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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가 고3이다. 축구에 죽고 못 사는 아이는 체육학과에 가기로 결정했다. 이 무더운 여름 학교 체육관에서 선풍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바람에 땀을 말리며 운동을 한다. 방학 기간 동안 오전 10시에 시작해 오후 4시에 끝나는 운동량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채워나간다.

수시로 대학을 갈 예정이라 1학기 기말고사 내신 성적이 중요했는데, 아이는 큰 낭패를 경험했다. 학창 시절 중 가장 열심히 준비한 시험에서 답안지 체크를 미처 다하지 못한 실수를 하고 말았다. 세상이 무너진 듯 아이는 긴 한숨을 쉬었다. 다 포기해버리고 싶다는 말을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성적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이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공들인 만큼의 노력이 결과로 이어지면 좋겠지만 세상 일이 어디 그러니, 라는 말로 아이의 쓰린 가슴을 위로해보지만, 아이는 한동안 숯덩이 같은 낯빛으로 학교를 오갔다. 설마 포기하고 싶은 게 공부겠지, 다른 건 아닐테지, 라는 생각으로 며칠 아이의 낯빛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아이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불량한 성적표를 받은 학생은 성실한 학생일 수 없다는 사회적 시선에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아이의 주장대로 맞는 말이기는 했다. 고등학교 선생님들과의 면담에서 성적 말고는 걱정할 게 없는 학생이라는 말을 줄곧 들어왔다.

아이는 운동을 좋아해 1학년 때부터 학교 체대 입시반에 들어갔고, 연극부 동아리 활동을 했으며, 반장을 맡아 학급 활동도 열심히 했다. 지역 청소년 단체에서 청소년 지역 기자로도 활약했다. 이런 자신을 불성실한 학생이라고 한다면 아주 억울할 것 같다고 아이는 뾰로통한 표정까지 지었다.

그랬던 아이의 자신감이 기말고사 성적으로 반 토막이 나버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이란 성장의 한 과정이라고 아름답게 포장하다가도, 삼십 여 년 전 나의 고3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은 지금의 현실이 답답할 따름이다.

세상은 왜 이렇게 복잡하니 

김사과 장편소설 <미나>
▲ 김사과 장편소설 <미나>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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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과 작가의 장편소설 <미나> 속에는 숨 막히는 우리의 교육 현실이 그려져 있다. P시의 학생들은 복잡하고 다양한 사고 체계 대신 단 하나의 목표를 학습한다. 그것은 바로 "칸막이" 구조의 삶. 미래의 색채는 블랙과 화이트 단 두 가지뿐이다. 무엇보다 칸막이라는 시스템에 편입된 인간으로 존재하느냐가 중요한 관건이다.

저녁 시간 학원 앞을 서성거리는 아이들의 소비 수준을 감당해야 하는 건 P시에 사는 부모의 몫이다. 그래서 부모들은 낮은 임금과 부당한 대우를 묵묵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감당하지 않으면 사교육의 혜택도 받지 못하고, 고급 브랜드 아파트의 품위도 누리지 못한다. P시에서의 삶이란 칸막이의 질서에 편승하기 위해 소모적인 삶의 구심력을 잃지 않는 것이다.

수정은 이 시스템에 누구보다 잘 적응해온 학생이었다. P시에서의 희망이란 독자적인 노선보다 핵심적인 집단 속으로 융합되는 것임을 모르지 않았다. 그 밖의 대안들이란 패배자들의 위안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경쟁의 시스템에서 살아남기 위해 수정은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사건의 시초는 이러했다. P시에 사는 한 여고생이 시험 기간 중 독서실 옥상에서 자살을 했다. 친구의 죽음을 전해들은 미나는 답안지를 백지 상태로 제출했다. 단짝 친구였던 수정은 그런 미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미나가 불면증에 시달리며 학교를 자퇴하고 대안학교로 진학하게 되면서 겪는 수정의 불안한 심리가 이 소설의 중심에 서있다. 소설 제목을 보면 미나의 이야기일 것 같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소설은 미나를 바라보는 수정의 이야기이다.

수정은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는 친구의 죽음에서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낀다. 자살한 친구 때문에 괴로워하는 미나를 경멸한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제일 불안한 사람은 미나가 아니라 수정이다. 미나의 부재로 수정의 일상적인 균형은 무너진다. 그 무너짐은 심리적인 고립으로 이어져 수정은 점점 극단적인 자기 세계로 몰입한다.

입시 지옥의 학교생활에서 수정에게 미나는 유일한 소통의 창구였다. 사지선다형의 사고체계에 익숙한 수정에겐 소통과 단절이라는 선택지 이외의 다른 길은 없었다. 소통 할 수 없다면 그건 영원한 단절을 의미했다. 마트에서 산 칼을 넣은 배낭을 메고 수정은 미나의 집을 향해 걷는다.

세상의 처마 끝에 힘겹게 매달려 있던 한 친구의 죽음은 몇 겹의 불행으로 확장됐다. 친구의 죽음은 단순한 사고일 리 없다. 그건 실존의 문제였다. 좁은 칸막이의 시스템에 갇혀 파괴되는 인간성의 상실이었다. 한 여고생의 내면이 붕괴되는 과정을 쫓아가다보면 그곳엔 이 교육 시스템에 나약하게 길들여진 미숙한 한 아이가 있다. 수정이 친구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세상은 왜 이렇게 복잡하니? 왜 이렇게 단순하지가 않니? 나는 단순한데. 너도 단순한데. 세상은 너무 복잡해. 그리고 앞뒤가 안 맞아." (228쪽)

우리가 원하는 건 아주 단순한데

 성적이 무엇이길래 아이들은 자살을 하고, 내신이 무엇이길래 고3 학생들은 기말고사 시험지를 훔친다
 성적이 무엇이길래 아이들은 자살을 하고, 내신이 무엇이길래 고3 학생들은 기말고사 시험지를 훔친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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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원하는 건 아주 단순하다. 노력한 만큼 결실을 맺는 세상. 실수를 안 하는 것도 실력이라는 매서운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이기보다, 실수를 해도 회복할 기회를 주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경쟁보다는 협력의 가치를 배우고, 인간과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기초적인 소양을 익히는 것. 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데 질적인 도움을 주는 교육 제도의 개혁이 그토록 어려운 일인가.

과열과 균열. 그것은 우리 교육 현실의 가장 큰 문제적 징후였다. 서울 소재 대학으로 쏠리는 과열 현상과 그로 인한 부모의 경제적 부담과 학생들의 심리적 균열은 지난 반세기를 통해 반복돼온 우리 사회의 문제였다. 그 사이, 우리는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학생들을 지켜봐왔다. 이대로의 교육으로는 안 된다는 생각만을 반복했을 뿐, 실질적인 변화는 꾀하지 못했다.

성적이 무엇이길래 아이들은 자살을 하고, 내신이 무엇이길래 고3 학생들은 기말고사 시험지를 훔친다. 대학이 무엇이길래 고3 아이의 엄마는 학교 시험지를 빼내고, 입시가 무엇이길래 정권마다 달라져도 갑론을박이 분분하다.

분명한 건 지금의 교육 시스템이 학생과 학부모의 마음에 심리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배움의 현장에서 희망보다 불안을 느끼는 학생들이 있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이다.

좁은 칸막이 안에 들어가서 화이트칼라가 되는 삶을 최고의 삶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성적 말고 성실을 강조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일등 하는 사람이 아니라 성실한 사람이 잘 사는 사회를 만들기가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다. 성공보다 성장에 초점을 맞춘 교육제도를 구축하는 건 이 시대의 바람이다.

큰 아이는 오늘도 체육관에서 운동을 한다. 아이가 가방에서 꺼내는 체육복은 땀내로 범벅이 되어 시궁창 냄새마저 풍긴다. 기록적인 폭염으로 숨쉬기조차 힘든 요즘, 그보다 더 뜨거운 열정으로 자신의 꿈을 향해 땀을 흘리고 있을 수험생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수험생활 앞에 '지옥'이라는 수식어가 붙고, 이 사회를 '헬조선'이라고 지칭하는 조어가 유행하지만, 아직 우리들의 이상을 담아내지 못한 현실 앞에서 '지지 말자'고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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