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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동은 12년 전 보았던 모습보다 관광지로 많이 개발되어 있었다. 남북 두 정상 간의 만남 후 이곳의 분위기도 한층 더 활기가 넘친다고 했다. 4박 5일 내내 도시에 등수를 매겨 몇 등 도시, 몇 등 도시 알려주었던 가이드 말에 의하면 단동은 여러 접경도시 중 가장 크게 발달한 곳으로 근래에 도시 등급이 한 단계 올라갔다고 했다. 

12년 전, 호텔 어느 뒷골목에서 난생 처음 먹었던 양꼬치의 낯설었던 모양새와 그날 저녁의 풍경이 기억난다. 어둑해지는 늦은 저녁 주변의 낯선 모습에 위축되어 간신히 한 꼬치 집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어려서 먹어 보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우리 애들은 양꼬치를 아주 좋아한다. 이번에 어떻게 먹어볼 기회가 있으려나.

지금도 중국인들은 미리 예약만 하면 누구나 쉽게 북한 여행을 할 수 있단다. 예전엔 빵, 과자 등 먹을거리를 던져주곤 했지만 이제는 금지해서 줄 수 없다고 했다. 단교를 구경한 후 유람선을 타고자 했으나 수량이 적어 압록강 상류에 있는 선착장으로 올라왔다.

농가원이라고 한글로 써진 주택들이 도로 양옆으로 즐비하였다. 우리 식으로 하자면 농촌에 있는 민박집이라고 한다. 수량은 풍부했고 단동 시내 앞보다 건물이나 인적은 드물었지만 유유자적 한갓진 분위기에서 북한을 바라보니 마음이 왠지 더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푸르른 물에, 초록이 어우러지니 안타까움이 덜하다.
 푸르른 물에, 초록이 어우러지니 안타까움이 덜하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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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는 곳은 모두 관광지 코스라서 그랬겠지만 바가지요금인 걸 감안해도 물가가 굉장히 비쌌다. 주전부리로 먹을 수 있는 과일, 견과류, 빙과류, 과자, 찐 옥수수.... 한국보다도 비싸게 불렀다.

한눈에 봐도 탱글탱글, 쫄깃쫄깃 맛있는 찰옥수수도 아니고 사료나 기름 추출용으로 쓰이는 옥수수임에도 3개 2000원 하는 우리나라보다 비싼 1개에 1000원이라니.... 빈정이 상해 사 먹고 싶은 마음이 떨어질 듯도 한데 꾸역꾸역 비싼 값을 내고 다 사 먹었다.

올림픽을 치른 직후라 그런지 고속도로 노면 상태는 최상이었다. 누덕누덕 땜질한 영동고속도로 원주-횡성 간 구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고구려 초기 도읍지인 졸본성으로 추정되는 오녀산성에 가기 위해 환인에 왔다. 주차장은 넓고 햇빛을 피할 그늘은 없었다. 고구려의 역사에 대해 한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이 초입에 있는데 위용이 그럴듯했다.

한동안 잊었던 예민한 역사논쟁이 생각나 '자기네 역사로 편입하려고 이렇게 투자를 많이 했나?' 싶어 반발심이 들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편입'은 맞지만 교묘하고 세련된 방법으로의 '편입'이다.

강성해진 중국의 강제적인 노력에 의한 편입이 아니라 소수민족(재중동포)의 자발적인 편입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 씁쓸했다. 그동안 얼마나 전방위적으로 치밀하게 계획하고 노력하여 이룬 성과인가?

중국은 소수민족에게 유화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중국 헌법에는 전국의 여러 민족은 모두 평등하며 정치·경제·문화생활에서 한족과 동등한 대우와 권리를 향유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같은 헌법의 보장과 정책적 배려하게 운용되고 있는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에는

첫째, 소수민족에 대한 평등 정책을 시행한다.
둘째, 소수민족 지역의 자치를 시행한다.
셋째, 소수민족 간부를 양성한다.
넷째, 소수민족이 자신들의 언어와 문자를 사용하는 것을 허용한다.
다섯째, 소수민족의 풍속 습관과 종교 신앙의 자유를 보장한다.

이 외에도 계획출산의 완화, 명문 대학 진학의 배분, 취직 상의 혜택 등의 우대조치를 실시하나 사실 소수민족이 주류에 들어가긴 현실상 어렵다고 한다. 대학 진학 관련 이야기를 들어보면 베이징에 있는 유수한 대학에 입학원서를 넣을 때 소수민족이라고 기재하여 보내면 낮은 점수로 입학이 가능하다고 하니 이런 제도가 있는 것만으로도 변방의 부모 마음에 충성심과 애국심이 깊어질 것 같다.

모든 것을 그대로 인정해주고 도로, 철도 건설을 포함하여 물심양면 지원해주니 거대 국가 '중국'에 대한 소속감은 나날이 높아져 비로소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하나의 중국'이 점차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실현되는 그 과정을 눈앞에서 보게 되니 까닭 모를 체념과 궁금증이 생겨난다.

무더운 날, 1000개에 가까운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데 하필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망나니처럼 펄쩍펄쩍 잘 뛰어다니는 송현이 기력 없는 모습으로 중간에서 쉬기로 하자 아이를 보호할 겸 언니도 함께 쉬겠다고 했다.

계단 200개 정도를 오르고 소변이 마렵다고 했던 용현은 가이드를 포함한 모든 어른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자연화장실 이용을 거부한 채 일행 중 1등으로 계단을 올랐다. 2명이나 열사병 증세를 보이는 그 더운 날 오로지 화장실에 가겠다는 일념 하나로...

정상에 오르니 그나마 바람이 분다. 용현이는 화장실에 다녀왔지만 더위에 웃음을 잃었다.
 정상에 오르니 그나마 바람이 분다. 용현이는 화장실에 다녀왔지만 더위에 웃음을 잃었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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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가장 험준한 산악 요새라고 하더니 정상에 올라 성벽을 따라 한 바퀴 도는데 정말 가파르다. 이런 곳에 샘까지 솟아난다니 놀라울 뿐이다. 소양강 호수가 연상되는 혼강을 바라보니 올라온 보람이 조금 있다.

"와~ 정말 멋지네요. 이렇게 멋진 모습 한국에도 있어요? 제가 못 봐서요."
"있어요. 많아."
"충주호요?"
"충주호도 그렇고 청남대도 그렇고..."
"아, 그렇구나!"


전국 명산을 다 누빈 것은 물론 전일정 아웃도어를 입을 정도로 산을 사랑하시는 아저씨의 말에도 다행히 등산한 보람은 사그라지진 않았다.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는 혼강의 풍광이다. 가파르게 솟은 오녀산성에서 내려다 보았다. 너무 덥다.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는 혼강의 풍광이다. 가파르게 솟은 오녀산성에서 내려다 보았다. 너무 덥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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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녀산성 정상 부근에서 발견된 유적지를 보전하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공사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오녀산성 정상 부근에서 발견된 유적지를 보전하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공사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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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 단동에서 더 멀어지기 전에 단동에서 묵은 호텔에 대해 정보를 전달해야겠다. 비록 주관적인 감상일지라도 정보가 필요한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정보라 생각한다.

여행 출발 전 호텔의 상태, 수준에 대해 살짝 불안해서 네이버에 검색해보았으나 관련 내용이 거의 없었다. 막연한 불안감에 여행사에 전화를 걸어 호텔 업그레이드에 대해 물으니 불가능하다고 했다. 뭐지? 점점 불안해지는 이 마음? 그래서 원하는 정보도 얻지 못하고 호텔 업그레이드도 못한 채 그냥 출발했다.

별이 3개라고 하는 단동 우전 호텔에 가서 보니 입이 떡 벌어진다. 카펫에 얼룩이 묻어 있는 건 둘째 치고 담배, 이상한 냄새가 카펫에 배어 고약했다. 시각적으로도 누런 포인트 벽지와 커튼, 체리색 몰딩은 놀라웠다. 옛날 옛날 캠핑을 처음 시작할 때 캠핑지로 이동 중이니 경비를 아끼자며 잠시 들렀던 태백의 어느 3만 원짜리 여인숙에서 느꼈던 당혹스러움이 생각났다.

그날 그 집 아저씨와 아줌마가 어찌나 부부싸움을 해대던지 혹시 불이라도 지를까 불안해하며 잠에 들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우리 방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샤워를 하면 배수가 잘 되지 않아 문턱을 넘어 물이 범람할 지경이라 발 닦는 용도의 큰 타월을 깔고 잘 살피며 신속히 씻어야 했다. 카펫이라 물에 젖으면 큰일 난다.

그러나 다행인 건 긴 이동에서 온 피로감에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무리 없이 잘 가동되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맞으며, 비교적 산뜻한 침구 속에 들어가 잘 잤다. 그러면 됐지 뭐.

호텔 조식은 무엇을 상상하건 그 이하다. 아메리칸 스타일로 아침 식사를 해결해야지 싶겠지만 막상 가보면 그것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토스트 기기도 없이 생식빵에 내용물이 덕지덕지 말라붙은 그릇에 담겨 있는 잼을 발라 먹어야 하고 우유 대신 두유가 있어 당황하는 사람이 있었다.

가이드 말로는 중국은 도시별로 등급을 매긴다고 한다. 2등 도시, 3등 도시 이렇게 말이다. 인구 수, 발전 정도 등으로 매기는데 우리가 아는 큰 도시들이 1등 도시이다. 4등 도시에 있는 호텔, 대학은 그야말로 4등 정도의 수준이라고 한다.

사실 고구려 유적지는 넓고 넓은 간도 땅, 작은 마을에 여기저기 퍼져 있다. 고구려 유적지를 보겠다는 일념이면 이와 같은 불편도 물론 감수해야겠지만 중국은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G2에 속하는 나라가 아닌가.

그렇다면 과연 무엇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 컵라면, 고추장 하나 준비하지 않고 현지식만으로 배불리 먹어 몸무게를 찌워온 경험자로서 조언을 시작하겠다. 호텔에서 조식을 먹을 때 죽은 향신료를 가미하지 않아 누구나 먹기가 편하다.

특히, 노란색이 보이는 죽은 냄새도 안 나고 구수하니 많이 드셔도 좋겠다. 콩나물은 식초를 넣어 이상한 맛이 날 것이며 감자요리가 누런 빛깔이라면 간장에 볶은 것으로 먹기가 수월하며 흰색이라면 또 식초 맛이 나서 먹기가 그냥 그럴 것이다. 가지가 푹 익어서 그렇지 맛은 무난하다.

한국에 있는 고급 중화요리집에서 나오는 오이지 비슷한 게 나올 때가 있는데 맛은 한국에서 먹던 맛과 비슷하니 냉큼 가져다 죽과 함께 냠냠 먹으면 된다. 그릇, 수저, 테이블 등의 위생상태는 불량이니 되도록 한 눈 감고 먹으면 비교적 소화를 잘 시킬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만약 단동 우전 호텔에 간다면 방에 들어가자마자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며 이상한 냄새를 뺀다. 에어컨을 동시에 틀어 땀도 식히며 어느 정도 후각과 시각과 마음이 적응했다 판단되면 환경운동가의 마인드를 가지고 창문을 닫아 에너지를 아낀다.

알려 준 방법으로 신속하게 샤워를 한 후 비교적 산뜻한 이불 속에 들어가 쿨쿨 자면 다음 날 상쾌하다. 식당에 가기 전까지. 아침에 볶음밥이 나오니 고추장을 가지고 가서 비벼 먹어도 되고,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이 나오니 컵라면을 가지고 가서 먹으면 된다.

이렇게 기대치를 낮춰줬으니 나의 당혹스러움, 실망스러움, 거북스러움보다 훨씬 만족도가 높을 것이다. 만족스러운 여행을 하는 비결은 모든 것에서 기대치를 낮추는 것이다.

단동 우전 호텔을 비판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고구려 유적지를 보려면 3, 4등 도시를 돌며 이 정도 수준의 호텔에 머무는 것이 일반적이나 일말의 정보도 없이 만난 호텔의 상태에 실망하고 다음 숙소를 직접 볼 때까지 은근히 걱정할 수밖에 없었던 내 경험에서 뭔가 알려줄 게 있다 판단되어 욕먹을 것을 각오하고 썼다. 이해 바라며 한 번 더 당부한다.

본 여행 경로로 간다면 숙소, 위생, 음식, 세면, 화장실 등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라!' 그러면 먹을 만하고, 씻을만하며, 잠 잘 만 하고, 숨 쉴만하고 여행할만하니 이로써 비로소 백두산을 만났을 때 감격이 갑절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모, 고모, 조카, 딸, 아들로 불리는 7명의 가족이 고구려유적지와 백두산 탐방길에 올랐습니다.



태그:#백두산 탐방, #고구려유적지, #리씨네 여행기, #조카들과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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