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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도 슈사쿠의 동물기> 표지
ⓒ 정은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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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과 자기 목숨을 저울질할 수 있을까. 그 신념이 바라보는 곳이 종교일 때. 말 한마디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데. 이런 믿음과 삶에 관한 이야기를 묵직하게 풀어낸 소설 <침묵>의 작가 엔도 슈사쿠가 에세이는 어떻게 썼을까 궁금했다. 그의 소설처럼 무겁게 썼을까. 작가가 평생 함께한 동물과의 관계는 어떻게 풀어냈을까. 동물들이 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제목은 <엔도 슈사쿠의 동물기>다. '시이튼의 동물기'나 '파브르의 곤충기'가 연상되는 제목이다. 유명한 책의 제목을 패러디한 게 분명한 이 책은 '문학적 동물기'다. 과학자가 쓴 생물학적 동물기가 아닌. 작가에게 영향을 주거나 함께 했던 동물을 기억하는 글이다. 작가의 소설처럼 진지하지만 유쾌하게 풀어낸 에세이. 동물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사람의 모습이 드러나는 가볍지만은 않은 글.

엔도 슈사쿠는 일본의 유명 작가다. 위에서 언급한 소설 <침묵>은 일본은 물론 전 세계에서 많이 읽는 현대소설이고.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사일런스>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작가는 동물을 좋아해서 평생 함께했다. 개와 고양이는 물론 오리를 포함한 각종 조류를 집에서 키웠고. 잠시였지만 원숭이와 살기도 했다.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너구리들을 챙겨주기도.

30여 편의 짧은 글 곳곳에서 동물과 교감한 경험을 얘기하고 있다. 말을 건네고 그 대답을 듣는 등 분명 커뮤니케이션이었다고 작가는 믿고 있다. 이러한 경험은 오래전부터 비롯되었다. 어린 시절 키웠던 개와 유학 시절 만난 원숭이와의 교감에서부터.

동물과의 교감에서 자기를 투영하다

작가에게 개 '검둥이'는 아픈 손가락이다. 부모와 사이가 안 좋았던 어린 시절 밖으로 나돌 때 함께 했던 검둥이.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말을 검둥이에게만 했다고. 그 하소연을 들어주고 위로해준 게 검둥이였다. 사정상 검둥이와 살지 못하게 되었을 때 차를 따라오던 그 원망 어린 얼굴을 평생 지울 수가 없었다고. 제자의 배신에 "뒤돌아보는 예수의 얼굴이 떠올랐다"라고 표현했다.

2차대전 후 프랑스로 유학 간 작가는 외로움과 나빠진 건강으로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때 찾은 외진 공원에 방치되다시피 사육되는 원숭이 한 마리. 전범 국가에서 온 유학생으로 숨죽여 지내는 자신의 모습과 겹쳐지며 출국 전까지 교감을 나누었고. 감정 이입된 나날이었지만 나빠진 건강으로 작별인사를 제대로 못 한 미안함이 평생 따라다녔다.

이러한 두 기억이 훗날 작가에게 영향 끼치지 않았을까. 추억하며 고마워하며 미안해하며. 그래서인지 묵직한 소설들을 쓰면서도 곁에 있는 동물을 주제로 에세이를 많이 썼다. 그런 글에 대한 독자의 반응이 동물 그 자체로 머물자 툴툴댔다고. "정말이지, 개 이야기를 쓰면 개만 떠올리고 새 이야기를 쓰면 새만 떠올리니." 작가는 동물 이야기를 썼지만, 그 속에 사람의 모습을 담고자 했다. 동물을 바라보는 시각이었지만 동물의 시각으로 사람을 바라보게도 했다.

동물일 뿐이라고?

작가는 동물을 사람 옆에서 재롱이나 떨고 사랑을 갈구하는 살아있는 장난감으로만 여기는 세태를 비판한다. 어느 동물원에서 판다에게 2세를 기대한다며 공개된 장소에서 '교미'한 스타(?) 동물의 소식을 중계한 언론, 그 소식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담히 그린다. 재미있는 문체지만 행간에서 느껴지는 비판은 날카롭다.

이러한 비판은 '디즈니'의 만화영화로도 이어진다. 보통 동화에서는 동물의 야성을 은유하거나 정체성을 가진 존재로 그린다. 의인화를 하더라도 동물이라는 정체성을 잃게는 안 한다.

그러나 디즈니 만화영화에서는 "야성 따위는 완전히 무시당한 동물", "동물 탈을 쓴 사람"의 모습으로 묘사한다고 비판한다. 판에 박힌 선악 구도도 그렇고. 동물에 나쁜 동물이 있을까? 태어난 모습대로 살아갈 뿐인데.

작가가 동물을 좋아하게 된 이유가 귀엽고 사랑스러워만은 아니었다. 그들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며 '일본원숭이' 서식지에서 목격한 일화를 여럿 소개한다. 특히 사람 사는 세상 못지않은 야생 원숭이의 사회성에 놀라워했다. "원숭이의 지혜"가 사람 못지않다면서.

작가가 관찰한 무리에서는 우두머리로 가장 힘센 수컷을 뽑진 않고 힘은 약하더라도 사회성 높은 수컷을 우두머리로 뽑는다고 했다. 작가는 "주부"라고 표현했는데, 새끼를 키우거나 임신한 암컷들의 지지를 얻어야 '우두머리'가 될 수 있단다. 우두머리 자리를 노리는 수컷은 유력 암컷의 새끼와 놀아주거나 털을 골라준다고.

이런 내용은 유명한 침팬지 연구가인 '프란스 드 발'의 책 <침팬지 폴리틱스>에도 나온 사실이다. 정치인들이 원숭이에게서 배웠나. 어떤 자리에 오르기 위해 여론을 주도하는 층들에 어필하는 모습. 우두머리에 오르면 지지층에 소홀해지는 모습. 그래서 지지율이 내려가면 다시 지지층에게 잘 보이려 아양 떠는 모습도. 우리네 정치인들은 어떤가요?

작가는 후기에 "내세에는 사슴이 되렵니다"라고 했다. 왠지 처연했지만, 작가다운 생각을 담았다고 생각했다. 죽은 다음 태어나는 세상이 있다면 동물로 살고 싶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맹수도 아니고 높은 하늘을 나는 독수리도 아니고. 혹시 일본의 '나라공원'에 가게 된다면, 그래서 눈망울이 그렁한 사슴을 만나게 된다면 지긋이 바라보며 과자를 나눠 줘야겠다. 사슴으로 환생한 '엔도 슈사쿠'일 수도 있으니.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강대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오피니언뉴스에도 게재됩니다.



엔도 슈사쿠의 동물기

엔도 슈사쿠 지음, 안은미 옮김, 정은문고(2018)


태그:#엔도 슈사쿠의 동물기, #엔도 슈사쿠, #정은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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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을 지나며 고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내가 나고 자란 서울을 답사하며 얻은 성찰과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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