말해 보려 한다. 왕관을 쓰는 자 그 무게를 견디라지 않는가.

프로딴짓러가 되려는 자, 부작용을 견뎌라!

6년이나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조직에 기대지 않으며 독립적으로 살아남기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안정적인 회사를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는 나를 '낭만적인 이상주의자'로 취급하지만 30년 동안 한 자리에서 장사를 한 '상인의 딸'로 자란 나는 꽤 현실적인 사람이다.

한 달에 버는 돈은 이번 달 생활비뿐 아니라 노년을 위한 저축도 포함한 금액이어야 한다. 그렇다고 아무 일이나 다 하진 않는다. 일은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일, 그것도 아니라면 급여가 많은 일, 적어도 재밌는 일이어야 한다.
 
딴짓의 한옥공간 '틈'
 딴짓의 한옥공간 '틈'
ⓒ 박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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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닦아 놓은 길이 아닌 나만의 원칙을 세우며 일하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다. 퇴사 후에 처음 걸음을 떼는 아이처럼 겨우겨우 섰다 넘어졌다를 반복하길 3년. 나는 지금 딴짓매거진의 발행인이자 축제 기획자로 산다. 책 읽는 술집 '낮섬'과 딴짓의 한옥 공간 '틈'을 운영한다. 글 쓰는 프리랜서로 살면서 가끔은 '청소'로 돈도 번다.

"그렇게 많은 일을 한 사람이 어떻게 해요?"

그런 질문에는 손오공의 분신술에 견줄만한 대단한 비법이라도 내놓고 싶지만 실상 내 대답은 이렇다. 

"못해요."

나의 일주일은 이렇다. 월요일과 화요일은 축제 기획사에 출근한다. 여느 회사원과 다름없이 회의를 하고 업체와 미팅을 한다. 목요일과 토요일에는 책을 만들고 싶은 사람을 대상으로 출판 강의를 한다. 한 달에 두 번 딴짓의 문화 공간에서 작은 행사를 연다.

에어비앤비 청소 일이 들어오는 날에는 홍대 인근의 게스트하우스에 가서 청소를 한다. 밤에는 책 읽는 술집 낮섬에서 일한다. 틈나는 대로 <오마이뉴스>에 연재할 칼럼을 쓰고 마케팅 회사의 카드뉴스 스토리를 쓰기도 한다. 아무리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도 쉴 틈 없이 일하다 보면 엄마의 피처링이 생각나기 마련이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딴짓 출판워크숍
 딴짓 출판워크숍
ⓒ 박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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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여러 가지 일을 한 번에 하는 것에 대한 부작용을 절감하고 있다.

먼저,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다. 휴일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매일 일하는 기분이다. 휴일이라고 해도 남들처럼 약속된 주말에 쉬는 게 아니다 보니 내가 쉬는 날에 함께 일하는 업체에서 불쑥불쑥 연락이 올 때도 많다. 그렇다고 업무 시간에 연락한 사람에게 나의 자체 휴일에 연락했다고 타박을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낮과 밤이 들쑥날쑥해 생활 리듬을 잡기 어렵다. 일주일에 이틀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지만 나머지 5일은 새벽에 자서 한낮에나 일어난다. 회사원과 자영업자를 함께 하다 보니 그렇다. 그러다 보니 늘 조금은 피곤하다.  

두 번째 단점은 돈이다. 지금은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는 게 일상적이다. 물론 좋아하는 일이기에 일처럼 느껴지지 않을 때도 많다. 그러나 절대적인 시간을 생각해 보면 회사에 다닐 때보다 일은 두 배가 넘게 하는데 연봉은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앞으로 극적으로 수입이 늘 확률은 낮아 보인다.

프리랜서는 사회적으로 알려진 명예가 있지 않은 이상 업계에서 1년을 일한 사람과 10년을 일한 사람의 급여 차이가 크지 않은 편이다. 물론 분야에 따라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호봉이 꾸준히 올라가는 기업과는 다르다. 게다가 좋아서 하는 일은 돈이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좋아서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간을 더 많이 쓰게 되는데도 그렇다.  

세 번째 단점은 정신적 스트레스다. 체력도 부족하지만 실상 문제는 정신적 고갈이다. 하나의 일에서 다른 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예열을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럴 틈도 없이 하나의 일을 쳐내면 다른 하나가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밀려든다.

때로는 내가 노련한 탁구선수가 된 기분이다. 하나의 일을 쳐내면, 다른 일이 쳐야 할 공처럼 돌아온다. 제대로 쳤는지 확인도 하기 전에 또 다른 일이 밀려온다. 내가 무언가를 놓치진 않았는가 생각하는 일이 도돌이표처럼 계속된다. 틱. 톡. 틱. 톡.

그러나 밀려드는 공을 정신없이 쳐내다 보면 정작 중요한 일을 놓치고 만다. 급하진 않으나 중요한 일들. 엄마에게 건강검진을 받았느냐고 물어보았던가? 아프다던 그 친구는 이제 괜찮은가? 삶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나는 왜 사는가?

책 읽는 술집 <낮섬>
 책 읽는 술집 <낮섬>
ⓒ 박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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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균형점을 찾으려 애쓰는 중이다. 평형대 위에 선 사람처럼 기우뚱거리는 몸과 마음을 다잡으려 한다. 공을 놓치는 방법을 배우고 순간에 집중하는 방법을 찾으려 명상도 해 본다. 나와 비슷하게 프리랜서와 자신의 일을 병행하는 한 친구는 일에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프로 딴짓러에게는 의도된 휴식이 필요하다 설파했다.  
"우리가 왜 일이 많은지 알아? 일정 기간 동안 고정 수입을 주는 A라는 일을 하다가 A일에서 퇴근을 하면 추가 수입을 올리기 위해 B라는 일을 하지. B가 끝나면 당장의 수입은 아니지만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C일을 시작하잖니?

C가 끝나면 개인 프로젝트로 D를 하게 되고. A에서 D를 반복하다 보면 '휴식'이라는 단어와 서서히 멀어지는 거야. 눈뜰 때부터 잠에 들 때까지 A,B,C,D 각각에 산재한 문제와 고민거리들을 계속 생각하면서."
그녀는 휴식에 대한 자기만의 원칙을 세웠다. 토요일만은 일 생각을 하지 않고 놀겠다! 라거나 매일 아침 8시부터 10시까지 두 시간만큼은 완벽하게 일과 떨어진 시간을 갖겠다! 라는 자기 자신과의 휴식 약속이다.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산다는 것, 울타리에서 벗어나 내 일을 하며 사는 데는 그만의 노하우가 필요하다.

<프로딴짓러 지침서>라도 있었으면 좋겠지만 직업으로서 소수자인 '프로딴짓러'에게 그런 쉬운 길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직업을 가지고 사는 건 내 길을 스스로 개척해서 나가는 즐거움과 자긍심 때문이다.

내가 하는 대부분의 일이 나의 이름으로 남는다는 점, 울타리가 없다 보니 바득바득 진짜 능력을 기를 수밖에 없다는 점, 어디서도 잡풀처럼 기어이 살아남을 자신감이 생긴다는 점 때문이다.

살다 보면 굳이 잘 닦인 고속도로를 마다하고 낫으로 덩굴을 잘라가며 기어이 제가 만든 길로 가는 사람도 있다. '백수 과로사'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렇게 사는 게 더 좋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겠다. 늘 새로운 마을에 도착하는 여행자가 된 기분이다. 여행은 고단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같은 캐리어가 더 무겁게 느껴질 수도, 이제는 새로움이라는 것에 신물이 날 수도 있겠지만 그 결정 또한 내 스스로 내리는 것이라 믿으며 산다. 휘청거리면서. 언젠가 이 줄타기에 익숙해지리라 기대하며.


태그:#프로딴짓러, #직장, #회사, #프리랜서, #엔잡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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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밥 벌어 먹고 사는 프리랜서 작가 딴짓매거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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