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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인문학 기행단 기행단 일행이 중국 단동의 단교에 올라 북한의 신의주를 바라보며 지도교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 2018 인문학 기행단 기행단 일행이 중국 단동의 단교에 올라 북한의 신의주를 바라보며 지도교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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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말 여름방학을 맞이한 충남 고등학생 110명이 중국의 동북3성과 내몽골, 러시아 연해주 일대 항일 유적지와 민족 역사를 찾는 대장정을 마치고 돌아왔다. 이들은 각각 독립운동단, 역사교류단, 평화통일단으로 나뉘어 역사, 지리, 문학, 통일 문제 등을 익히는 창의 융합 인문학 기행을 실시했다.

필자는 이들 중 평화통일단과 함께 열흘을 동행하며 무더웠던 날씨 만큼이나 뜨겁고 생생했던 체험 일정을 기록하였다.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남으로 2천리, 북으로 1천리 따라 흐르는 압록강과 두만강을 잇는 평화통일 3천리 기행을 몇 차례 나누어 소개하려 한다.

새벽부터 시작된 고난의 여정
2018 인문학 기행단 2018년 7월말 여름방학을 맞이한 충남 고등학생 110명이 중국의 동북3성과 내몽골, 러시아 연해주 일대 항일 유적지와 민족 역사를 찾는 대장정을 마치고 돌아왔다.
▲ 2018 인문학 기행단 2018년 7월말 여름방학을 맞이한 충남 고등학생 110명이 중국의 동북3성과 내몽골, 러시아 연해주 일대 항일 유적지와 민족 역사를 찾는 대장정을 마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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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십 년 만에 최고로 더운 날씨를 기록한 7월 27일 새벽, 충남교육청 소속의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로 구성된 '2018 창의융합형 인문학 기행단(아래 기행단)' 일행이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아이들을 태운 버스가 먼동이 터오는 서해안 고속도로 서해대교를 지날 무렵 갑자기 운전기사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버스의 발전기가 고장을 일으킨 것이다. 공항까지는 아직도 절반밖에 못 왔는데, 이대로 차가 멈춘다면 어쩌나... 운전석 뒤에 앉은 나의 머릿속에는 온갖 복잡한 생각이 오간다.

결국 30여 분을 더 이동한 끝에 버스는 중간 휴게소에 멈춰 서 버리고 만다. 수학여행이며 체험학습 등등 아이들 인솔 수십 년 만에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게다가 해외로 가는 출발 길인데... 아무것도 모른 채 곤히 잠든 아이들을 보는 운전기사나 나나 앞이 캄캄하기만 하다.

하늘이 무너져도 살아날 구멍은 있다더니, 휴게소에는 막 출발하려는 공항버스 2대가 보였다. 그리고 빠르게 운전기사를 찾았다.

"우리 버스가 고장났어요. 인천공항까지 같이 갑시다."

난감해하는 버스기사의 눈초리를 애써 외면하면서, "애들아 빨리 일어나 버스 바꿔 타야해" 외쳤다. 우리 일행은 이미 캐리어를 트렁크에 밀어 넣고 있었다. 그렇게 아찔한 순간을 넘기고 간신히 공항 입국장에 도착해, 먼저 와 있던 일행을 만났다.

환전할 여유도 없이 오전 7시 40분 심양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이었다. 그러나 오늘 새벽 아찔함은 앞으로 중국에서 펼쳐질 여러 가지 에피소드의 예고편 이었다. 이렇게 우리들의 압록강 2천리, 두만강 1천리 민족의 역사를 찾아 떠나는 인문학 기행은 시작되었다.

2018 인문학 기행단 2018. 7. 27. ~ 8. 6. 인천-심양-단동-집안-백두산-연변-훈춘-블라디보스톡 등, 중국과 러시다 일대 민족의 발자취를 찾는 기행을 을 하고 돌아왔다.
▲ 2018 인문학 기행단 2018. 7. 27. ~ 8. 6. 인천-심양-단동-집안-백두산-연변-훈춘-블라디보스톡 등, 중국과 러시다 일대 민족의 발자취를 찾는 기행을 을 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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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에서 만난 병자호란의 슬픔

우여곡절 끝에 2시간여를 날아서 첫 번째 여행지 심양 공항에 도착했다. 기행 첫날 중국 일정이 시작된 것이다. 30도 후반을 넘나드는 후텁지근한 무더위는 한국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오늘 아이들이 둘러볼 곳은 요녕성 박물관과 삼학사비 그리고 고구려시대 산성인 백암산성이다.
요녕성 박물관 심양시 외곽에 위치한 박물관이다. 고대에서 명·청시대에 이르는 중국의 역사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데 고조선, 고구려, 부여 등 한국의 고대와 관련된 유물들도 상당수 전시되고 있다고 한다. 방학을 맞은 학생들의 단체관람으로 북적였다.
▲ 요녕성 박물관 심양시 외곽에 위치한 박물관이다. 고대에서 명·청시대에 이르는 중국의 역사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데 고조선, 고구려, 부여 등 한국의 고대와 관련된 유물들도 상당수 전시되고 있다고 한다. 방학을 맞은 학생들의 단체관람으로 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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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일정으로 요녕성 박물관을 둘러본 기행단은 이어서 병자호란의 아픈 흔적을 찾아 심양시 외곽의 한 직업학교 전시관으로 향했다. 이곳에 병자호란 당시 끌려와서도 끝까지 절개를 지키다 죽은 홍익한, 윤집, 오달제를 기리는 삼학사비가 있기 때문이다.

병자호란의 치욕과 참상은 박해일 주연의 <최종병기 활>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조선이 청나라와 벌인 병자호란이라는 전쟁에서 패한 대가는 너무나 컸다. 인조가 당한 수모는 차치하고라도 청에 끌려간 조선 민중이 50만이었다고 하니 말이다. 그 중에 앞서 말한 삼학사도 있었던 것. 이곳에서 당시 조상들의 아픔을 되새겨 보는 시간이 되었다.
삼학사비  1935년 후손들에 의해 제작되었으나, 문화혁명 당시 파손되어 방치되던 것을 찾아내어 지금은 심양시의 한 학교 전시관에 보관하고 있다.
▲ 삼학사비 1935년 후손들에 의해 제작되었으나, 문화혁명 당시 파손되어 방치되던 것을 찾아내어 지금은 심양시의 한 학교 전시관에 보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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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 자료에 따르면, 1638년 청나라 태종이 이들 삼학사의 절개에 감복하여 사당과 비를 세워주었는데 300년 세월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그러던 것을 1935년 그 흔적을 찾아낸 심양 재중동포(조선족) 유지들이 항일운동의 일환으로 한 공원에 비석을 세우게 되는데 그게 바로 삼학사(중수)비라 한다.

그러나 이 비석은 1960년대 문화혁명 당시 중국과 관련 없는 것이라며 홍위병들에게 부서져 두 동강난 채 강가에 버려지는 수모를 겪는다. 다시 2005년 조선족 과학자였던 요녕대학 천문갑(2009년 별세) 교수가 국내의 한 기업가의 도움을 받아 현재의 학교 전시실에 옮겨놓았고 한다.

삼학사비가 위치한 곳은 유치원교사를 양성하는 직업학교(沈阳师联幼师中职学校) 건물 1층의 전시관이었다. 물건을 가득 쌓아놓은 학교 매점 옆에 있는 전시실은 초라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느낀 바도 다양한 듯 했다.

비록 초라하지만 이렇게라도 우리 민족의 흔적을 지키려는 분들의 노력에 감사하다는 생각부터 400년 전 역사가 아직은 현실감이 없는 듯 무심히 조각난 비석을 둘러보는 아이들도 있었다.

복원한 삼학사비 1932년에 세워졌던 삼학사비는 지금은 유치원 교사를 양성하는 직업학교 전시실에 보관되어 있으며, 사진은 그 비석을 2005년에 충남에 있는 계룡건설 장학재단이 후원하여 복원한 것임. 현재 복원 비석은 관리가 잘 되지 않아 풀숲에 있으며 비석에도 금이 가 있었다.
▲ 복원한 삼학사비 1932년에 세워졌던 삼학사비는 지금은 유치원 교사를 양성하는 직업학교 전시실에 보관되어 있으며, 사진은 그 비석을 2005년에 충남에 있는 계룡건설 장학재단이 후원하여 복원한 것임. 현재 복원 비석은 관리가 잘 되지 않아 풀숲에 있으며 비석에도 금이 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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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산성, 처음으로 고구려 산성을 만나다

삼학사비 견학을 마친 일행은 심양의 코리아타운이라고 하는 서탑거리를 걸어보고 요녕성 동쪽 요양(遙陽)에 위치한 연주산성(우리나라 학계에서는 백암산성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하 백암산성)으로 향했다. 심양에서 백암산성에 이르는 길은 4차선 평지 직진 코스로만 버스로 2시간 거리였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과연 이곳이 만주벌판이구나 하는 실감을 한 끝에 도착했다.
현지의 연주산성(백암산성) 안내문 연주성산성은 동진원흥2년(서기403년)에 지어지기 시작했다, 이성은 고구려시기에는 백암성으로 불리웠다. 당나라때 암주성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요대에는 암주와 백암현으로 심주의 지군이었다. 금대에는 석성현이었으며, 명대에도 이성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 현지의 연주산성(백암산성) 안내문 연주성산성은 동진원흥2년(서기403년)에 지어지기 시작했다, 이성은 고구려시기에는 백암성으로 불리웠다. 당나라때 암주성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요대에는 암주와 백암현으로 심주의 지군이었다. 금대에는 석성현이었으며, 명대에도 이성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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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의 설명과 학생들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백암산성은 위쪽의 개모성과 요동성 아래쪽의 안시성과 함께 고구려 천리장성 축을 이루며 당나라와 고구려의 전쟁을 다루는 역사책에는 반드시 등장하는 산성이며, 고구려 산성의 축성법이 비교적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산성 입구에 설치된 안내문에는 백암산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연주성산성은 산에 지은 성이다, 그래서 불규칙적인 네모형이다. 성벽은 청색 돌덩어리를 쌓아서 만들었다. 성벽은 모두 1,840미터이며 넓이는 2~3미터이고 높이는 5~8미터이다. 벽체 바깥에는 9개의 마면, 내측에는 계단로가 있다, 성안의 산정상에는 전망대가 있어 작전시에 지휘와 조망에 편리하도록 했다. 연주산산성은 지금으로부터 1,600여년의 역사가 있다, 1963년 요녕성인민정부로부터 성의 중점문물보호 단위로 지정되었고, 2013년 국무원이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하였다.' - 안내문 번역 충남교육청 장학사 박두순

백암산성 성벽 충남교육청 인문학기행단 학생들이 백암산성 성벽에 올라 고구려의 성벽 축성 기술과 당시 당나라와 관계에 대하여 설명을 듣고 있다.
▲ 백암산성 성벽 충남교육청 인문학기행단 학생들이 백암산성 성벽에 올라 고구려의 성벽 축성 기술과 당시 당나라와 관계에 대하여 설명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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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산성에 도착한 기행단 아이들은 산성의 유래와 인근에 있는 안시성 전투의 역사적 의미를 현장에서 발표한 후 산성 외곽 성벽을 밟으며 과거 고구려의 모습을 하나라도 더 발견하려고 꼼꼼하게 살폈다.

그리고 저녁노을을 맞으며 산성을 내려와 주변에 구르던 고구려 산성의 돌들로 쌓았을지도 모를 돌담 사이 마을을 지나 요양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열하일기에도 나오는 요양 백탑을 바라보며 숙소에 들어 첫날 일정을 마무리 했다.

내일은 이곳에서 단동으로 이동하며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홍순학의 연행록 등에 나오는 사신들의 귀국길을 따라 단동으로 가 남북분단의 현실을 만날 예정이다.
 
백암산성 마을 사람  백암산성 탐방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만난 마을 주민. 날씨가 더운 탓인지 이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웃통을 벗고 있었으며, 마을 담벼락에는 산성에서 흘러나온 돌들로 추정되는 돌로 쌓은 담들이 많았다.
▲ 백암산성 마을 사람 백암산성 탐방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만난 마을 주민. 날씨가 더운 탓인지 이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웃통을 벗고 있었으며, 마을 담벼락에는 산성에서 흘러나온 돌들로 추정되는 돌로 쌓은 담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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