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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동 호텔에서 놀란 마음이 작은 시골 통화 호텔에선 감격으로 변했다. 딸 둘과 같은 방을 쓰려고 트리플룸을 원했는데 호텔 측에서 마땅한 방이 없어 스위트룸을 준 것이다. 더구나 바닥은 각종 냄새가 밴 카펫이 아니라 바로... 바로... 대리석이다. 문을 열고 어찌나 깜짝 놀랐던지 소리를 지르고 난리도 아니었다.

큰 거실에 소파, 마작할 수 있는 테이블, 텔레비전, 킹사이즈 침대가 있었고 연결된 2개의 방엔 각각 에어컨, 전화기, 화장실 등이 모두 갖춰져 있었다. 아마도 호텔의 구조상 맨 끝 방이 스위트룸인가 보다.

다음 날 만나 얘기를 맞춰보니 나머지 가족 4명의 방도 그와 같은 구조라고는 하는데 감흥이 없다. 알고 보니 그곳도 구조는 우리와 비슷한데 안락한 느낌의 거실에 세미나용 의자가 쫘악 놓여 있고 칠판도 있단다.

아마도 그곳에서 한국 학자가 됐든, 중국 학자가 됐든 '역사'란 공을 놓고 공격, 수비 작전을 치열하게 짰었나 보다. 여하튼 우리 가족 일동은 생각지도 못한 행운에 대해 같은 팀에게 일체 발설하지 않기로 했다. 그것이 모두에 대한 예의니까.

 너무나 좋은 호텔에 감사하며 그날 저녁 컵라면 파티를 했다.
 너무나 좋은 호텔에 감사하며 그날 저녁 컵라면 파티를 했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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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의 원시림을 가진 백두산에 버스를 타고 올랐다. 날씨가 정말 아름다웠고 이대로라면 5초 간격으로 날씨가 바뀐다는 백두산이지만 천지를 보여줄 거 같았다. 옆으로 앉은 좌석의 벨트는 헐거웠고 1시간 이동하는 중에 개구쟁이 녀석들은 코너를 돌 때마다 원심력을 이용해 나왔다 들어갔다를 반복하며 한참 즐거워하였다. 혹 실례가 될까 하여 '묵음'을 지시했더니 정말 소리 없이 오르락내리락 즐겁다.
 아침 일찍 서둘러 가야 한다. 1시간 동안 계속 올라간다.
 아침 일찍 서둘러 가야 한다. 1시간 동안 계속 올라간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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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을 보고 굽은 길이 나오면 신이 나서 좋아한다.
 앞을 보고 굽은 길이 나오면 신이 나서 좋아한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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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2개의 계단이 눈앞에 있다. 역시 중국인이 90% 이상이다. 몸이 약한 사람을 태워주는 가마꾼이 있었고 이용료는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4배가량 비싸졌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가마가 오르내릴 때마다 나를 포함한 사람들의 눈초리가 '저 사람이 정말 아파서 그러는 거야? 돈 많다고 자랑하는 거야?' 정도였는데 그 느낌을 받았는지 어쩐지 젊은 사람도 일단 가마에 타고 있으면 몸과 정신의 긴장을 탁 놔서 정말 어디 불편해 보였다. 영 못 쓰게 된 사람 같다. 정말 위급하지 않다면 젊은 사람에겐 그리 권장할 만해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백두산 정상이다. 한국에서 우리를 들뜨게 했던 16~27도의 기온이 바로 백두산 꼭대기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시원했다. 나무를 짜서 전망대를 잘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사진 찍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해서 기다렸다 사진을 찍어야 했다. 12년 전엔 안개에 가려 보지 못했던 백두산을 오늘에서야 보니 정말 기뻤다. 천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니 다 합성한 것처럼 나왔다.

꼭 필요할 것이라며 가이드가 건네준 파스는 내겐 그다지 필요 없어 팀의 연장자와 언니에게 나눠 주었다. 등산 좀 한다는 한국인에게 1442개의 계단은 수분 보충을 위해 물병이나 꺼내면 꺼냈지 오이, 초코바, 간식 등을 먹을 운동량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중국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은 300개 계단 오르고 먹고, 600개 계단 즈음에서 또 먹고,  1000개 계단에서 또 먹고, 다 오르고서는 돗자리를 펴고 우산을 쓴 채 먹고 또 먹었다. 먹어서 더 숨이 찰 것 같았다. 물론 우리도 먹었다. 아래에서 비교적 비싼 값에 산 옥수수를 내밀자 "에이, 이거 맛없잖아."라며 정운이가 거부했다. 아마도 어제 팔다 남은 옥수수였던 거 같다.

 우리도 산 아래에서 사온 이런 저런 것들을 먹었다.
 우리도 산 아래에서 사온 이런 저런 것들을 먹었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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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성사진 의혹을 받기에 충분한 비현실적인 느낌의 사진 한장
 합성사진 의혹을 받기에 충분한 비현실적인 느낌의 사진 한장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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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싸니 어쩌니 말을 해도 중국의 온갖 주전부리를 다 먹어치울 태세로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던 나는 백두산 아래에서 '문어 없는 다코야키', 초코바, 옥수수, 떡볶이, 오이를 사 먹었다. 매운 것을 한국처럼 즐기지 않고, 먹지 못하는 중국에서 떡볶이를 팔다니.

그건 순전히 한국 관광객, 또는 한국 문화에 관심이 있어 한국 음식을 구분할 수 있는 중국 젊은 친구들을 위한 메뉴였던 거 같다. 대한민국에서도 어느 도시를 가나 떡볶이를 맛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니 마다할 리가 있겠는가. 맛이 어땠냐고 묻는다면.

이건 떡볶이를 먹어본 사람이 한 요리가 아니었다. 떡을 익히지 않아 심하게 꼬들꼬들한 식감에 고추장을 묻혔는데 단맛이 많이 부족했다. 아쉽다고 말하며 허공을 한 번 보고 나니 송현, 용현, 송주, 매운 것을 잘 못 먹는 정운이까지 머리를 박고 먹고는 한마디 한다.

"아, 맛있다. 또 먹고 싶다."

워낙 메가실속 패키지 상품이라 현지에서 선택관광 비용이 꽤 나가리라 예상은 했다. 노련한 가이드는 첫날 선택관광에 대해 자기의 요구를 말했고 우리 팀 일동은 받아들였다. 가지고 온 돈을 첫날 단동의 그 호텔에서 모두 건네주고 빈털터리가 되었다.

남은 돈을 만지작만지작, 요리조리 계산하며 간식을 사 먹을 때마다 마음이 좀 그렇더니 오늘 선택관광 중 래프팅을 한다고 하니 흡족하기 그지없다. 중국인과 뒤섞여 정신없이 비빔밥을 먹은 후 산책 삼아 갔던 대협곡이 너무 더워 래프팅이 더 기대되었다.

2인 1조이다. 홀수인 우리 팀은 9살 정운이가 '엄마랑 팀을 이루면 사랑을 얻을 수 있지만 가이드형과 팀을 이루면 생명을 보전할 수 있다'라는 논리로 그쪽으로 가버리자 송현, 송주가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진 사람이 이모와, 이긴 사람이 나와 타게 되었다.

옷이 젖지 않도록 투피스 우비를 입고 손잡이 달린 바가지를 가지고 출발한다. 백두산 전 일정 중에 정말 황홀했던 체험이었다. 모두에게 추천한다. 농담으로 래프팅하러 백두산 한 번 더 와야겠다고 했을 정도였다. 여하튼 백두산에서 내려오는 시원한 물은 유속이 꽤 빨랐다. 폭이 좁아 패들링을 하기엔 좀 위험했다. 이런 식으로 1시간 10분을 내려간다니 입이 귀에 걸렸다.

국내와 국외에서 래프팅을 5~6차례 경험해 본 나로서는 신속하게 바가지 주고 탑승시키는 이곳의 시스템이 정말 좋았다. 안전교육의 부재가 잠시 뒤 아찔한 사고를 불러올 뻔했기에 끝까지 좋다고 고집하진 않겠다. 안전교육 꼭 해야 한다. 꼭!

수면의 온도차로 안개가 살짝 끼는 게 참 멋지다. 내가 좋아하는 자작나무, 미루나무는 곧고 늘씬하게 쭉쭉 뻗어 보는 것만으로도 청량한 느낌이 온다. 고개를 젖혀 하늘을 보니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손으로 흐르는 물을 잡아 본다. 시원하다. 먹어 보고 싶은 느낌이다. 그 순간 앞 팀을 살짝 견제한 것뿐인데 우리가 1등 선두에 섰다.

그 후로 잠시 강원도에서 오신 부부 팀과 바가지로 물 퍼서 퍼붓기를 한창 시작했다. 송현이가 맞상대를 제법 잘 하는 것 같았는데 아저씨 말씀으론 잘하긴 하지만 10번에 2번만 명중이라며 은근 본인의 '정확한 물 뿌리기 실력'을 자랑하셨다.

그러다가 탁 소리와 함께 아저씨네 바가지 손잡이가 부러졌다. 백두산과 어울리지 않는 빨간 색감을 뽐내며 빠르게 떠내려갔다. 항복을 외치는 아저씨에게 송현이도 웃음으로 마무리 지었다.

그런데 네 번째로 출발했던 용현, 용하 형제 팀이 1등이었다가 3등으로 처졌던 수원 부부 팀을 앞지르더니 쭉쭉 내려온다. 용하는 패들링을 쉬지 않고 하고, 아빠를 닮아 승부욕이 넘치는 용현이는 바가지로 패들링을 하고 있다. 바로 그 순간 너무 놀랐다. 래프팅의 '래'자도 모르는 녀석들 같으니...

"사람 가까이 오면 절대 패들링 하지 마! 위험해. "
"야, 너 왜 일어서! 앉아. 앉으라고~"
"앉으라고~ 왜 또 일어서~"

콸콸 흐르는 물소리, 왁자지껄 신나서 떠드는 소리에 묻힐까 백두산을 들었다 놨다 시끄럽게 안전지도를 해댔다. 와~ 아무리 안전교육 하나 없이 래프팅을 처음 한다지만 어떻게 배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는지. 용현이의 안전 관리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그러는 사이 안전불감증 형제 팀과 수원 부부 팀이 강원도 팀과 우리 팀을 제치고 1위, 2위로 치고 나갔다. 그리고 곧이어 물 폭탄을 주고받으며 1위를 놓고 물싸움을 벌였다. 간만의 차이로 뒤쪽에 있었지만 그냥 별생각 없이 그들의 물싸움을 보며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앞을 보니 용현이 흐르는 물속에 빠져 가까스로 서 있는 게 보였다. 불과 10m 앞에. 용하는 안절부절하며 혼자 앉아 1등으로 가고 있고, 2등인 수원 부부 팀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 아이와 나를 번갈아 봤다.

'내가 뛰어내려야 하나? 유속이 너무 빠른데... 내 배가 용현에게 가까이 가지 않으면 뒤에서 해결하라 하고 그냥 가야 하나?'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복잡하다. 다행히 배가 용현이 방향으로 나갔다. 강원도 산삼 썩은 물을 식수로 먹고 자란 덕에 힘이 여전히 뻗치는, 남성성이 충만한 '막내 고모님'은 용현이의 겨드랑이에 팔을 끼워 물에서 아이를 건져 배에 태웠다. 내리사랑이 가져온 사랑의 힘이라고 할까?

너무 아찔했다. 이보다 위험하지 않은 코스에서 머리를 다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제법 들었던 터라 생각할수록 아찔해서 화가 났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주기 위해 물장난을 시작했을, 사건 관련자인 수원 부부 팀을 배려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웃음을 섞어 아이를 타박한 후 3인 1조가 되어 내려가야 했다.

2018년 백두산에서 래프팅을 하며 물에 빠졌다 고모에 의해 건져질 것에 대비해 13년간 용현이는 키와 몸무게를 늘리지 않았나 보다. 아가, 네가 너네 학년 전체에서 키가 가장 작았기 망정이지 중간이라도 갔으면 이 고모가 어찌 건질 수 있었겠느냐!  용현의 집념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무엇인고 하니 정신없는 물싸움에 흥분해서 물에 빠졌다 구출되는 그 순간에도 손에서 놓지 않은 것이 있으니 바로 바 가 지.

동생과 함께 바가지를 잃은 용하, 물싸움으로 바가지를 부러뜨린 강원도 팀은 종점에 다 다를수록 배에 들어찬 물을 퍼내지 못해 발이 시려 고생했다는 후문이 들렸다.

자신이 물에 빠지면서까지 1등을 하고자 했는데 왜 형은 그것을 지키지 못했냐는 용현이의 말에 혀를 내둘렀다. 명백한 실수에도 절대 기죽지 않는 용현이에게 쉬지 않고 '너의 잘못'과 '나의 업적 찬양'를 쉬지 않고 하노라니 이 녀석이 짜증을 낸다.

나: 나 너 칠순 될 때까지 이번 일 우려먹을 거야.
용현: 그러시던지~
정운:(아무 말 없이 듣다가 느닷없이) 그런데 이모 그때까지 못 살 거 같은데..

내 머릿속에서 댕댕~ 소리가 난다.

아이 보호자로서 미안한 마음이 컸지만 그럼에도 래프팅 체험을 할 때는 꼭 '일어서지 말 것', '사람이 가까이 올 땐 패들링 하지 말 것'을 관광객에게 알려 주셔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안전모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그날 밤 수원 부부 팀의 아주머니는 주무시다가 깨어 소리를 지르셨다고 한다. 낮에 있었던 사건의 충격이 너무나 컸나 보다. 다음 날 말씀을 전해 듣고 한편 죄송한 마음이 들어 용현이의 부주의에 대해 잔소리를 한 판 더했다. 그리고 너의 막내 고모님께서는 98세까지 살면서 네가 칠순 될 때까지 '백두산 래프팅 사건'을 우려먹겠노라고 선포했다. 정운이가 말도 안 된다며 웃었다.

덧붙이는 글 | 이모, 고모, 조카, 딸, 아들로 불리는 7명의 가족이 고구려유적지와 백두산 탐방길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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