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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감정은 살아있습니까?

손원평 지음, <아몬드>를 읽고
18.08.14 19:00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태어날 때 신이 부여해준 선물 중 가장 가치 있는 것은 감정이다. 유교에서는 '희노애구애오욕'과 같이 일곱 가지의 감정을 규정하기도 하며, 이는 인간 모두가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어른이 되고, 백발노인이 될 때까지 우리는 살아가면서 기쁨, 슬픔, 분노, 사랑 등 온갖 감정을 느낀다. 때로는 힘들게도 하지만 때로는 살아가는 이유를 우리의 마음속에 심어준다. 인간에 있어서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그저 당연함 그 자체였다.

감정 표현 불능증. 이름 그 자체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니 감정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아픔은 물론 기쁨까지도 모른다.

'아몬드'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누구나 -견과류 아니에요?
-그 담백하면서도 끝 맛은 씁쓸함, 바로 그거죠 그거?

하는 반응이 나올 터,
그러나 모두가 오답이다.
'아몬드'를 알지 못하는 이유는 살아가면서 큰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아몬드'는 인간의 뇌 속의 감정을 조절하는 부분을 일컫는다.

그 '아몬드'가 삶을 바꾸어놓은 예쁜 괴물의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겠는가?

엄마의 얘기가 다 끝난 뒤에도 할멈은 한동안 침묵을 지키더니 갑자기 표정을 바꾸었다.
-네 엄마 말이 사실이라면, 넌 괴물이다.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괴물. 그게 너로구나! (46쪽)


'예쁜 괴물'이라는 윤재의 별명은 할머니의 머릿속에서 툭 튀어나온 단어이다. 어려서부터 감정에 대해서 몰랐기에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튀어보였고, 저절로 외톨이가 되어갔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친구들의 따돌림에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위험에 처할 일이 다른 사람에 비해서 너무나 많았다는 것이다.

차가 가까이 온다 → 몸을 피하거나, 가까워지면 뛴다
사람이 다가온다 → 부딪히지 않도록 한쪽으로 비켜선다
상대방이 웃는다 → 똑같이 미소를 짓는다 (33쪽)


이것은 윤재의 엄마가 만든 윤재만의 공식노트이다. 윤재 엄마는 윤재가 감정을 느끼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큰 충격에 받았다. 임신 중에 자신이 담배나 술을 하지만 않았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며 자책하기도 하였다. 윤재는 물론 윤재 엄마의 마음고생이 나에게까지 전해졌다. 그러나 그런 윤재를 위해 벽지에 큰 전지를 붙여 위와 같은 말을 적어둔다는 아이디어를 낸다는 게 너무나 신기했고 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진정한 사랑이 없다면 아이를 위한 방법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저 글씨들 하나하나가 윤재엄마의 윤재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으로 바뀌는 것을 보았다.

세상에 살면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어쩌면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경쟁사회가 되어버린 이 세상 속에서 그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 요즈음에는 이로 인한 우울증으로 아프고 심지어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도 많으니까. 그러나 나는 감정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에 대해 뼈저리게 느꼈다.

장례식장에 온 여경 하나는 유족들에게 절을 하다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한번 터진 울음은 멈출 줄을 몰랐다 ... 사흘간의 장례 내내 별다른 표정의 변화가 없는 나를 두고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 남들은 내게 슬픔이나 외로움, 막막함을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안에는 감정 대신 질문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64~65쪽)

어린 윤재 앞에서 할머니가 죽고, 엄마가 쓰러졌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냉면을 먹으러 갔다가 봉변을 당했다. 윤재는 단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이 한순간에 이별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믿겨지지는 않았지만 그 감정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다. 윤재는 아픔 또한 느끼지 못했다.

사랑조차 느끼지 못하지만 따뜻했던 그 사람의 죽음을 앞에서 본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잊힐 수가 없다. 또한, 그 사람을 위해서 기억하며 마음껏 아파할 수 없다는 게, 눈물을 보낼 수 없다는 게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 어린 소년에게 그 당시 감정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었다. 그리고 단지 토닥거려주고 싶었다. 감정을 알려주고 싶었다.

우리는 감정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네.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감정은 살아있는가?
-...
감정이 살아있다는 말 자체가 모호할 수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감정은 각자마다 다르다. 각자가 자신의 감정을 깨워야한다. 감정 표현 불능증인 윤재와 감정을 느끼는 우리는 감정에 대한 생각은 다르다. 그러나 우리의 감정이 살아있다고는 확신할 수 없다.

하나의 사례를 생각해보자. 무더운 날씨에 아주 달콤한 아이스크림이 있다. 어린 아이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방방 뛸 것이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갈수록 주변의 시선을 느끼며 점잖으려고 애쓴다. 이는 아주 사소한 사례이지만 이와 같이 우리 사회에서는 있는 감정을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을 숨기려 하지, 절대 꺼낸 적은 없을 것이다. 있는 감정을 억제하려는 이 상황 속에서 감정이 살아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때로는 꿈틀거리는 감정을 밖으로 표출하는 것도 필요하다.

무더운 한여름 밤, 여러분의 꿈틀거리는 감정을 꺼내줄 윤재의 이야기, <아몬드> 들어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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