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 고시 이후 '짜장면'은 표준어의 지위를 잃어버렸다. 대신 '자장면'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짬뽕'은 표준어인데, '짜장면'은 왜 안 되냐는 사람들의 거센 항의가 빗발쳤다. 사람들은 권력이 정해놓은 방침을 무조건 따르지는 않는다. 중국집도 메뉴판의 표기를 쉽게 바꾸지 않았고, 중국집에 가서 '자장면'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드물었다.

2011년 8월 31일 국립국어원은 '자장면'과 함께 '짜장면'도 복수표준어로 인정했다. '짜장면'이 '틀린 외래어'라는 오명을 벗고 표준어의 지위를 되찾게 된 것은 무려 25년 만이었다. 언어의 질감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노력 덕분에 우리의 '짜장면'은 언어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언어가 되었다. 이 날을 '짜장면 광복절'로 기념하자는 목소리가 사람들 사이에서 번져갔다.

짜장면을 직접 만든 김씨... 한 그릇의 희망

 영화 <김씨표류기> 스틸 컷.

영화 <김씨표류기> 스틸 컷. ⓒ 시네마서비스


영화 <김씨표류기>에서 짜장면이란 절박하게 찾은 유일한 '희망'이었다. 빚더미에 내몰려 한강 다리에서 자살을 시도한 남자 김씨가 불시착한 곳은 한강의 밤섬. 21세기 한국판 <걸리버 여행기>의 주인공으로 낙점된 것이었다. 밤섬에서 바라보는 높은 건물과 자동차는 전형적인 '강 건너 불구경'의 세상이었다. 그런데 그가 져버린 문명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강력한 매개자가 나타났다. 그것은 바로 섬 주변을 산책하다 우연히 발견한 비닐봉지 속의 짜장 분말 스프였다.

행동하는 자에게 축복이 있다고 했다. 남자 김씨에게 짜장 라면 스프와 환상의 콤비를 이룰 면을 만들겠다는 꿈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어쩌다 사람이 살지 않는 자연보호구역으로까지 떠밀려와, 한 가닥의 면을 뽑기 위해 비둘기 똥무더기 속 옥수수 알갱이와의 감격스러운 대면식을 갖게 됐으니, 짜장면을 먹겠다는 이 절박함은 발상의 전환으로 이어져, 비둘기 똥에서 씨앗과 비료라는 농사의 두 핵심 요소를 동시에 획득하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었다.

어딘가에 갇힌 사람들은 밤섬에만 있는 건 아니다. 방문 밖으로 나오지 않는 사람들. 얼굴에 화상 자국이 있는 여자 김씨는 방안에 설치된 망원경으로 세상을 구경해왔다. 어느 날 원시인 추장 같은 남자 김씨를 발견하고서 그녀는 신기한 듯 관찰하기 시작했다. 여자 김씨는 거액의 배달비를 지불해 밤섬으로 짜장면을 배달시켰지만, 밤섬에 도착한 한 그릇의 짜장면은 남자 김씨의 환대를 받지 못했다. 남자 김씨는 배달기사가 내민 짜장면 대신 단무지만 챙겼다.

그렇다. 희망이란 쉽사리 배달되는 것이 아니다. 그건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섬 안에 갇혀 있지만 한 그릇의 희망이 온기를 잃지 않는다면, 그곳은 그만의 세계로 바뀐다. 어디에 있든, 어떤 상황에 던져지든, 짜장면 같은 희망만 있어준다면, 불모의 땅에 씨앗을 뿌릴 수 있다. 비바람을 동반한 태풍 앞에서도 결코 포기와는 손을 잡지 않는다. 결과보다 과정을 사랑하게 되어, 쉽게 얻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럴 때 사람은 진실해진다. 간절함이 생긴다. 이 막막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아주 거창한 게 필요한 건 아니다. 짜장면 한 그릇의 포만감으로도 충분하다.

김일성을 연기한 무명 배우, 그에게 짜장면이란

 영화 <나의 독재자> 스틸 컷.

영화 <나의 독재자> 스틸 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나의 독재자>에서도 짜장면은 그 윤기 나는 검은 자태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지하 취조실에 갇힌 한 무명의 배우가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은 짜장면. 그에게 연기를 지도하는 대학 교수는 먹고 싶은 갈망을 담아 진정성 있게 '짜장면'이라 말해보라고 일렀다. 이들은 7·4 남북공동성명을 위해 기획한 리허설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대통령의 상대역으로 무대 위에 설 김일성 배역을 연습 중이었다.

짜장면을 비운 그릇이 책상 위에 쌓여갈수록 무명의 배우는 김일성의 외모를 닮아갔지만, 북한과의 협상이 무산되면서, 가상의 리허설 무대는 취소되었다. 김일성이 되었지만 설 곳 없던 무명의 배우는 배 한 척을 훔쳐 월북을 시도했다가, 경찰에 의해 체포되는 비극적 결말로 막을 내렸다.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보던 날, 체포된 아버지 때문에 시험장에 들어가지 못한 아들은 평생 자기 멋대로 인 아버지와 척을 두고 지냈다. 재개발 바람으로 아버지가 사둔 집값이 들썩이자, 빚을 청산할 절호의 기회를 잡기 위해, 아들은 정신요양원에 있는 아버지를 집으로 모셔왔다. 아버지와의 이상한 동거가 시작된 첫날, 그들 밥 상 위에 올라온 짜장면을 보고 아버지는 옛 기억에 잠겼다. 어느 날 짜장면의 이름을 절절하게 불렀던 그날 이후로 아버지는 진짜 '김일성'이 되었던 것이다. 자급자족을 실천하지 않는 아들에게 자아비판을 명령할 뿐, 아버지는 한 그릇의 짜장면을 쓸쓸히 바라보다 등을 돌렸다.

한 그릇의 짜장면에는 무명의 배우가 아닌 당당한 캐릭터로 무대에 서고 싶던 한 사람의 소망이 담겨져 있다. 김일성이라는 캐릭터를 소화해내기 위해 수없이 반복했을 대사들이 녹아 있다. 아버지의 현실과 배우의 꿈 사이에서 까맣게 타들어간 아버지의 마음이 검은 춘장의 향기로 얹혀 있다. 슬픈 악역으로 암울한 시대를 지나온 아버지의 자화상이 한 그릇의 짜장면 속에 버무려져 있다.

친숙한 음식, 한 그릇의 짜장면 속에 담긴 의미들

이해준 감독이 만든 이 두 편의 영화 속 공통점이 짜장면 말고 또 있는데, 대한민국 어디든지 달려가는 배달기사이다. <김씨표류기>에서 오리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 짜장면을 배달한 박영서 배우가 <나의 독재자>에서 같은 역할로 다시 등장한다. 짜장면과 짜장면 배달기사는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배달 민족의 산 증인이 아니던가. '철가방'이라는 신문명을 탄생시킨 배달기사가 없었다면, 짜장면의 명맥도 지금과 같은 위치를 차지하지는 못했을 터. 짜장면의 위상을 업그레이드시킨 배달기사는 이들 영화 속에서도 유머를 유발하는 독특한 표정 연기로 영화의 감칠맛을 한층 살려낸다.

 영화 <김씨표류기> 스틸 컷.

영화 <김씨표류기> 스틸 컷. ⓒ 시네마서비스


우리에게 짜장면이란 친숙하면서도 아주 특별한 음식이다.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가격에 어느 누구의 입맛에도 거슬림이 없다. 까다로운 격식 따위 필요 없고 노란 단무지 하나면 그만인 짜장면. 특별한 날에도 생각나고, 평범하고 지루한 날에도 떠오르는 한 그릇의 짜장면. 아이들 졸업식 날이나 이사를 하는 날, 사람들의 발걸음은 중국집으로 향한다. 밥하기 싫은 날에도, 밥만 먹기 따분한 날에도 한 통의 전화로 배달되는 짜장면은 허기진 뱃속을 든든하게 채워준다. 군대 갔다 휴가 나온 장병들의 영원한 로망이자 다이어트를 하는 여성들의 강력한 적이기도 하다.

얼마 전 우리의 짜장면은 위기에 처한 한 여성을 구하는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냈다.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던 한 여성이 112에 전화를 걸어 "짜장면 두 그릇을 갖다 주세요"라고 말했다. 위급한 상황임을 감지한 경찰은 남자친구한테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냐고 물었고, 피해자 여성은 '네' 라고 대답했다. 즉각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 여성을 구조했다. '짜장면 갖다 주세요'라는 말이 위기의 상황에서는 자신을 구해달라는 의미로도 활용된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짜장면

짜장면 ⓒ 김시연


생각해보면 어느 대중가요에 실린 가사처럼 짜장면은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 그 자체이다. 짜장면을 싫다고 말하는 어머니의 마음 속엔 한 젓가락이라도 더 짜장면을 자식에게 먹이고 싶은 애틋한 사랑이 묻어있다. 그뿐인가. 가난한 주머니를 찬 사람들에게도 짜장면의 문턱은 높지 않아 외식의 대명사로 불려진다. 푸짐한 면발이 품고 있는 기름지면서도 달달한 짜장 소스의 맛이 어우러져 보기만 해도 미소가 절로 나는 추억의 메뉴이다.

19세기 한반도에 처음 상륙한 짜장면은 원조격인 중국의 '차오장'과는 전혀 달라진 모습으로 변모해갔다. 중국 상인들에 의해 전해진 외래 문명이었지만 한국적인 상상력으로 진화해 '단짠' 풍미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 했다. 한 편의 영화 속에서도, 이 시대의 현실 속에서도 한 그릇의 짜장면은 '극적인 순간'을 연출해냈다. 영화 속 한 젊은이에겐 살아가야 할 희망이었으며, 무명의 배우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에겐 삶의 진정성이었다. 현실 속 폭력의 위험에 빠진 힘없는 여성에겐 SOS 구조신호였고, 언어의 주권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되찾은 광복이었다. 한 그릇의 짜장면 그 속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달달하고 짭조름한 추억들이 어우러져있다.

이해준 <김씨표류기> <나의 독재자> 짜장면 박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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