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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여성 연예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나도 고단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여성이라는 것이 굴레로 작용하고, 할 수 있는 것이 줄어드는 상황. 그저 '여자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는 문구의 핸드폰 케이스를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욕을 먹거나, 휴가 동안 무슨 책을 읽었느냐는 질문에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는 대답에 엄청난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지인들과 자주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툭하면 인성 논란이니 뭐니 하는 것으로 여성 연예인들을 고달프게 만드는 한국사회에서 그들이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정말 그럴 법 하다. 직접적으로 여성 인권에 대해 발언한 여성 연예인은 거의 없지만 아마 그것은 페미니즘에 대한 반발이 굉장히 크다는 하나의 증거이지 않을까 한다.

여성이 한국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 

 책 <두 개의 목소리> 표지.
 책 <두 개의 목소리> 표지.
ⓒ 산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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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아이돌도 그러할진대, 인디 음악인들은 어떠할까. 대중음악평론가이자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이었던 이민희는 여성 인디 음악인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직접 찾아다녔다. 가서 물었다. 저자의 말을 빌리면 "작품과 무대를 오가며 얻은 성취와 고민"과 "그 과정에서 여성이라서 겪은 일과 동료 여성 음악가를 관찰한 바"에 대해서. 책 <두 개의 목소리>는 그런 고민의 흔적들이 모인 기록이다.

총 음악가 9명의 목소리가 담겨있다. 첫 음악가는 밴드 '에고펑션에러'에서 보컬을 맡은 김민정이다. 올해 2월에 발매된 < EGO FUN SHOW >의 수록곡 '단속사회'는 에고평션에러를 잘 설명해줄 듯싶다.

"안타까운 듯 걱정하는 척 / 뒷짐지고 한 발 물러서 /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말하네 / 범죄자나 단속하세요 / 내 자유를 지킬 거야 / 낡아빠진 시선의 빗장을 차버려."

사회에 저항하는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야 많다. 하지만 강렬한 밴드 사운드와 명료한 사회적 메시지를 갖춘 펑크 음악에 관심이 생겼을 즈음 친구에게 펑크 밴드를 소개시켜 달라 하니 온통 남성 밴드 일색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성 보컬이 있는 펑크 밴드는 없느냐는 말에 '여자가 펑크를?'이라는 표정을 지었던 것 같다. 김민정이 겪었던 시선도 아마 이것의 연장선이 아니었을까.

김민정 생각에 펑크는 여성에게 더 필요한 음악이다. 보통 펑크는 남성의 음악으로 인식되지만, 여성이야말로 싸우고 저항해야 할 대상이 많기 때문이다. 펑크의 형식만 따를 것이 아니라 낡은 인식에 저항하자는,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관습을 뒤집어보자는 밴드의 기초 논의도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그러면 왜 안되는데?" 하는 막연했던 의문에 이름을 붙일 줄 몰랐을 뿐 돌이켜보니 그게 다 페미니즘이었다.

아마 처음 소개한 '단속 사회'는 신디 로퍼의 'Girls Just Want To Have Fun'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김민정에게 신디 로퍼는 35년 전부터도 '여성이 추구하는 즐거움'을 노래한 선구자다. 늦게 귀가한 딸을 타박하는 부모를 향해 나는 즐겁게 살고 싶다고 말하는 신디 로퍼의 가사는 결국 '여성성에 대한 관습'에 문제제기를 하고자 했던 것이다.

김민정과 멤버들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별 말을 다 들었다. 아마 여성 음악인이라면 다 들을 법한, '여자치고는 잘 하시네요', '제니스 조플린 이후로 이렇게 제대로 노래하는 여성 보컬은 본 적이 없었어요' 따위의. 드럼을 치는 멤버는 원래 들어야 하는 말을 듣는다는 듯이 '여자치고 드럼 좀 치는데?'라는 '칭찬'을 들었다.

저자에게 자주 덤덤하게 자신의 친족 성폭력 피해 경험을 말한 적 있는 음악가 소히는 그렇게 되기까지 10여 년이 걸렸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음악이 있었다. 자신 말고도 이런 일을 겪었을 세상의 모든 이들을 위로하기 위한 곡을 많이 썼다.

덤덤하지만 명료하게 폭력의 흔적들을 가사로 풀어내는 데에는 그것이 폭력임을 인지하는 공부의 과정이 있었다. '위안부'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문화적 활동을 기획하다 보니 각자가 여성으로 겪어왔던 경험을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던 것이다.
소히는 첫 고백 이후 10년을 "나를 보호하는 것과 나를 넘어서는 것을 줄타기해 온 시간"이라 표현한다. 여전히 소히는 줄 위에 있지만 그래도 그때만큼 아슬아슬하지는 않다. (중략) 소히는 계속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소히의 고백을 시작으로 새로운 고백이 이어지는 것을 봐왔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말하는 것이 살아 있는 동안 해야 할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라 소히는 깨닫는다.

초반에 책에 담긴 소히의 이야기는 2017년 여름과 가을에 했던 이야기고, 시간이 지나 저자는 올해 3월에 다시 소히를 만났다. 그러니까, 미투라는 바람이 한국을 휩쓸고 있던 그 때 말이다.

자신의 경험을 말하는 것이 '사회적 현상'이 되기 전부터 소히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토대를 만드는 것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야 이것이 현상이 되었다. 피해자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생존의 방식이 서로 다를 수 있음을 소히는 미투 운동을 통해 느끼고 있다.

여성이 사라진 세계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끄집어내기

 당사자와 연대자, 당사자이면서 기록자인 이들의 목소리를 성심성의껏 들어야 한다.
 당사자와 연대자, 당사자이면서 기록자인 이들의 목소리를 성심성의껏 들어야 한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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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의 목소리>에는 특별한 인터뷰이가 두 명 있다. 바로 9와 숫자들에서 드럼을 맡은 유병덕과 여성학 연구자 흐른이다. 유병덕은 유일한 남성 인터뷰이다.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데에 있어 생물학적 성별이 무슨 상관이겠냐만, 남성 중심적인 음악계에서 끊임없이 성찰하고 문제제기하고자 하는 여성만큼이나 남성들도 필요하다는 점에서 유병덕은 거기에 꼭 맞는 인터뷰이가 아닌가 한다.

유병덕은 한국대중음악상 수상 소감에서 "앞으로 한국대중음악상에서 더 많은 여성 음악가와 평론가를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라고 말했다. 여성 음악가와 평론가들이 박한 평가를 받고 있는 건 유병덕 자신에겐 '내 동료'들이 겪는 일이다. 남성 밴드에게 더 관심이 쏠리고 있음을 유병덕은 직접 경험한다. 성차별의 문제는 '연대자 유병덕'이 하루가 멀다하고 듣는 이야기다.

유병덕과 비슷하게 경력을 쌓은 여성 음악가는 공연장에서 남성 음악가라면 듣지 않을 얘기를 때때로 듣는다. 경력 음악가가 아닌 부족한 여성으로 취급하는 현장의 스태프를 만나기 때문이다. "그거 만지지 마세요." "고장나요." "제가 할 테니까 놔두세요." 유병덕과 밴드 9와 숫자들보다 더 오래 활동해왔던 브로콜리 너마저의 드러머 류지가 공연을 앞두고 장비를 세팅하다가 현장 스태프로부터 그런 말을 들었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유병덕은 자신이 여기에 껴도 되겠냐는 말을 한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그런 확신이 생긴다. 유병덕 같은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자연스럽다고 생각되는 것을 다시 볼 줄 알고, 불편한 부분에 대해 문제제기할 수 있는 그런 사람. 게다가 이것은 남성들이 만들어놓은 세계 아니던가. 문제의식을 가진 남성들이 움직여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그 또한 변화를 위해 일상의 관계에서부터 끊임없이 고민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중이다.

유병덕이 연대자라면 흐른(본명 강정임)은 기록자다. 2004년 <여성 록 음악가의 몸의 경험과 새로운 여성 주체성의 형성>이라는 논문을 쓴 사회학도이자 여성학도다. 해당 논문을 쓸 당시에는 여성과 대중음악을 연결한 국내 연구가 전무했기에 맨땅에 헤딩하는 격으로 뛰어들어야 했다. 해외 사례도 뒤져 보았지만 남성 위주 서구 록 문화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루었고, 흐른이 하고 싶었던 얘기는 비판도 비판이었지만 여성 음악가의 주체적 가능성이었다.
여성 음악가가 음악을 통해 여성성이라는 성별화된 기대를 위반할 수 있는 조건이란 무엇일까. 그럴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여성 음악가의 여성성 탈주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한 흐른의 연구는 여성 음악가의 몸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이는 여성 이전에 음악의 본질, 즉 음악이란 무엇인가를 깊게 연구한 결과다.

대학 내에서의 여성주의적 문제의식의 확장, 여성운동가로서의 정체성 고민, 그리고 그것을 좀 더 체계적으로 언어화하기 위한 학술적인 활동이 강정임이 집중해온 일들이다. 그리고 여성 음악가를 향한 관심은 그로 하여금 음악에 뛰어들게 했다. 그렇게 '흐른'이 된 강정임은 개인적이면서도 정치적인 이야기를 노래한다. 모두 경험과 고민으로부터 나온 결과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흐른 혹은 강정임은 당사자이자 기록자다. 
어떤 노래 앞에선 직접적인 정치성과 시사성이 적절할 수 있지만 어떤 노래는 보다 간접적인 표현을 필요로 한다. (중략)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가르치는 것은 자신의 역할이 아니고, 관찰하고 경험한 현상에 대한 고민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이 무거운 이슈를 나누는 보다 적절한 방법이라 흐른은 생각한다.

이렇게 <두 개의 목소리>는 당사자와 연대자 그리고 당사자 겸 기록자가 모여 만들어낸 성과다. 여성주의적 논의가 활발한 지금, '음악하는 여성'의 목소리를 담아내고자 하는 노력들이 이 이후에도 더 많아져야 할 것이다. 이 책은 그 계기가 되어주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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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을 연재하며,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