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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병원은 사람병원과 달리 동물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들도 꽤 드나든다. 동물이 궁금해서 몇 시간씩 두리번거리며 앉아있는 학생도 있고, 스님이 맞나 의심스러운 사람이 탁발을 빌미로 문을 열고 서서 막무가내로 목탁을 두드리기도 한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젊은 사람과 나이 든 분 몇이 인쇄물을 내밀며 지구의 종말이 왔으니 대화를 나누자고 들어오기도 하고 하루가 지루해진 이웃 가게 사장님들이 시간을 보내러 오기도 한다. 어떤 이유로든 나를 찾아오는 손님은 대부분 감사하다. 가끔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부드럽게 넘어가지만 이날은 너무 당황스러웠다.

"여 아무도 없능교. 털 깎으러 왔는데."

 무자비하게 뜨거운 대구의 여름 어느 날, 온 몸의 털이 덥수룩하게 엉킨 회색 차우차우가 보라색 혀를 쭉 빼고 헉헉 거리며 목줄을 잡은 남자를 따라 들어왔다. 사진 속의 개가 차우차우는 아니다.
 무자비하게 뜨거운 대구의 여름 어느 날, 온 몸의 털이 덥수룩하게 엉킨 회색 차우차우가 보라색 혀를 쭉 빼고 헉헉 거리며 목줄을 잡은 남자를 따라 들어왔다. 사진 속의 개가 차우차우는 아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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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비하게 뜨거운 대구의 여름 어느 날, 온 몸의 털이 덥수룩하게 엉킨 회색 차우차우가 보라색 혀를 쭉 빼고 헉헉 거리며 목줄을 잡은 남자를 따라 들어왔다. 남자는 병원문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문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우리를 불렀다.

예약 리스트에서 오후 4시 차우차우 미용 예약을 얼핏 본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미용사가 안으로 들어오시라고 말했다. 남자와 개가 실내로 들어오고 병원 출입문이 닫히자 갑자기 뭐라고 형용하기 어려운 냄새가 났다. 오랫동안 목욕을 하지 못한 개의 냄새 같기도 하고 얼핏 술에 취해 보이는 남자에게 나는 냄새 같기도 했다. 남자는 전날 오후 전화로 예약을 했으니 털을 밀어 달라고 했다.

내가 미용사는 아니었지만 한 눈에 봐도 개의 크기와 털의 상태가 미용사 혼자 처리하기에는 불가능한 상태였다. 참고로 차우차우는 진돗개보다 키가 조금 작지만 살집은 훨씬 많고 성격이 강한 종이다.

전화로 예약을 받았던 미용사가 남자와 얘기를 시작했는데 나이가 어리고 성격도 여린 여자 미용사가 술 취한 중년의 남자와 제대로 대화를 할 수 있을지 걱정 되었다. 나는 옆에 서서 일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말이 몇 마디 오고 가는 듯 하다가 느닷없이 남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전화로는 이 금액이었는데 왜 지금 와서 금액이 바뀌냐는 것이 요점이었다. 작은 반려동물 미용을 전문으로 하는 미용사가 전화로 상담할 때는 몸무게나 털길이 정도만으로 금액을 얘기 하는데, 막상 개를 마주하고 보니 개의 크기와 털 상태가 집안에서 사는 반려동물의 그것과는 너무 달라서 그랬던 것이다.

급기야 남자가 전화 상담 때 말한 가격으로 하라고 소리를 지르자 미용사가 쩔쩔 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성질있는 큰 개를 다룰 자신이 없는 표정이었다. 나는 녀석의 성격을 정확하게 파악하려고 녀석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일단 털 상태를 자세히 보려고 녀석을 만지려하자 입을 벌리고 헐떡이던 녀석이 갑자기 입을 다물고 낮게 으르렁대며 경계를 했다. 엉덩이 쪽에 손만 살짝 대었을 뿐인데 녀석은 예민했고 털은 바리캉 날이 들어갈지 알 수도 없을 만큼 단단히 뭉쳐 있었다.

이런 녀석을 마취도 하지 않고 털을 밀 수 있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이 상황을 주인에게 정확히 설명해야 했지만 문제는 대낮부터 한 잔 걸친 듯 보이는 주인이 상대방의 말을 전혀 귀담아 들을 생각이 없다는 데 있었다. 시비가 생길 것 같았지만 내가 나서야 했다.

"손님, 지금 이 개의 털이 많이 엉켜있고 만지면 으르렁 대기까지 하니 마취를 하지 않고서는 털을 깎기가 불가능 할 것 같습니다."

남자는 나의 말에 갑자기 불쾌한 표정을 짓더니 대뜸 말한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오? 전화로 6만원이라고 해서 왔더니 돈을 더 내놓으라고 하질 않나 갑자기 마취를 하라니. 돈 벌려고 못하는 소리가 없네."

이 남자는 우리가 마취를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고 제가 살짝만 만져도 으르렁거리네요. 자기 몸에 손대는 걸 이렇게 싫어하는데 어떻게 털을 깎겠어요?"
"아니, 개가 자기를 만지는데 으르렁거리는 게 당연하지 가만히 있는 개도 있소?"


남자가 코 앞에서 소리를 지르니 썩은 술 냄새가 났다. 나는 이 분과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느꼈다. 지금껏 살면서 한 번도 술에 취한 남자와 이성적인 대화에 성공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미용사가 다치면 미용을 못합니다. 마취를 해서 미용 하는 개도 있다고 말씀 드리는 겁니다."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자는 버럭 화를 냈다.

"무슨 말이 그렇소? 털 깎는데 마취를 한다니? 그리고, 돈을 그렇게 벌고 싶으면 '마취비가 얼마다'라고 먼저 말을 해야지 미용하는데 무조건 마취를 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이 어딨소?"

남자는 점점 언성을 높여갔다. 고약한 냄새는 점점 더 진동했다.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수의과 대학에서는 왜 가르쳐 주지 않았을까. 술 취한 고객이나 막무가내 고객을 잘 응대하는 법을 지금이라도 가르친다면 거기가 어디라도 당장 달려가 배울 것 같았다.

"개를 만지면 으르렁 거리는데 마취 안 하고 무슨 수로 털을 깎습니까?"
"내가 개를 3마리도 더 키워봤는데 마취하고 털 깎은 적은 한 번도 없어. 그런 나한테 마취비가 얼마라고 얘기를 해야지 무조건 마취를 해야 한다고 소리를 지르면 어떡하겠다는 거야! 이 X같은 년아!!"


남자는 소리 지르는 걸로 분이 안 풀리는지 그렇게 애지중지한다는 '개'를 욕으로 쓰기 시작했다. 이 남자는 무엇 때문에 화가 난 것일까. 마취비가 부담스러우면 그렇다고 조용히 설명하면 될 것을. 나는 더 이상의 대화가 무의미하다고 생각되어 남자를 병원에서 내보내기로 했다.

"소리 그만 지르고 나가주세요. 일 하는데 방해가 됩니다."
"니가 안 그래도 나간다, X같은 병원 전국에 소문 다 낼 거다. X같은 년. 다시는 여기 오나 봐라. 이 미친 년."
"다시는 오지 마세요. 그리고 녹음하고 있으니 막말하지 마세요."


나는 감정조절에 장애가 있는 남자들의 추함을 많이 봐 왔기에 그다지 놀라지 않고 대처했으나 직원들은 얼어붙은 채로 서 있었다. 옆에서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나이 지긋한 여자 손님이 일어서서 남자를 바깥으로 안내했다.

"밖에 나가서 이야기하세요, 사장님."

'사장님'이란 호칭을 들은 남자가 약간 이성을 찾는 듯 개의 목줄을 거칠게 끌고 바깥으로 나갔다. 사태를 진정시키려고 나선 여자 분과 남자가 바깥에서 잠시 옥신각신하다 남자가 돌아서서 가는 것을 보고 여자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한숨을 내 쉬며 병원으로 들어왔다. 그때 남자가 다시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이 X같은 년. 내가 이 병원에 다시는 오나 봐라."

개의 목줄을 당기고 얘기하던 남자는 개가 버둥거리는 바람에 더 이상 들어오지 못하고 유리문 사이로 소리를 질렀다. 나는 제발 말한 대로 실천해주기를 바란다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남자는 버둥거리는 개에게 욕을 해대면서 트럭에 실었다. 누구도 말리는 사람 하나 없이 남자의 차가 떠나고 병원은 일상의 평온을 되찾았다. 처음부터 한 쪽에 서서 아무 말 없이 지켜보기만 하던 직원이 한 마디 했다.

"저 분 술을 꽤 마신 것 같은데 차를 어떻게 몰고 왔죠? 개가 불쌍해."

우리 모두는 같은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남자는 버둥거리는 개에게 욕을 해대면서 트럭에 실었다.
 남자는 버둥거리는 개에게 욕을 해대면서 트럭에 실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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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딩이 두 아들녀석의 엄마이자 20년동안 이웃의 반려동물들과 동고동락 중인 수의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