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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가씨>에서 본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영화 후반부에서, 후지와라 백작(하정우 분)은 코우즈키(조진웅 분)에게 붙잡혀 고문을 당하게 된다. 그는 재치를 발휘하여 담배를 피우고 싶다며 잠깐의 시간을 번다. 그리고 담배에 포함된 수은을 기화시켜 공기 사이에 퍼지게 하여 코우즈키를 쓰러뜨린다.

워낙 신기한 방법으로 사람을 쓰러뜨리니 이것이 실제로 가능한 것인지, 아니면 영화적 허용이 들어간 장면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아서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한동안 그 장면을 기억해 두고 곰곰이 생각을 했다.

최근 읽은 책에 따르면, '아가씨'에서 본 사건은 실제로 가능한 일이었다. 수은에 열을 가한 뒤 증기를 흡입하도록 하는 살인이 소개되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수은을 흡입한 상대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곧 죽는다고 하니, '아가씨'는 과학적인 고증에 충실한 작품이었다.
 
 온도계와 몇몇 배터리에 들어 있는 수은은 손쉽게 이용이 가능하죠. 섭취하는 경우보다는 증기를 흡입할 때 효과가 더욱 강력합니다. 수은은 섭씨 40도 정도로 끓는 점이 낮습니다. 수은을 함유하고 있는 물을 끓이면 됩니다. 증기가 공기에 들어가면 피해자는 그 증기를 흡입하고 상당히 빠르게 사망할 것입니다. 증상은 구역, 구토, 복통, 침 흘림, 열, 기침, 숨참, 입에서 느껴지는 금속의 맛 등입니다. 반응은 거의 즉각적입니다. -307P
  
추리,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게 되는 궁금증이 있다. '사람이 이렇게 죽는게 말이 되나? 아니, 애당초 사람 맞나?', '아무리 탐정이라도 이렇게 시간이 오래 지났는데 흔적만 보고 사건을 다 아나?'와 같은, 추리 과정에 대한 과학적인 의문이다.

숙련된 추리소설가나 게임 시나리오 작가라고 해도 모두 과학에 능통한 것은 아니기에, 많은 책을 읽은 독자라면 책을 읽다가 어색함을 느끼는 부분이 있다. 이런 의문들이 잠깐, 아주 가끔씩 나오면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하지만 중요한 트릭에서 엉성한 실수가 등장하거나 반복해서 뇌리에 남으면 작품 자체에 대한 이해를 떨어뜨리게 된다.
 
 미스터리작가를위한법의학Q&A
 미스터리작가를위한법의학Q&A
ⓒ D.P.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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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책이 있다. 앞서 내가 읽은 책은 바로 '미스터리 작가를 위한 법의학 Q&A'다. 책의 주제가 참 독특한데, 이 책의 내용은 범죄를 꿈꾸는 사람이 아니라면 보통 고민하지 않을 상황에 대한 해설이다.

책의 제목이 Q&A인 만큼, 책의 내용은 질문과 답변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떻게 하면 약을 활용해서 조심스럽게 사람을 죽이고, 검시관의 눈을 피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과 답을 제공한다. '결핵이 있는 사람을 질식시키면 베개에 핏자국이 남나요?', '복부 팽만과 사망을 초래하는 독극물이 있나요?'처럼 말이다.

물론 이 책은 범죄 교사를 위한 책이 아니다. 애당초 책 머리말 부분에 '이 책은 범죄 활동의 교본으로나 누군가에게 해를 끼칠 목적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됩니다'는 글이 쓰여 있다. 미스터리와 스릴러를 포함하여, 모든 장르의 작가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 썼다고 밝히고 있다.

책의 머리말에 따르면, 미스터리와 스릴러 이야기의 세상은 보통 현실 세계다. 따라서 현실 세계의 법칙들이 작중 현실에 적용되어야 한다. 작가는 현실에 대해 꼼꼼하게 연구조사를 거쳐 세부적인 부분까지 틀린 부분 없이 표현해야 한다.

이를 어기고 잘못된 사실을 설명하거나 지나치게 편리한 해결을 추구하면 등장인물과 줄거리를 모두 망쳐버리고 만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필요한 의학적 지식은 얻기 어렵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작가들에게 법의학적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해 주었다. 모든 작가들이 새롭게 얻은 지식을 활용하여 더 그럴싸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의학적 합리성이라는, 가장 핵심적이지만 알기 어려운 내용을 설명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없어서는 안 될 책이다.

책의 챕터 1은 의사, 병원, 질병, 손상에 대해 다루고, 2는 본격적인 추리의 핵심인 살인과 상해에 대해 다룬다. 각각의 챕터에는 외상성 손상과 그 치료, 환경에 의한 손상과 그 치료, 의사, 병원 및 응급구조사, 약물, 질병과 그 치료(챕터1), 총, 칼, 폭발물, 기타 살상무기의 효과, 독극물과 약물, 의학적 살인(챕터2)와 같이 주제별로 정리된 내용이 들어 있다.

책의 분량이 500페이지 가량이고, 질문하는 작가도 답변하는 저자도 정말 꼼꼼하게 범죄에 관한 내용을 질문하기 때문에 이 책에 담긴 상당수의 살인 방법들은 아마 다른 매체에서 목격했을 확률이 높다. 일부 범죄 영화나 만화에서는 콘크리트 안에 시체를 숨기는 은닉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와 관련된 질문도 있다.
 
Q. 콘크리트 안에 넣고 굳힌 시체는 미라화되나요?
A. 시체는 해골화될 수도 있고 미라화될 수도 있습니다. (중략) 시체가 콘크리트 아래에 매장되면 시체에 도달하는 산소의 양이 적어지고 이에 따라 부패의 속도가 늦어지거나 아예 정지될 수 있으므로 미라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또한 포식동물과 날씨의 영향도 없을 테고요. -402P

이외에 저자는 '어깨가 탈구되면 어떤 신체적 제한이 있나요?'와 같은 신체에 관한 문제부터, '심각한 우울증을 치료할 때 충격 요법은 효과적인가요?' 같은 정신에 관한 문제, '사망진단서에는 어떤 정보가 들어가나요?'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를 골고루 다루고 있다.

저자는 과학수사 드라마로 유명한 'CSI 마이애미'에 자문을 했던 자문의이면서 동시에 전미 미스터리 작가 협회 회원이다. 이러한 약력 덕분에 자세한 의학적 분석과 검시 체계와 같은 웬만해선 알기 어려운 내용에 대한 답변에 능통하다.

때문에 이 책은 미스터리, 추리 소설 작가와 팬뿐 아니라 의학이나 수사에 관심이 많은 일반 독자들도 재밌게 읽을 수 있다. 물론 의학적 진단이나 치료, 범죄를 위해서는 사용하지 말 것을 권한다.

미스터리 작가를 위한 법의학 Q&A

D. P. 라일 지음, 강동혁 옮김, 강다솔 감수, 들녘(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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