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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심재철 의원과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포럼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 건국 70주년 맞짱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건국 70주년 맞짱 토론회 참석한 김병준 위원장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심재철 의원과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포럼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 건국 70주년 맞짱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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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도 1948년 건국을 당연시해서 받아들였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이 14일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과의 인터뷰에서 한 발언이다. '건국절'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보수야당은 비슷한 방어 논리를 폈다. '1948년 8월 15일 건국'을 이명박·박근혜 정부만이 아니라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도 받아들였다는 주장이다. (관련기사 : 김병준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1948년 건국 당연시 해")

근거는 두 대통령 모두 8월 15일 광복절 기념 축사에서 '건국'을 언급했다는 것이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8년 8월 15일 '대한민국 50년 경축사(제2의 건국에 동참합시다)'를 발표했다. 그는 "오늘은 광복 53주년 기념일이자, 대한민국 정부수립 50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날"이라며 "대한민국 건국 50년사는 우리에게 영광과 오욕이 함께 했던 파란의 시기였다"라고 말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2003년 8월 15일 '제58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58년 전 오늘,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에서 해방되었다"라고 입을 열었다. 이어 "3년 후에는 민주공화국을 세웠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를 두고 김대중·노무현 두 전임 대통령이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의 건국절로 인식했다고 볼 수 있을까? 혹은 이 발언을 1948년 8월 15일이 대한민국의 건국절이라는 주장의 근거로 사용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김병준 위원장의 주장은 두 전임 대통령의 발언 맥락을 곡해한 '거짓'에 가깝다. 두 전임 대통령은 대한민국 건국 과정에서 1919년 3·1운동이나 임시정부 수립을 매우 중요한 사건임을 수차례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 발언들을 복기해보면, 두 대통령이 "1948년 건국을 당연시했다"는 주장에 어폐가 있다는 점을 금세 알 수 있다.

[김대중] "국민의 정부, 임시정부 정통성 받드는 유일 합법 정부"

2003년 11월 3일 오후 김대중도서관 개관식에서 인사말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
 2003년 11월 3일 오후 김대중도서관 개관식에서 인사말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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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부는 여러분이 만든 정부입니다. 3·1선열들에 의해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받드는 유일한 합법 정부입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8년 3월 1일, '제79주년 3·1절 기념사(3·1운동의 대화합 정신으로 국난극복)'에서 "우리 국민은 대한제국이 멸망한 후 9년 만에 일어난 3·1운동의 결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상하이에서 수립했다"라며 "놀라운 것은 새로 수립된 정부가 왕정복고를 지향한 정부가 아니고 민주주의를 지향한 민주공화국인 '민국'이었다는 사실"이라고 화두를 던졌다.

대한제국 멸망 후, 우리 국민의 손으로 '민주공화국' 정부를 '수립'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어 당시 정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받드는 유일한 합법 정부"임을 천명했다.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이 임시정부로부터 법통을 이어왔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슷한 발언은 무수히 많다. 1999년 8월 15일 '광복절 제54주년 경축사(희망과 번영의 새천년을 열어나갑시다)'에서는 "우리 국민은 끝까지 좌절하지 않았다"라며 "마지막까지 임시정부의 법통과 간판을 지켰다"라고 말했다.

2000년 3월 1일 '제81주년 3·1절 기념사(3·1 정신 계승으로 5과업 완수)'에서는 "민주주의를 기본이념으로 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했다라고 설명한 뒤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을 인용했다. 이어 "국민의 정부는 이러한 뜻과 일치하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생산적 복지를 추구하고 있다"라며 "3·1운동 정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 받들고 있는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2000년 6월 26일 '백범기념관 기공식 연설(백범정신 되살려 민족 대도약)'에서는 "해외에 임시정부를 만들어 해방의 그날까지 그 법통을 지켜온 것도 우리 민족 뿐"이라며 "선생이 지켜내신 임시정부의 법통은 대한민국 헌법의 전문으로 계승되었다"라고 분명히 했다.

[노무현] "참여정부는 임시정부의 자랑스러운 법통 위에 서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자료사진)
 노무현 전 대통령 (자료사진)
ⓒ 노무현공식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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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는 또한 우리 역사상 최초의 민주공화제 정부였다. 우리의 민주헌정사는 임시정부로부터 비롯되고 있다. 임시정부는 일본 제국주의의 혹독한 탄압을 받아 상해에서 항주, 중경 등지로 이동하면서도 그 법통을 굳건히 지켜왔다. 오늘의 참여정부는 바로 임시정부의 자랑스러운 법통 위에 서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4월 1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84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임시정부는 역사상 최초의 민주공화제 정부"라고 규정한 뒤, "민주헌정사는 임시정부로부터 비롯되"었으며 "참여정부는 임시정부의 법통 위에 서 있다"라고 명확히 했다. 대한민국 정부의 출발점을 임시정부의 수립부터로 본 것이다.

같은 해 7월 10일, '한중 경제인(상하이) 초청 오찬 연설'에서는 "저는 오늘 오전, 매우 의미 있는 두 곳을 방문했다"라며 "그 한 곳은 대한민국 정부의 법통이 시작된 임시정부 청사"라고 언급했다. 2004년 9월 15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사업회 창립총회 축하 메시지'를 통해서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독립운동의 중심으로서 일제의 탄압을 이겨내고 조국 광복을 이뤄냈다"라며 "참여정부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자랑스런 법통 위에 서 있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2005년 3월 1일 '제86주년 3·1절 기념사'에서는 "3·1운동은 참으로 자랑스러운 역사"라고 평가하며 "상해임시정부에서 오늘의 참여정부에 이르는 대한민국 정통성의 뿌리가 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정부의 시작을 '상해임시정부'라고 인식한 것이다.

무엇보다 건국절 논쟁이 한참이었던 당시, 퇴임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 논란에 대해 직접 자신의 생각을 밝힌 바 있다. 2008년 8월 15일 봉하마을에서 노 전 대통령은 청중의 질문에 "광복일이면 광복일이고 건국일이면 건국일 하나를 쓰는 것이 맞지 않겠느냐"라고 반문한 뒤 "건국은 광복에 좀 따라오는 것 같지 않느냐"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어 "이미 그 이전부터 단군왕검이 건국은 해놨고, 그 뒤에 수없이 건국해왔다"라며 "(19)48년 그 날(8월 15일)은 우리 정부를 수립한 날"이라고 이야기했다. "침략당하기도 하고 우여곡절이 있지만, 국가는 영속적으로 존재해 온 것"이라며 "정부수립한 날을 왜 건국이라고 하느냐, 그런 문제제기를 하는 분들이 계실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19)48년 정부수립의 정통성을 강하게 강조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라며 "<조선일보>도 거기에 해당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건국의 업적을 부정하는 사람은 잘 없는데, 끊임없이 정통성이나 정당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어 왔다"라며 "그것은 그 세력의 평가이지, 건국절과는 별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노 전 대통령은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려고 하니까 또 다른 차원의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학계] "학문적 논쟁의 대상 아니야"

2003년 11월 3일 오후 김대중도서관 개관식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2003년 11월 3일 오후 김대중도서관 개관식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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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절 논란이 본격화된 시점을 살펴보면 문제는 보다 명확해진다.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지정하자는 주장은 2006년 이영훈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가 <동아일보>에 칼럼을 기고하기 전까지 공론장에서 논의된 바 없다. 그 전까지 정부수립이라는 말과 건국이라는 말은 혼용되어서 쓰였다.

현대 사학계에서는 건국을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일련의 과정으로 인식한다. 대한민국 건국 과정에서 1948년 8월 15일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중요한 변곡점이 그 외에도 많기 때문이다. 1948년 8월 15일이 대한민국 정부수립일이라는 건 이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지만, 이를 '건국절'로 지정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뜻이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셋째 아들이기도 한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은 지난 2016년 8월 18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김용태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김대중·노무현 대통령도 1948년 건국을 인정했다'는 취지로 발언한 데 대해서 "늘 하듯이 그 분들이 또 억지주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홍걸 의장은 "두 분 대통령(김대중·노무현)께서 건국이라는 표현을 쓰신 적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두 분 모두 다 1948년이 대한민국 원년이라는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는 시도에 대해서는 분명히 안 된다는 부정적인 얘기를 하셨다"라고 못을 박았다.

김 의장은 또한 "정부 수립을 때에 따라서는 건국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라면서도 "문제는 아예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고 건국절을 공식적으로 만들겠다는 식의 노골적인 시도"라고 말했다. 그는 "건국절이라는 건 말이 안 된다. (건국절이라는) 말이 그 당시에는 있지도 않았다"라고 덧붙였다.

역사학자인 심용환 성공회대학교 외래교수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두 대통령이 보통명사인 '건국'을 말했다고 해서, 국경일 '건국절'을 인정했다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상용어와 전문용어를 뒤섞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라고 평했다. 그는 "두 대통령께서 '건국'을 이야기한 것은, 대한민국 국격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정부 수립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것"이라며 "4대 국경일을 통해 규정된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변한 적이 없다"라고 설명했다.

심 교수는 이어 "이승만 전 대통령이나 박정희 전 대통령 심지어 전두환 전 대통령 중 누구도 대한민국 헌법을 고칠 때 건국과 관련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라면서 "하다못해 새로운 주장을 들고 나오려면 납득할 만한 이유를 대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다"라고 한탄했다. 그는 "1919년을 특정해 건국절로 지정할 수 없듯,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지정하는 것 역시 우스운 이야기"라며 "학문적으로 논쟁의 대상이 아닌 걸 자꾸 논쟁하고 있다"라며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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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김대중, #노무현, #건국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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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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