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하지만 엠 아줌마가 말하길 마녀들은 오래전에 다 죽었다고 했어요 "
"엠 아줌마가 누구지? "
"저와 함께 캔자스에 사는 아줌마예요 "
"캔자스가 어디에 있는 건지 모르겠군. 그런 이름은 처음 들어봐. 하지만 문명화된 나라겠지?"
"오. 그럼요"
"이제 알겠어. 문명화된 나라에는 어떤 마녀나 마법사나 마술사도 남아있지 않아
하지만 오즈의 나라는 다른 세계와 차단되어 있어서 문명화된 적이 없단다.
우리들은 아직 마녀와 마법사가 있어"

 
 오즈의나라에온 도로시
 오즈의나라에온 도로시
ⓒ 이정우

관련사진보기

 북쪽마녀
 북쪽마녀
ⓒ 이정우

관련사진보기

 도로시에게 감사해하는 마녀와먼치킨
 도로시에게 감사해하는 마녀와먼치킨
ⓒ 이정우

관련사진보기

 나쁜마녀가사라져 기뻐하는 먼치킨
 나쁜마녀가사라져 기뻐하는 먼치킨
ⓒ 이정우

관련사진보기


캔자스의 드넓은 초원 위에 나무로 지어진 자그마한 집에서 도로시는 헨리 아저씨와 엠 아주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집안에 ‘회오리바람 지하실’이 있을 정도로 태풍이 자주 불어오는 그곳에, 어느 날 통째로 집을 날려버릴 정도의 태풍이 순식간에 불어 닥친다. 미처 지하실로 대피하지 못한 도로시와 강아지 토토는 집과 함께 한참 동안 어디론가 떠다니기 시작했고, ‘쿵’ 하고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에 겨우 잠에서 깨어나게 된다. 문을 열고 나온 그곳은 메마른 캔자스와 달리 밝은 햇살과 풀과 과일이 풍성한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곳에서 의도하지 않게 자신의 집에 깔려 죽은 동쪽 마녀 덕분에 자유를 얻었다며 도로시에게 감사를 표하는 세 명의 키 작은 요정과 착한 마녀를 만나게 되면서 자신이 있는 이곳이 오즈의 나라 ‘먼치킨’이라는 곳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엠 아줌마의 말을 통해 마녀는 오래전에 다 죽지 않았냐며 묻자 착한 마녀는 이곳은 문명화가 되지 않은 곳이라 아직 마녀와 마법사가 살고 있다고 말한다
 
 마녀배달부 키키
 마녀배달부 키키
ⓒ 이정우

관련사진보기


어릴 적 보았던 동화책과 만화영화에 빠지지 않았던 마녀라는 존재는 백설 공주에게 독이 든 사과를 주거나, 어린 공주에게 16세 생일날 물레에 찔려 죽게 될 거라는 무서운 저주를 내리는 존재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다 <마녀 배달부 키키>처럼 평범한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사람들 속에서 조금씩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하거나 <메리와 마녀의 꽃>처럼 길 잃은 고양이를 따라가다가 신비한 꽃의 발견으로 마법의 힘을 얻게 되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모습으로도 표현되기도 한다. 이렇게 이야기에 따라 또는 주제에 따라 악하게도 선하게도 표현되는 마녀는 정말 엠 아줌마의 말 대로 오래전에 다 죽은 것일까? 그 말은 현실세계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정말 마녀는 실제로 존재했으며 첨단 문명을 살고 있는 이 시대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일까?  

우리가 알고 있는 마녀는 본래 출산이나 질병치료 같은 의료를 담당하거나 점을 치는 등 주술적인 기능한 고대 원시시대의 주술인 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인간 한계를 초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로 비쳐 악마와 놀아나면서 신을 해치고 공동체를 해친다는 이유로 낙인찍히게 되었고 사람들은 그들이 인형에 바늘을 찔러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농작물을 말라 죽이기도 하며 사람들을 동물로도 변하게 한다는 식으로 믿었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에게는 두렵고 사악한 괴물로 인식되기도 했을 것이다. 우리는 마녀가 이미 허구적 존재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만 유럽 중세시대만 하더라도 적게는 5만에서 많게는 50만 명에 이르는 수없이 많은 마녀들이 존재했다고 한다. 그럼 그 마녀들은 대체 어디에서 나타난 것일까?   
 마녀사냥
 마녀사냥
ⓒ 이정우

관련사진보기


당시 유럽은 기독교적 사상이 강력하게 지배하던 중세 봉건시대로 십자군 원정 실패 후 타락한 가톨릭 교회가 종교적 위기를 극복하고자 12세기부터 18세기 초기까지 이른바 ‘마녀사냥’을 전개했고 사냥을 위한 ‘마녀’라는 존재가 필요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마녀가 되어야만 했다. 그런데 과연 누가 마녀가 되는 것이고 그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이 무렵 마녀는 그리스도 신앙을 버리고 악마와 계약을 맺고 섬기는 자로, 마녀 같다는 소문이나 밀고만으로도 체포되어 지독한 고문을 통해 자백을 받아 마녀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세 사람 이상의 증언이 나오면 그 또한 마녀로 몰렸는데, 마녀로 지목당한 사람은 마녀가 아님을 스스로 입증까지 해야 했다고 한다. 물에 빠뜨려 마녀임을 확인하는 것이 대표적인 방법으로 가라앉으면 무죄이고 떠오르면 유죄로 가라앉으면 죽고, 떠오르면 마녀임이 틀림없으므로 화형을 당하게 된다. 어떤 식으로든 죽는 건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잘 아는 데카르트와 함께 근대철학을 열었던 스피노자의 할머니도 마녀로 몰려 장작불 위에서 태워 죽었으며 우주에 대한 최고의 항성 법칙을 발견한 요하네스 케플러의 어머니도 마녀로 지목되어 마녀재판을 두 번이나 받았다고 한다.   

그 후 프랑스혁명을 거치고 이성적 사고방식 위에 세워진 근대사회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쟁과 군사독재시대를 거치며 선량한 시민들을 마녀로 몰아 정권을 유지하려는 일종의 마녀사냥이 자행되기도 했지만, 근대 이후 차츰 마녀라는 존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착한 마녀의 말대로 역사상 최고의 문명을 이룬 21세기는 과거 중세시대와 같은 마녀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일까? 그리고 이성이 지배하기 전, 욕망과 미신이 만들어낸 산물에 불과했던 것이었을까? 현대인은 자신이 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존재로 인식하지만 본인 스스로 마녀사냥을 자행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우리가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된장녀’와 ‘김치녀’, ‘빨갱이’ ‘매카시즘’ ‘종북몰이’ 등은 마녀사냥의 또 다른 이름으로 바뀌었을 뿐 우리는 누군가를 마녀로 몰고 이념으로 사냥하고 있다.   

모든 것을 표준화, 규격화된 사회로 만들어버린 현대 산업사회는 이념이나 사상 또한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가혹하게 몰아붙였고 그 대상은 주로 여성이나 무슬림, 동성애자, 이주노동자 등으로 누구라도 마녀로 몰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거기다 과거, 감정과 육체에서 분리된 차가운 이성은 새로운 과학기술을 잉태하면서 우리 시대 새로운 마녀를 만들어 내는 환경을 제공하게 되었고 우리는 스스로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거나, 그 대상을 쫓는 사냥꾼이 돼버렸다.  

몇 해 전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었던 모 연예인의 학력위조 사건이 있었다. 인터넷에 확인되지 않은 온갖 정보들이 떠다니면서 해명을 요구하는 카페까지 생기며 논란은 확산되었고 급기야 그의 가족에 대한 정보까지 수집하며 위조된 학력이라며 거세게 외치고 다녔다. 논란이 계속되자 모 방송사에서 그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방영하였고 경찰 측에서 학력위조가 아님을 발표하게 된다. 결국 사실이 아니면 말고 식이 돼버린 것이다. 당시 비난을 했던 사람들은 자신이 그 보다 더 좀 더 나아 보이거나 다른 이득이 있을 것 같았지만 그렇게 보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와 그의 가족들은 마녀사냥을 당하는 동안 크나큰 충격으로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입게 되었을 것이고 그의 명성에는 조금 스크래치가 났을 정도였지 않았을까?  
 sns
 sns
ⓒ 이정우

관련사진보기


우리는 과거와 달리 눈부신 과학기술과 통신기술의 발달로 인터넷과 SNS라는 도구를 통해 자유롭게 인적 네트워크를 맺고 이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고 소통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공유하는 것 자체가 ‘프레임’을 만들게 되었고 익명성이 보장된 그 공간이 마녀사냥을 더 용이하게 만들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가지고 마치 사실인양 여과 없이 실시간으로 비난의 글을 올리며 새로운 마녀를 만들고 있지 않았는가? 그 마녀가 조금이라도 회피하거나 머뭇거리기는 반응을 보이면 사냥하듯 엄청난 비난과 질타의 화살을 상대방의 가슴을 향해 쏘지 않았던가?  
물론 어떠한 사실에 대한 여과 없이 퍼 나르기 식으로 정보가 재전송되는 온라인 매체에 대한 문제와 경제 침체로 인한 실업과 취업의 어려움 등으로 치열해진 경쟁 탓에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선 누군가 도태되어야만 하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도 해결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정확한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정보를 가지고 마녀사냥을 자행하는 본인 스스로에 대한 태도를 먼저 돌아보지 않는다면 중세시대에 자행된 마녀사냥과 도대체 무엇이 다른 것일까?  

‘오즈의 위대한 마법사’가 나온 1900년 당시는 자본주의가 극에 달해 모든 사람들을 탐욕의 화신으로 만들던 시대로 여성과 노동자, 농민의 해방을 의미한다는 이유만으로 이 책은 권력과 자본을 가진 기득권 세력에 의해 ‘빨간책’ 취급을 받았다. 물론 저자인 라이먼 프랭크 바움은 그런 의도로 쓴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당시엔 그 책 자체가 마녀사냥의 대상이 된 것이다.   

문명화된 나라에는 더 이상 마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 착한 마녀와 마녀는 모두 사라졌다고 말한 엠 아줌마는 누군가를 마녀로 만들고 그 마녀를 죽이는 사냥꾼이 돼버린 21세기 현대인의 모습을 보게 된다면 과연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착한북쪽마녀
 착한북쪽마녀
ⓒ 이정우

관련사진보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평범한직장인이며 아이아빠로 자기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남자이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