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 데드 나잇> 영화 포스터

▲ <워킹 데드 나잇> 영화 포스터 ⓒ (주)엔케이컨텐츠


작곡가인 샘(앤더스 다니엘슨 리 분)은 헤어진 애인 패니(시그리드 부아지즈 분)가 연 파티에 찾아가 자신의 카세트테이프를 돌려달라고 요구하다 그녀의 새로운 연인 매튜(데이빗 캄메노스 분)와 마찰을 일으킨다. 카세트테이프를 받기 위해 방에서 기다리다 술에 취해 잠이 든 샘은 아침에 일어나 깜짝 놀란다. 바닥은 물건으로 어지럽고 벽은 피범벅이며 세상은 좀비가 뒤덮었다. 파리의 아파트에 고립된 샘은 그곳에서 남은 먹거리로 연명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영화 <워킹 데드 나잇>(※프랑스 원제는 <La nuit a devore le monde>이고 영어 제목은 <The Night Eats the World)이다)은 작가 피트 아가르멘이 쓴 동명의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좀비 떼에 둘러싸여 파리의 어떤 건물에 갇힌 생존자란 설정과 영화의 몇몇 장면은 유명한 좀비 영화 또는 그 작품들이 영감을 얻었던 것에서 고스란히 가져왔다.

<워킹 데드 나잇>의 샘은 대니얼 디포의 소설 <로빈슨 크루소>, '로빈슨 크루소'를 도심 속으로 가져온 리처드 매드슨의 소설 <나는 전설이다>, 리처드 매드슨의 작품을 각각의 좀비상으로 해석한 <지상 최후의 남자>(1964)<오메가 맨>(1971)<나는 전설이다>(2007)의 영향을 받았다.

극 중 샘의 대사 "이젠 죽는 게 정상이에요. 제가 비정상이죠"는 리처드 매드슨이 새로운 종이 나타나며 과거의 종은 사라지고 전설이 된다는 의미로 쓴 "나는 전설이다"란 문구와 맞닿는다. 그 외에 <28일 후>나 <새벽의 저주>의 장면도 인용했다.
<워킹 데드 나잇> 영화의 한 장면

▲ <워킹 데드 나잇> 영화의 한 장면 ⓒ (주)엔케이컨텐츠


근래 선보인 좀비 영화들이 빠른 속도와 쏟아지는 물량, 심지어 지능까지 갖춘 좀비를 앞세웠다면 <워킹 데드 나잇>은 그런 흐름을 거스르는 미니멀한 화법을 구사한다. 영화는 느리고 공간과 인물을 제한된 상태다. 좀비의 움직임도 빠르지 않다.

영화는 유일한 생존자인 샘이 느끼는 외로움을 관찰한다. 그리고 인간과 타인, 사회의 관계를 뜻하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좀비 장르로 풀이한다.

영화는 샘의 일상을 묘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보통 좀비 영화의 인물들은 다른 생존자를 찾거나 좀비를 무찌를 방법을 찾곤 한다. 샘은 다르다. 그는 건물이 가장 안전한 공간이라 믿고 나가려 하질 않는다.

샘은 건물 출입구를 막고 열쇠로 각 방을 수색한 뒤에 먹을 만한 것을 저장하고 총이나 칼 등 생존 도구를 갖춘다. 그리고 음악 듣기나 조깅, 지나가는 좀비에게 페인트 볼을 쏘며 시간을 보낸다. 때로는 엘리베이터에 갇힌 좀비 알프레드(드니 라방 분)에게 말을 건다. <캐스트 어웨이>에서 무인도에 갇힌 척 놀랜드(톰 행크스 분)가 배구공 윌슨을 친구 삼아 대화를 했던 것처럼 말이다.

<워킹 데드 나잇>은 독백이나 과거를 묘사하는 플래시백이 없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등으로 설명하는 부분도 나오질 않는다. 파리에 좀비가 나타난 원인이라든가 샘과 패니가 헤어진 이유 등 자세한 설명도 거부한다. 그저 지금 화면에 나오는 정보가 전부일 뿐이다.
<워킹 데드 나잇> 영화의 한 장면

▲ <워킹 데드 나잇> 영화의 한 장면 ⓒ (주)엔케이컨텐츠


도입부인 파티 장면에서 샘은 다른 사람들 속에 섞이지 못하는 존재이다. 그가 인간관계에 서툴렀음을 묘사한 도입부는 이후 건물 안에서 줄곧 혼자 지내는 상황과 연결된다. 고립된 공간인 건물은 샘의 수동적, 폐쇄적, 방어적인 성격을 담고 있다.

건물에서 접하는 전 애인, 노인 부부, 어떤 소년, 한 남자 등 다른 사람의 물건과 사진 등 흔적은 샘의 과거, 현재, 미래를 재구성하는 느낌도 든다. 샘의 자아를 환영으로 묘사한 대목도 있다. 건물은 샘의 지나간, 지금의, 다가올 시간이고 세계인 셈이다.

샘은 건물의 어느 방에서 총으로 목숨을 끊은 노부부를 접한다. 두 사람의 죽음엔 두려움과 공포 같은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시체가 부패하기 시작하자 샘은 건물 바깥으로 던지려고 하다가 마음을 달리 먹는다. 부부의 사랑과 선택을 존중하고 마지막을 함께한 풍경과 존엄을 유지한다.

그 선택으로 인해 샘은 좀비와 다른 존재로 남는다. 혹여 샘이 부부의 시체를 창 아래로 던져버렸다면 그는 살았지만, 산 건이 아닌 좀비였을 것이다. 프랑스 원제인 '밤이 세상을 잡아먹었다'는 표현처럼 밤이 세상을 집어삼켰을지라도 샘은 영혼을 지켜낸다.
<워킹 데드 나잇> 영화의 한 장면

▲ <워킹 데드 나잇> 영화의 한 장면 ⓒ (주)엔케이컨텐츠


<워킹 데드 나잇>에서 '소리'는 중요하다. 영화에서 좀비들은 시각이 아닌 소리에 반응한다. 이것은 <콰이어트 플레이스>를 연상케 한다. <워킹 데드 나잇>을 지배하는 정적은 인간이 사라진 상황을 강조하고 홀로 남은 샘의 고독감을 증폭시킨다. 남에게 나를 전달하는 수단인 소리가 필요 없어진 세상에서 샘이 곡을 연주하는 광경은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며 남과 교감을 나누겠다는 의지로 다가온다.

21세기 들어 좀비 장르는 <새벽의 저주>와 <28일 후>를 필두로 <나는 전설이다> <웜 바디스> <월드워 Z> <부산행> <아이 엠 어 히어로> 등 눈여겨 볼만한 작품을 상당수 내놓았다. 그러나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거나 신선한 시도를 하는 작품을 점점 찾아볼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워킹 데드 나잇>은 뻔한 좀비 (액션) 영화가 아니다. 현대인의 고독과 선한 면을 탐구하는 신선한 인간 (사색) 영화다. 소설 <나는 전설이다>와 영화 <캐스트 어웨이>를 흥미롭게 인용한 판본이기도 하다. <워킹 데드 나잇>은 친숙함 가운데 새로움을 찾았다. 다만, 국내 수입사가 (<워킹 데드>의 인기에 편승하여) 붙인 정체불명의 제목이 오점으로 남았다. 1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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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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