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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2차 대체: 14일 오후 2시 25분]


자신의 수행비서를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조병구)는 14일 오전에 열린 선고공판에서 "위력에 의한 성폭력으로 보기 어렵다"라면서 이 같이 판단했다.

재판부, 위력 존재 자체는 인정했지만

정무비서에 대한 성폭력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14일 오전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 성폭력 혐의 무죄 받은 안희정 정무비서에 대한 성폭력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14일 오전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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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이었던 '위력'과 관련해 "피고인이 유력 정치인이고 차기 유력 대권주자로 거론되며, 도지사로서 별정직 공무원인 피해자를 좌지우지할 위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라고 했다. 그러나 피해자를 상대로 한 간음·추행 과정에서는 이런 위력은 행사되지 않았다고 봤다.

우선 재판부는 피고인이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행사해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는지 판단하기 위해선 범행 전후 사정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범행 직후 피해자가 보인 '태도'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최초 성관계가 있었던 러시아 출장 직후를 언급하며 "피해자는 당시 바닥을 쳐다보며 중얼거리는 방식으로 거절했다고 하지만 피해 당일 저녁 피고인과 와인바에 가거나 가식적인 태도를 취할 필요가 없는 지인에게도 피고인을 존경하는 마음을 담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라면서 "단지 간음피해를 잊고 수행비서의 일로서 피고인을 열심히 수행하려 한 것뿐이라는 피해자 주장에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라고 판단했다.

피해자가 성폭력 피해를 공개적으로 고발하게 된 결정적 계기였던 마지막 성관계에 대한 판단도 마찬가지였다. 피해자는 '미투운동(성폭력 피해 공개 고발)'이 활발히 벌어졌던 지난 2월 25일 안 전 지사가 서울의 한 오피스텔로 자신을 불러 심리상태를 확인한 뒤 또다시 성폭행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재판부는 "당시 피해자가 미투 운동을 상세히 인지하고 있었고 피고인과 그와 관련된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만 뒤이어 피고인이 '씻고 오라'고 하자 샤워를 하고 왔다"라면서 "성적 주체성과 자존감이 결코 낮다고 볼 수 없는 피해자로서는 적어도 이러한 행위가 미투 운동의 사회적 가치에 반한다고 언급하거나, 오피스텔 문을 열고 나가는 등 최소한의 회피와 저항을 할 수 있었을 것임에도 그러지 않았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종합해보면 적어도 피고인이 어떤 위력을 행사했다거나 피해자가 이에 제압을 당했다고 볼 만한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라고 결론 냈다.

별다른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피해자가 상황을 회피하고 현실을 부인하는 태도를 보인 것이라는 검찰 측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일견 피해자가 신빙성이 떨어지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성폭력 피해나 2차 피해로 인한 것인지, 혹여나 성적인 길들이기로 학습된 무기력 상태에 빠진 것은 아닌지, 해리나 심리적 얼어붙음 같은 현상을 겪은 것은 아닌지, 부인과 억제의 방어기제를 통해 버텨온 것은 아닌지 살펴봤으나 제반 증거를 봤을 때 피해자가 이러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여성이 거부 의사를 말하지 않으면 왜 동의했다고 추단되어야 하는가"라는 검찰 측 주장도 기각됐다. 재판부는 "명시적인 동의의 의사를 표명한 적이 없고 내심에는 반하는 상황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현재 우리 성폭력 범죄의 처벌 체계 하에서는 이런 사정만으로 피고인의 행위가 처벌의 대상이 되는 성폭력이라고 볼 수 없다"라면서 "결국 이 사건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된다"라고 말했다.

희비 엇갈린 법정... 안희정 "다시 태어나도록 노력"

정무비서에 대한 성폭력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14일 오전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1심 선고공판 출석하는 안희정 정무비서에 대한 성폭력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14일 오전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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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공판은 어느 때보다 방청 경쟁이 치열했다. 선고 시각을 5시간 앞둔 오전 5시 30분께부터 출구 앞에 줄이 생겼을 정도였다. 일반 시민에게 허용된 40개 방청석은 오전 7시 20분께 동났다. 오전 10시 10분부터 입장을 시작한 시민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대기했다. 10시 32분께 안 전 지사가 피고인석에 자리 잡은 순간부터는 법정 안에 말소리가 잦아들고 긴장감이 고조됐다.

재판부가 안 전 지사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을 때는 일부 지지자들이 환호성을 내지르기도 했다. 이들은 박수와 함께 "완전 무죄다"라고 외치며 법정을 빠져나갔다. 반면 피해자를 지원해온 여성단체 관계자 등은 침통한 표정이었다.

피해자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변호인인 장윤정 변호사를 통해 "재판부에서 피해자다움과 정조를 이야기 했을 때 이미 결과가 예고됐을지 모른다"라면서 "굳건히 살아남아 안희정의 범죄 행위를 법적으로 증명할 것"이라고 전했다. 또 "미약한 저와 함께 하는 분들 덕에 살아있다"라면서 "평생 감사한 마음을 간직하며 저보다 더 어려운 분들께 보답하며 살겠다"라고 덧붙였다.

안 전 지사는 짧게 입장을 밝히고 법원을 떠났다. 선고 직후 취재진과 만난 그는 "많은 실망을 드려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라면서 "다시 태어나도록 더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앞서 서울서부지방검찰청 여성아동범죄조사부는 지난해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업무상 위력을 이용해 자신의 수행비서를 수차례 간음·추행한 혐의로 안 전 지사를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지난달 27일 결심공판에서 "권력형 성범죄가 자리 잡지 못하게 해달라"며 징역 4년을 구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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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안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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