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거래와 만남은 사람과 사람간의 직접적인 대면을 통해 이루어졌으나 현대사회는 컴퓨터를 통해 많은 것이 이루어지고 있다. 컴퓨터를 통한 사이버세계는 실물거래에서 점점 수치, 또는 문자, 기호로 대치되는 사회를 넘어 가상의 세계로 진입하고 있다.

직접 부딪치며 서로를 느끼는 생활이 사회화과정이라면, 컴퓨터가 생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감정과 호흡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가속화 될수록 인간의 소외는 시간이 갈수록 커다란 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생활의 중심에 컴퓨터가 자리 잡은 젊은 세대들은 사람들과 직접적인 접촉보다는 컴퓨터 혹은 스마트폰을 이용해 교류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들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주인공 데이비스 캐릭터에 더욱 관심이 가는 것이며, 이후 세대들은 어떤 교류를 하게 될지 무척 궁금해진다.

자신의 세계를 해체하는 데이비스(제이크 질렌할)  “뭔가를 고치려면 전부 분해한 다음 중요한 게 뭔지를 알아내야 돼”라고 말하는 장인의 이야기를 따라 자신의 세계를 분해하는 데이비스

▲ 자신의 세계를 해체하는 데이비스(제이크 질렌할) “뭔가를 고치려면 전부 분해한 다음 중요한 게 뭔지를 알아내야 돼”라고 말하는 장인의 이야기를 따라 자신의 세계를 분해하는 데이비스 ⓒ (주)메인타이틀픽처스


영화 <데몰리션>(2015)의 주인공인 데이비스(제이크 질렌할)는 투자회사의 유능한 직원으로 하루에도 수많은 금액이 그의 손을 거쳐간다. 그는 사람들과 직접 대면하지 않고 컴퓨터를 이용해 일을 처리한다. 따라서 사람들의 상황이나 처지는 알 길이 없고 정확을 요구하는 데이터의 수치만이 중요할 뿐이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아내와 이야기를 하는 그의 모습이 나오지만, 대화를 하는 것인지 아닌지 표정만 봐서는 알 수 없다. 아내는 "냉장고에 물이 새고 있어 고쳐달라"고 2주 전부터 말했다는데, 그는 금시초문이다. 대화에 참여하지 못하는 그의 태도는 늘 컴퓨터의 언어에 매달려야 하는 생활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데이비스에게 관심거리와 소통의 상대는 모두 컴퓨터 안에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기저가 되는 사건을 던진 후 그로인한 반응과 해결과정을 기본 플롯으로 설정했다. 출근길에 운전하던 아내가 사고로 죽었지만, 조수석에 타고 있던 데이비스는 다친 곳 하나 없이 멀쩡하다. 겉모습이 멀쩡해도 조금 전까지 투닥거리던 아내를 이젠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는데 괜찮을 리가 없다. 가까운 사람들은 애도의 위로를 전하지만 사실, 그는 아무 감정도 느낄 수 없다.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에 대해 자신조차도 의아해 한다. 그는 아마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허탈함에 마음을 잡을 수 없다. 오랫동안 출근길에 스쳐 지났던 사람에게 이야기를 걸기도 하기도 하고 돌발적인 일들을 벌이지만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고 전혀 알아채지 못했던 주변의 일들도 무심하게 지나칠 수 없다. 삐걱거리는 화장실 문도 거슬리고 늘 사용하던 컴퓨터도 궁금하다. 이제 그의 세계는 일상이었던 사이버상의 시야가 아닌 가시적인 확장을 요구한다. 이렇게 생기기 시작한 작은 틈은 점차 커진다.

이상한 일들을 알아내기 위해 그는 그 대상을 해체하기 시작한다. 아내의 죽음에 아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자신을 알기 위해 생전 아내가 고쳐달라던 냉장고와 막 배송된 커피머신을 낱낱이 분해한다. 심지어 회사의 화장실 문과 자신이 쓰던 컴퓨터까지 분해한다. 과연 분해된 파편 속에서 그는 무었을 찾은 것일까?

영화는 두 가지 흐름을 서로 교차시키며 진행된다. 자신의 것을 해체하여 문제의 뿌리를 보고자 하는 데이비스의 노력이 한 축이라면, 자판기 고장이라는 작은 실제적인 사건이 만들어 내는 관계가 다른 한 축이다.

사소한 실체와의 만남에서 돌파구를 찾다

교통사고로 실려 온 병원에서 아내의 사망소식을 들은 데이비스는 충격이 커서인지 무표정하다. 배가 고팠던 그는 병원 자동판매기에서 초콜릿을 먹으려 했으나 고장으로 제품이 나오지 않는다. 아주 사소한 일임에도 데이비스는 발끈한다.

지금껏 그가 살아왔던 것을 미루어 짐작하건데 이전의 데이비스라면 별 감정 없거나 아니면 '좀 재수가 없다'고 생각하며 지나쳤을 법한 일인데 어찌된 일인지 이번에 그냥 넘길 수 없다. 고장이 난 자판기에 대한 항의 차원으로 편지를 쓰던 데이비스는 현재 자신이 겪고 있는 일을 낱낱이 고백한다.

사이버 세계와 친밀한 '그'라면, 컴퓨터 메일을 통해서 글을 쓰는 것이 자연스러울 법한데 영화는 그런 경로로 가지 않는다. 데이비드는 오랜 된 아날로그 방식인 자필 편지를 선택하고 편지를 쓰는 태도조차도 매우 진지하다.

편지 내용도 그렇지만, 써 내려간 반듯한 글씨체가 간절한 그의 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가상 세계의 빈공간은 현실세계의 실제적인 몸짓에 의해 하나씩 메워진다. 사소하여 그냥 지날 칠 수 있는 자판기 고장이 그를 새로운 세계로 이끈다는 것은 이 영화의 백미다.

자판기회사 고객센터 직원인 캐런은 배달된 데이비스의 편지를 지나치지 않고 읽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상황에 깊이 공감한다. 때론 전혀 모르는 타인에게 자신의 깊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편할 수도 있다. 이해 관계나 편견이 없어 이야기가 새어 나갈 염려도 없기 때문이다.

데이비스는 캐런에게 자신의 답답한 속내를 담은 장문의 편지를 보낸다. 결국 몇 번의 편지와 통화 후 캐런과 데이비스는 만난다. 편지라는 실체적인 매개체가 전혀 알지 못했던 두 사람을 직접 만나게 한 것이다. 지나칠 수 있었던 자판기와 관련된 아주 사소한 일은 데이비스뿐 아니라 캐런과 캐런의 아들에게까지 변화를 가져다 준다. 스스로 자신의 것을 파괴하면서까지 자신의 실체를 알고자 했던 데이비스는 캐런과 그녀의 아들과 만나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자신을 발견한다.

자유는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의 결과물인가

자판기 고객센타 캐런(나오미 왓츠) 고장난 자판기 회사 고객센터에 있는 캐런은 자신의 이야기를 진실하게 보낸 데이비스의 편지에 깊은 공감을 하고 친구가 되어 준다.

▲ 자판기 고객센타 캐런(나오미 왓츠) 고장난 자판기 회사 고객센터에 있는 캐런은 자신의 이야기를 진실하게 보낸 데이비스의 편지에 깊은 공감을 하고 친구가 되어 준다. ⓒ (주)메인타이틀픽처스


알지 못했던 것을 본다는 것은 일종의 '깨달음'이다. 어릴 때부터 소심했던 데이비스에겐 사람들과 직접 만나지 않아도 되는 현재의 일이 잘 맞았을지도 모른다. 장인이 끝까지 파트너로 함께하기를 원하는 것으로 추측건대, 업무 면에서 꽤나 인정받고 있는 모양이다. 절제된 감정(그러나 사실은 감정을 느끼지 않는)은 데이터에 의존하여 결단을 내리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특성이다.

하지만 아내 줄리아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충격이었다. 감정의 변화에 민감하지 못한 데이비스는 그 충격의 반응에 어찌할지 모른다. 슬픈 상황이긴 하나 감정표출이 되지 않는다. 뭔가 많은 감정의 덩어리들이 뭉쳐 있지만 평소 익숙하지 않은 일이다. 무표정 무심함이 데이비스의 모습이다. 아내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몇 가지 되지 않고 심지어 결혼조차도 쉬워서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최소한 데이비스는 자기감정에 솔직하다. 어쩌면 학습된 슬픔으로 슬퍼하고, 학습된 기쁨으로 기뻐하는데 익숙해져 있을지도 모른다.

아내의 죽음에도 무감각하던 데이비스는 자신을 해체하는 아픔과 사람과의 교류를 통해 하나 둘씩 자신을 깨달아간다. 해체하는 과정에서 못에 찔린 상처가 씻겨 내려가는 장면과 캐런의 아들 크리스과 총을 쏘며 연습하던 장면에서 총에 맞고 쾌재를 부르는 장면은(하지만 이 장면은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할 정도로 섬뜩하다). 앞서 말한 두 축으로 진행되던 이 영화의 결정적 장면이다.

덥수룩한 수염에 헐렁한 바지를 입고 도심의 한복판에서 이어폰을 낀 채 춤을 추는 데이비스는 주변 사람들과 대조적으로 매우 자유롭다. 이 시퀀스는 많은 이야기를 갖고 있는 장면이며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될 것이다. 뭔지 모르지만 바쁘게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 바로 데이비스의 어제의 모습인 사람들 속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운 영혼을 찾은 자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단절된 데이비스의 세계는 자신을 파괴하는 각고의 노력과 타인과의 직접적인 교류를 통해 놓쳤던 것들, 잊고 지나쳤던 것들을 볼 수 있게 된다. 해체된 자신의 파편 조각과도 같은 아내 줄리아의 비밀을 알게 되고 자신이 그녀를 무척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파편과도 같은 이야기인 줄리아와의 관계들이 플래시백으로 처리된다.

장 마크 발레 감독은 시한부 삶을 선고 받은 인간의 위기와 극복을 다룬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과 엄마의 죽음으로 고통에 빠진 딸이 선택한 극한의 도전기인 <와일드>에서 충격적인 상실에 빠진 인간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린 바 있다. <데몰리션> 역시 상실이라는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앞선 전작들이 조금 특별한 경험이나 극복의 방법을 택했다면, 이번 영화는 고통의 크기에 차이가 있을 뿐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낼 법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단절된 관계에 익숙해 생기는 문제들은 결국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메시지를 던진 영화 <데몰리션>은 데이비스역을 맡은 제이크 질렌할의 연기가 압권이었고 전반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괜찮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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